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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Feb 26. 2024

91세 시고모님과 가족이 함께 만든 책

『펜 종이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 울엄마』(최연하 외, 2024)

남편의 고모님 생신 축하 겸 출판기념회를 한다는 모바일 초청장을 받았다. 고모님은 세는 나이로 91세다. 뇌졸중 후유증과 치매를 앓으시던 시고모부님이 재작년에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시고모님은 27년간 옆에서 병시중을 하셨다. 그전에는 친정어머니를 모셨고, 치매인 시아버지도 20년 동안 돌보셨다. 기나긴 돌봄의 연속 속에서 어떻게 글까지 쓰셨을까? 대단하시다.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8형제 중 둘째, 고모님은 다섯 번째다. 시고모님은 시아버님보다 여섯 살 어린 여동생이다. 공부를 계속한 남자 형제들과 달리 고모님은 초등학교만 나오셨다. 그것도 등록금을 아끼느라 한 학년 월반하셨다고 한다. 그 먼 옛날에는 사정에 따라 월반이 가능했나 보다. 남자 형제들만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시고모님은 공부가 무척 하고 싶었다고 책에 적고 있다. 오빠들 월사금 낼 때마다 부모님의 한숨소리에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병원 견습간호사로 매달 받는 2천 환을 어머니께 드려 오빠들 등록금에 보태고 가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 기뻤다고 하셨다. 요즘 즐겨보고 있는 TV 주말 드라마 「효심이네 각자도생」 주인공 효심이가 떠오른다. 효심이처럼 시고모님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착한 딸이었다.


공부하는 남자 형제들에 대한 선망과 부러움이 시고모님을 책과 가깝만들었다. 시고모님의 시아버지 그리고 남편을 돌보며 힘들고 지칠 때마다 책을 읽고 에 굴러다니는 허름한 종이 쪼가리, 달력 뒷면에 자기 심정을 끄적거리며 하소연을 하셨. 펜과 종이가 시고모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이번에 출간한 책 제목도 『펜 종이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 울엄마』(2024, 출판이안)이다.


시고모부님이 하늘나라에 가신 후 자식들이 집을 정리하다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시고모님의 글들을 보고 며느리가 책으로 내자 의견을 냈다. 군데군데 맞춤법은 틀리지만 자신이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신 시고모님의 보석 같은 글에  아들과 며느리, 두 딸과 사위가 돌아가며 자신들의 소회를 얹었.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글을 쓰며 형제자매 간의 소통이 깊어지고 우애가 더해졌다. 이번에 낸 책은 가족들의 합작품이다. 장모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사위가 적었다. 가족들이 쓴 댓글을 읽으면서 평생 인내와 헌신으로 살아오신 시고모님을 가족들이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고, 고마워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시고모님은 운전을 시작하기에는 한참 늦은 64세에 쓰러진 남편을 모시고 다니기 위해 운전면허증을 땄다. 80세 고령에 간병인자격증을 따 치매 남편이 돌아가실 때까지 옆에서 간병하셨다. 오른쪽 반신마비, 전신 가려움증, 의심증, 나중엔 의처증, 망상증까지 와서 힘들었지만 한창 일하는 자식들에게 폐 안 끼치고 본인이 끝까지 남편을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확고하셨다. 남편 돌보는 것을 미완성으로 끝내지 않겠다고 하셨다. 덕분에 5명의 자식들 모두 안정적으로 자신의 꿈과 일을 성취할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흔적은 모두가 미완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완성으로 끝내기 싫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완성이란 단어를 내게서 떼어버릴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가지 만이라도 미완성에서 미짜를 떼어버린 완성! 헌신적인 사랑으로 보살펴 드리라고 남편이 장애를 입게 되셨나보다. ...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자. 서로 사랑하고 행복 했던 시절을 회상 하면서 ... (p. 55)


가족이 아닌 사람들대해서도 시고모님의 따뜻함과 배려가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예쁜 보자기"로 다른 사람의 단점을 덮어주고 싶어 하시는 시고모님의 선한 마음이 글에서 느껴진다.

내 집 오는 손님에게 친절을 다 하자.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장단점이 꼭 있다.
어느때 장점이 먼저 눈에 띄었던 사람은 장점이 단점을 가리게 되고 단점이 먼저 노출된 사람은 단점이 장점을 가리게 되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쁜 보자기로 단점을 덥허주며 사는 노력을 하자. ... (p. 21)


가뭄이 계속되어 잘 돌보지도 못했는데 예쁘게 달려있는 오이를 보고 시고모님은 미안해서 성큼 따지 못 하셨다고도 했다. 이런 고운 마음으로 친정어머니, 시아버지, 남편을 돌보고 자식들을 보듬으셨다.


나이 들어가면서 다른 분들의 삶에 관심이 간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의 삶이 눈에 들어온다. 저분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나는 또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90세까지 산다면 20여 년, 100세까지 산다면 30여 년 남아있는 내 인생을 잘 살고 싶다. 시고모님의 말씀대로 세월은 참 빨리도 간다. "세월 끝"에 매달려 있을 내 미래 모습을 상상하며 "세월 속"의 지금을 잘 지내고 싶다.


시고모님과 오래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가족 행사에서 뵐 때마다 늘 따뜻하고 온유한 미소를 띠고 유머를 반짝 던지셔서 분위기를 환하게 밝혀주신다. 힘들고 고단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시는 분이다. 자그마한 체격에 외유내강형이다. 어렵고 지친 상황에서도 저런 따스함과 밝음을 가지신 시고모님이 존경스럽다. 시고모님의 인내와 노력을 알아주고 고마워하는 자식들의 마음씨 또한 아름답다. 미완성의 '미'를 떼고 완성을 이루신 시고모님,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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