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l Mar 13. 2024

나이가 더 들면 어디서 사는 게 좋을까요?

실버타운? 식사 제공하는 아파트? 살던 집?

오늘 아침 동네 식당에 가서 우거짓국을 먹었다. 아침에만 제공하는 메뉴다. 우거짓국을 시키면 간단하게 밥, 국, 콩나물 무침, 김치 네 가지만 나온다. 가격은 4,000원. 아주 착하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따끈한 흰쌀밥은 맨밥만 먹어도 고소하고 맛있다. 집에서는 건강을 챙긴다고 검은콩 섞은 현미밥을 먹고 있어 흰쌀밥만 보면 무작정 끌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식당 밥은 유난히 찰지고 맛있다. 우거지 된장국 국물이 구수하다. 잘게 썬 배추는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콩나물 무침은 짜지 않고 아삭하게 씹힌다. 배추김치는 맵지 않으며 신맛이 깔끔하다. 밥 위에 달걀 프라이 얹어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만 단백질은 점심이나 저녁에 보충하면 된다. 집에서 외투만 쑥 걸치고 도로를 건너정갈하고 저렴하기까지 한 아침상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하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인사한 후 남편과 나는 식당을 나왔다.


날씨가 좋으면 우리는 가끔 이 식당에 들러 아침을 먹고 반짝이는 햇살을 받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음식 만드는 일이 아직 귀찮지는 않지만 아침부터 남이 해주는 밥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사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관심 가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요리를 하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까지 든다. 그런데 나이를 더 먹으면 언젠가는 요리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식사를 해결해 주는 곳으로 실버타운을 떠올려본다. 산책 외에 별다른 취미활동을 하지 않는 남편과 나에게는 커뮤니티 시설과 프로그램이 좋다는 실버타운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우리에게는 과잉 같다. 우리는 주로 방에서 지낼 것 같기 때문이다.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아니면 휴대폰으로 손주들 사진, 동영상을 보거나 유튜브를 볼 것 같다. TV도 볼 것이다.


식사를 제공하는 아파트도 요즘 뜨고 있다. 얼마 전 식사 서비스가  친구 아파트에서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훌륭한 식사였다. 메뉴도 매번 바뀐다고 했다. 가격도 9,000원으로 괜찮다. 친구는 나이 들면 실버타운에 갈 필요 없이 식사가 제공되는 아파트에 살면 고 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30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숲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다 좋은데 집값이 비싸 엄두가 안 난다고 했더니 친구는 자기네처럼 작은 평수에 오란다. 나이 든 부부 둘이 살기에는 작은 평수가 딱이라며.


식사를 제공하는 아파트는 럭셔리하고 멋지다. 그렇지만 이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식사는 제공하지 않지만 오래 살아 편하고 익숙하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식당들도 즐비하다. 시간 날 때마다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녀 동네 어디에 먹을만한 식당이 있는지 손금 보듯 훤하게 알고 있어 외식하기도 어렵지 않다.


며칠 전엔 동네를 걷다가 새롭게 바뀐 피자집이 눈길을 끌었다. 테이크아웃 가능한 곳이었는, 새로 하얀 동그란 식탁과 빨간 높은 의자가 놓여있는 게 유리창 밖에서 보였다. 호기심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문하고 의자에 올라가 앉았다. 피자를 방금 구워서인지 집에 들고 가서 먹을 때보다 더 맛있었다. 식사 때문이라면 여러 종류의 식당들가까이 있는 집을 놔두고 굳이 낯선 실버타운이나 식사를 제공하는 아파트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실버타운이나 식사 제공 아파트가 끌리지 않는 데는 거리를 쉽게 살 수 있다는 점도 일조를 한다. 예전에는 마트에 들러 일일이 눈으로 직접 보고 구입을 했는데 이제 TV나 휴대폰 화면을 보며 주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양파, 당근, 감자, 시금치 같은 재료는 물론, 갈비탕, 곰탕, 추어탕 등 데우거나 끓이기만 해도 먹을 수 있는 패키지 음식도 주문한다. 방금 우유, 그릭요거트 그리고 잠을 잘 오게 한다고 해서 매일 챙겨 먹기 시작한 바나나휴대폰에서 주문했다. 곧바로 17,250원이 승인되었다. 만 오천 원이 넘어야 무료배송이라 그 액수에 맞춘 것이다. 내일 새벽 도착 보장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참 편한 세상이다.


배달음식도 있다. 먹고 나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많이 나와 분리수거하기도 번거롭고 환경도 오염시키니 어쩌다 한 번씩 급할 때 시켜 먹으면 편할 것 같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살면서 손쉽게 식사할 수 있는 방법은 꽤나 많다고  수 있다. 그렇만 나이가 더 들어 걸어 다니기 힘든 상황이  수 있다. 배우자 없이 혼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온다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우리 부부 둘 다 건강 관리를 잘해서 거주지를 바꾸지 않고 익숙한 집에서 오래도록 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