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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Dec 14. 2023

파이팅! Fighting!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실린 한국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사는 미국인 J K-팝을 좋아한다. 시간 날 때마다 K-팝을 들으며 따라 부른다고 한다. 요즘은 특히 5인조 걸그룹 뉴진스의 「허트」(Hurt)에 빠져 있다. K-드라마도 재미있게 보고 있어 자연스레 한국어에 흥미가 생겼다. 혼자 한국어를 2년간 공부하다가 한국 사람과 실제 대화를 해보고 싶어 한국어 수업을 신청했다고 한다. 장래 꿈은 외교관이 되어 한국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나는 화면 속의 J를 향해 "파이팅!" 하면서 오른쪽 주먹을 들어 보였다. J도 주먹을 힘차게 올리며 "파이팅!"을 외쳤다.

 

전투나 싸움을 의미하는 영어 'fighting'은 우리가 격려나 응원하기 위해 외치는 '파이팅'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이제는 영어 'fighting'도 '잘하자!' 또는 '힘내!'라는 뜻을 갖고 다. 한국어 '파이팅'에서 유래한 'fighting'이 『옥스퍼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에 실렸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fighting'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fighting

INTERJECTION
Esp. in Korea and Korean contexts: expressing encouragement, incitement, or support: ‘Go on!’ ‘Go for it!’

[감탄사
특히 한국 및 한국적 맥락에서: 격려, 선동, 또는 지지를 나타낸다: '계속해!' '힘내!']


지난 2021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감탄사 '파이팅'을 포함하여 26개나 되는 한국어 단어들을 한꺼번에 등재하였다. 유래 없는 일이다. 전혀 영어스러워 보이지 않는 '애교', 누나', '오빠', '언니', '대박' 등이 영어 단어로 사전에 편입되었다. 한류의 열풍에 힘입은 결과이다. 한류라는 의미의 'Korean wave'와 함께 '한류'를 그대로 옮겨 적은 'hallyu'도 동시에 사전 표제어로 올랐다. 한국을 뜻하는 접두사 'K-'와 'K-drama'도 실렸다. 한국 문화의 힘이 대단하다. 


2021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 한국어에서 유래한 26개의 영어 단어는 다음과 같다.

영어 단어 목록의 출처: OED (https://www.oed.com/discover/daebak-a-k-update/?tl=true)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다듬은 말>에서 '파이팅'을 검색하면 '아자', '힘내자'로 나온다. 국립국어원은 한때 '파이팅'을 한국식 영어로 간주하여 다듬어야 할 로 선정했었는데, 이제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파이팅'이 당당하게 표제어로 올라와 있다.

 

파이팅 

「감탄사」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우리 팀, 파이팅!


정통 영어가 아닌 콩글리시라며 국립국어원에서 '다듬을 말' 올렸던 '파이팅'을 영국의 권위 있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영어 단어로 채택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글로벌 언어인 영어는 다른 나라 언어에서 빌려다 쓰는 차용에 대해 개방적이다. 역사의 변천사와 함께 영어는 라틴어, 불어, 독어, 그리스어 등에서 차용하였다. 그리고 계속 차용을 멈추지 않고 있다.『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월드잉글리시 담당 편집자 살라자르(Danica Salazar)가 영국 신문 『가디언』의 오피니언 난에 쓴 칼럼의 제목도 이를 반증한다: '영어는 멋진 새 단어를 세계 도처에서 줍는다. 새 단어는 선물이다.'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2/dec/12/english-words-world-global-speakers-language)


살라자르 편집자는 차용어를 '선물'이라고 부르며, 차용은 살아있는 모든 언어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진화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어에 대한 열린 사고를 볼 수 있다. 물론 한류 영향력이 대단하지만 이러한 유연성이 뒷받침되어 우리 단어들이 『옥스퍼드 영어 사전』 속으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K-팝과 K-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J가 정말 미국 외교관이 되어 한국에 부임하는 날이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만약 J의 꿈이 성취된다면 두 엄지를 힘껏 올리며 영어 단어가 된 '대박!'을 소리쳐 줄 것이다. 꿈이 꼭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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