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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모스 Sep 27. 2022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과연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만, 내 기억 속의 엄마는 항상 나에게 져 준 적이 없던 분이었다. 내 인생의 사소한 것부터 큰 결정까지 엄마는 항상 자신의 생각과 내가 다를 때면, 내가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치열하게 싸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서 "독하다" 욕도 많이 먹었지만, 결국 돌아보면 내 결정은 엄마의 뜻대로였다. 


"엄마랑 같이 장을 보러 가고 싶다"고 떼를 쓸 때, 엄마가 우는 나를 모른 척하고 밖으로 달려 나간 건 뭐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어린애를 데리고 장을 보는 것보다 혼자 나가서 빨리 보고 들어오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까. 당시 엄마는 나를 돌보는 것 외에 해야 할 일이 많은 시골의 아낙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였을까. 친구네 집에서 키우던 몰티즈가 새끼를 낳았다면서 한마리를 나에게 준 적이 있다. 마당에 키우는 개는 많았지만, 집안에서 반려견을 키우고 싶어서 좋다며 그 강아지를 받아 왔다. 당연히 엄마, 아빠가 반대할 건 알았다. 그래도 타협의 여지가 있거나 받아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당장 내다 버리거나 다른 집에 갔다 줘. 어차피 우리 집에서는 못 키워."


울면서 버티고, 내가 "밥도 주고, 청소"며 다 한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린애가 해봤자 결국 엄마의 일이 될 거라는 걸 알아서 그러셨을 거다. 결국 그 작은 몰티즈는 다른 집에 입양됐다.


후에 내가 중학생이 됐을 때 작은 아버지가 작은 퍼그 한 마리를 데려와서 집안에서 잠깐 키웠는데, 그 아이도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기숙사에 들어가자 바로 집 밖으로 퇴출됐다. 그리고 밖에 나가 진드기 등에 물려 고생하다, 결국 아빠가 우사에 쥐를 잡으려 놓았던 쥐약을 먹고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단호한 사람이었다. 원칙주의자였고, 타협이 없었다. 엄마 스스로도 "한 번 안되면, 안 되는 거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 단호함이 신뢰감을 주지만, 나와 맞지 않을 땐 큰 갈등의 요소였다. 


중학교 땐 엄마가 탐탁지 않아했던 악기 레슨을 받는 동안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고, 내가 포기하고 나서야 평화가 찾아왔다. 


수능 성적이 모의고사 때보다 저조해 고3 담임 선생님도 "재수를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엄마였다. 엄마는 "오빠도 안 시켜준 재수를 널 시켜줄 수 없다"고 했다. 오빠는 원하는 과에는 가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오빠에 대해 다른 선생님들은 "성적 나온 것보다 좋은 학교와 과에 갔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나와 오빠에게 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력하게 믿고 있는 거 같았다. 더 이상 싸우기 싫었다. 서울에서 재수를 할 경우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을 고려해 집에서 재수를 했을 때, 어떻게 인터넷 강의를 듣고, 문제집 구매를 포함해 대략 얼마 정도 비용이 들지까지 정리해서 엄마한테 말해도 들을 생각도 안 하시니 깨끗하게 포기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재수해도 실패할까 봐 무서워서 일단 대학부터 가려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문제는 엄마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거다. 1년 후 재수를 마친 애들의 입시 결과가 나올 즈음이었다. 엄마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몇몇 애들의 근황을 전했다.


"**는 교대랑 Y대에 둘 다 붙었는데, 교대 간다더라고. **는 J대 간다고 하는데, 거기가 너희 학교보다 좋은 학교 맞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 아줌마들, 다 엄마랑 친했잖아. 그런데 그 아줌마들은 자기 자식들이 다 나보다 공부 못했는데도 재수시켜줬잖아. 그래서 좋은 대학 간 거야. 엄마는 노력도, 지원도 안 해주고 대학 입학한 것만 부러워? 그걸 나한테 말하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엄마는 나한테 미안해서라도 다른 재수에 성공한 아이들을 언급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였다면, 딸보다 성적이 안좋았던 아이들이 재수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걸 봤다면 미안한 감정이 들 거 같은데, 엄마는 아니었나보다. 난 최선을 다해 대학 생활을 했고, 불만도 없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있다. "재수를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었다. 그땐 더 어렸고, 대학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기를 지나온지 딱 1년이 지났을 뿐이었다.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 싱숭생숭한 마음을 불쏘시개로 쑤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도 한동안은 집에 내려가지 않았던 거 같다. 물론 엄마는 그 이유를 몰랐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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