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l Nov 15. 2023

다섯 달 많은데 '오빠'라고 부를까요?

동갑 친척을 부르는 호칭어

미국는 엄마의 사촌이 친정집에 놀러 오셨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나한테는 당이모가 된다. 당이모는 내가 어렸을 때 몇 번 뵌 적이 있어 얼굴이 낯익다. 우리 나이로 94세이신 당이모는 긴 비행기 여행을 감당하실 만큼 건강이 좋지는 지만 한국에 오시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해서 딸과 사위가 모시고 왔다고 했다.


"나 언니야. 나 알아보겠어?" 당이모가 엄마 손을 덥석 잡으며 말씀하셨다.

"알아보지. 언니 아니야. 우리 동갑이야. 우리 어렸을 때 내가 'ㅇㅇ야'라고 불렀잖아." 엄마가 답하셨다.


당이모는 1월생, 엄마는 6월생 동갑으로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셨다. 학년도 같아 친구처럼 지내셨다고 한다. 엄마는 방금 먹은 약도, 방금 먹은 점심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20년 넘게 살아온 집도 찾지 못하셔서 옆에서 모시고 가야 한다. 그런데 그 옛날 같이 놀던 사촌이 엄마랑 동갑이라는 것은 놀랍게도 기억하신다. 94세 두 분이 나이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귀여우시다.


연로하신 당이모는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라는 심정으로 한국에 오셨다고 했다. 어렵게 한국에 오신 당이모를 또 뵙기 어려울 것 같아 나랑 동갑인 이종사촌에게도 연락을 했다. 이종사촌은 돌아가신 큰 이모의 딸이다. 큰 이모의 장례식에 오실 수 없었던 당이모는 이종사촌을 보고 무척 반가워하셨다. 큰 이모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이종사촌과 나도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학년도 같았다. 잠시 과외도 같이 한 적이 있다. 2주 먼저 태어난 나와 이종사촌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른다. 이종사촌이지만 친구 사이다.


돌아가신 시아버님은 가족 서열을 중요시하셔서 가족 간의 호칭에 엄격하셨다. 시누이 아들보다 2달 정도 늦게 태어난 딸은 학년이 같은 고종사촌을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다고 했다. 그냥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고 했다. 오빠 당사자는 괜찮다고 했지만 시아버님은 서열대로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셔서 딸은 동갑 고종사촌을 계속 오빠라고 부르고 있다.


얼마 전 시아주버님과 형님의 둘째 딸인 조카가 딸을 낳았다. 우리 손자가 태어난 지 5개월 만이다. 집안에 아기가 둘이나 생겨 가족 단톡방이 활기를 띠었다. 조카는 딸이 나중에 커서 우리 손자를 오빠라고 부르는 게 좋을지 아니면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좋을지를 물었다.


시아버님은 하늘나라에서 뭐라고 하실까?시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분명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셨을 것 같다. 손자의 아빠인 아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했다. 남편은 "아기들이 좀 클 때까지 기다려 보면 어떨까?"라고 답했다.


조카의 질문에 아직 백일도 안 된 여자 아기와 7개월이 좀 넘은 남자 아기가 서로를 부를 정도로 자란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아득한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6년 뒤면 두 아기는 초등학교에 같이 입학한다. 조카의 딸과 우리 손자는 같은 학년이 될 텐데 친구처럼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초등학교 친구인 이종사촌과 나처럼.


어른들이 나서서 호칭을 정해줄 필요까지야 없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두 아이가 알아서 부르라고 밀어놓을 수만도 없다. 어떤 가이드라인을 주면 좋을 것 같다. 우리 손자와 다섯 달 아래인 조카의 딸이 서로를 호칭할 나이가 될 때까지 시간은 충분하 천천히 생각해 봐야  것 다.



사진 출처: Freepik

작가의 이전글 서서히 기억을 잃어갑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