지금폴란드서쪽에위치한도시, 포즈난에 와있다. 한국의아열대여름을떠나긴비행후에포즈난에도착하니여름을훌쩍뛰어넘어 이미 깊숙하게자리 잡은가을이우리를맞았다. 바람이불고비까지내린다. 쌀쌀한날씨에먹는따끈한커피가유독맛있게느껴지고어깨에두른숄도포근하고따뜻하다.
포즈난은국제학술대회에참석하는남편을따라왔다. 처음에나는그냥따라만올생각이었다. 남편이학회에참석하는동안나는옛수도였던포즈난(아래 지도에서는 원음에가까운 '포즈나뉴')의유적지와시내곳곳을둘러볼계획이었다. 폴란드는아주오래전한번온적이있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남쪽에 위치한 오이시비엥침의아우슈비츠수용소 그리고인근 비엘리치카에있는소금광산에갔던기억이가물거린다. 그때도학회끝난후잠깐들렀던것같다.
출처: 구글 지도
그런데남편과함께발표세션하나를책임진한국인원로교수님이집안에일이생겨학회참석이어렵게되었다. 교수님은이왕내가포즈난에가니교수님이맡은역할을내가대신해 줄 수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은퇴 후 학회에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자연히 공부도 멀어진 상태라 학회 일을 맡기가 망설여졌다. 교수님은 담당하신 발표 세션을 주제별로 분류하는 등 이미 큰 일을 다 하셔서나는 세션 발표장에서 사회만 보면 된다. 학회에서사회자의주역할은발표자와발표논문제목을소개하고, 발표가끝나면질의응답시간을 조절하는 것이다. 교수님이 맡은 세션은 학회 첫날은 오후만, 이틀째와 사흘째는 오전과 오후 하루종일 삼일 동안 진행된다. 대부분 논문을 발표하고 다른 서람의 논문을 들으러 학회에 가기 때문에 3일 내내사회 볼 사람을 갑자기찾기 어려울 것 같고,나도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학회 분위기도 맛보고 싶어교수님에게 대신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불이 발등에떨어져 마음이 급해졌다. 폴란드 관련 글과 포즈난에서 돌아다닐만한 곳을 느긋하게 인터넷에서검색하던일을멈추고,부랴부랴 30명 가까이 되는 내가맡게된세션의발표자들의초록을읽어내려갔다. 특정분야가아닌포괄적인일반세션이라발표분야도광범위했다. 내전공을벗어난발표가다수였다. 방청석에서질문이없을 경우,사회자가발표에대해 논평 또는 질문을던져야 해서 방청석에서질문이 많이 나오기를 고대했다.다행히내 바람대로 발표가끝날때마다방청석에서질문을하기 위해 손 드는 사람이 여기저기 많았다.질의응답 시간이 짧아 손을 든 사람 모두에게 질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다음발표가기다리고 있어질문을더받을수없으니휴식시간을이용해개인적으로발표자에게질문하라는말로끝맺어야 했다.
의자에 장시간 앉아있는 일이 별로 없다가 3일동안붙박이로 자리를 지키며 세션 진행에 신경을 쓰다 보니 시차 적응도 필요 없이 숙소에 가면 쓰러져 잤다.
학회는일요일부터금요일까지 6일간지속되었다. 처음 삼일 동안은세션사회를맡고,나머지 3일은관심가는발표를들으러다녔다. 은퇴전으로 거슬러 돌아가 학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고무되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처럼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 예전의 내가 학회장을 누비고 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학회장에서 특히 눈에 띈 분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학자들이었다. 폴란드와 국경이 맞닿아 지리적으로 가깝다고는 하지만 지금 한창 전쟁 중인데 학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관심과 호기심이 생겨 우크라이나학자들의 발표를 몇 개 들었다. 그중 한 분은 기조 강연을 한 키이우 보리스 그린첸코 대학의이사벨라 부니야토바(Isabella Buniyatova) 교수다. 단상에 나타난 부니야토바교수는인터넷에서찾은젊을때의모습이아니라,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하는 나이 지긋한모습이었다. 우크라이나 국기색인 파랑과 노랑으로 준비한 부니야토바 교수의 센스 있는 PPT 자료가 인상적이었다. 발표 제목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사회언어학적 상황'이다.
부니야토바 교수의 기조 강연
부니야토바 교수는 전쟁이 일어난 이후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에 대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태도가 급격하게 달라졌다고 했다. 오랜 세월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동안 러시아어는 우크라이나에서 공식어였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러시아어로 공부해야 했고 관공서 등의 업무도 러시아로 봐야 했다. 그 영향으로 독립 후 우크라이나어가 공식어가 되었음에도 다수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어와우크라이나어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고 나서부터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달라졌다. 러시아어를 배척하고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출판사와 작가들도 전쟁 후 러시아어 대신 우크라이나어로 돌아섰다. 볼로디미르 라페옌코(Volodymyr Rafeienko)는 우크라이나의 저명한작가로 러시아어로만 글을 써왔다. 라페옌코는 현재 러시아의지배하로 들어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도네츠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도네츠크는 러시아어가 주로 사용되는 지역이라 라페옌코는 우크라이나 사람이지만 당연하게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살고 있던 도네츠크가 러시아에게침공당하자라페옌코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로 거주지를 옮겼다.
출처: 구글 지도
키이우에 처음 가서는 우크라이나말로 가게 점원과 대화 나누기도 어려웠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한 끝에 우크라이나어로 그의 7번째 책 <몬데그린: 죽음과 사랑에 대한 노래>(2019)를 발간하기에이르렀다. 라페옌코처럼 도네츠크에서 키이우로 피신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라페옌코는 이제 말은 물론 생각도 러시아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로 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어로 쓴 두 번째 책도 곧 발간 예정이다.
부니야토바 교수 외에도 학회장에는 머리 하얗고 주름진 나이 드신 학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은퇴를 하면 학회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 대학에서는 정년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나이 들어서도 계속 공부하고 학회 활동까지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갑자기 한 세션을 맡게 되어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은 학회 담당자도 70대 중반이 훌쩍 넘은 네덜란드인 교수다. 이번에 참석 못하신 80대 초반 한국인 교수님은 유럽에 기반을 둔 이 학회에서 아직까지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연구뿐 아니라 학회 활동도 꾸준히 하는 연로하신 노학자들의 체력과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 전까지 서울 집과 지방 직장을 오르내리며 바쁘게살았으니이제일상에 안주하며 느긋하게 소확행을즐기고 싶은 안이한 나랑은너무도 다른 그분들께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