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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모스 Sep 27. 2022

"엄마, 나 힘들어서 죽을 거 같아"..."참아"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잘하는 건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어쨌든 사회생활을 시작해 이탈자가 많다는 업계에서 만 10년을 채웠다. 억울하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싫은 일이 있어도 울면서 했던 거 같다. 물론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하겠지만.


버티고 싶어 버텼던 건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미련하지 않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 미련한 선택 뒤엔 엄마가 있었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성인이 된 후에도 엄마는 "힘든 일이 있어도 버텨"라고 했다.


대학생이 된 후 기숙사에 입사했는데, 우리 방 룸메이트 중 한 명이 뒷말하기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1학기 기말고사 시험기간이라 밤샘 공부를 하다 침대에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그 룸메이트 언니가 자기랑 친한 무리를 방에 데려와서 "얘는 왜 지금 이 시간에 자? 신생아야?"라며 내 험담을 했다.


그걸 시작으로 나에 대해 이리저리 말하고, 그 무리들이 맞장구를 치는데 갑자기 깬 척을 할 수 없어서 내 욕을 그대로 가감 없이 들어야 했다. 이전까지 친절하고, 잘 웃어주던 언니고 그 무리 역시 큰 갈등 없이 지내왔기에 그 상황은 더 충격이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좋아해 줄 수 없다는 건 잘 알았다. 그렇지만 속에는 나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 앞으로는 친절하게 구는 사람을 그때 처음 봤다. 가뜩이나 학보사 활동으로 통금 시간을 지키는 게 어려웠고, 학기가 마무리되면 기숙사 재입사 여부를 결정하는 시기라 엄마에게 이 상황을 전하면서 "학교 옆에서 자취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의 대답은 "버텨"였다. 


"세상 살면서 어떻게 좋은 사람만 만나겠어. 그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그냥 버텨. 나오긴 어딜 나와. 오빠 전역하면 그때 같이 살아. 그전까지 여자애 혼자 자취하면 나중에 시집갈 때 흠잡혀."


혼자 자취하는 게 결혼할 때 흠이 된다면, 그 결혼은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자취방을 구할 보증금을 지불해야 하는 건 엄마였다. 엄마가 반대하는 한 기숙사를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6개월을 더 버텼다. 이후 오빠가 군에서 전역하고 나서야 기숙사를 나올 수 있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엄마에게 내 힘든 상황을 말하면 돌아오는 답은 "버텨"였다. 사회 초년생 때 서툰 것도 많고, 많이 혼나고, 내가 한 실수 때문에 자괴감도 심했다. 죽고 싶었다. 


엄마한테 울면서 전화를 했던 적도 있다. 


"엄마, 나 진짜 너무 힘들어. 죽을 거 같아. 회사 그만둬도 될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어. 남의 돈 받는 건 원래 더럽고, 치사한 일이야. 버텨야지. 그만두긴 어딜 그만둬. 네가 그만두고 다른 곳에 가면 '얘는 언제든 그만둘 애'라고 낙인찍히는 거야."


회사에 출근하기 싫어서 '지금 여기에서 교통사고 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다리가 부러져도 일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이왕 다칠 거면 손가락이 다 아작 나야겠다'는 상상도 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서 '어지럽네. 여기서 쓰러지면 아플까?'라는 생각을 한 두 번 한 게 아니었다.


지금에서야 그게 우울증이고, 공황의 미약한 증상이었다는 걸 알지만, 그땐 그냥 괴로워서 그런 줄 알았다. 이후 결혼과 출산으로 자연스럽게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지만 여전히 스트레스는 따라다닌다. 그렇지만 그때보다 나도 성장했고, 스트레스에 유연해지면서 "죽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됐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엄마에게 말 안 하고 그만둬야 한다'는 나름의 행동 가이드라인도 생겼다. 어차피 엄마는 내 이직을 응원해주지 않는다. 


내 아이에게 난 "남들도 다 버텨. 너만 힘든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괴로움에 죽어가던 나에게 엄마가 해 준 말은 나름대로의 위로였을 거다. 엄마가 살아왔던 세상에선 힘들어도 참고 버티고 견디면서 신뢰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으니까.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른 세상이 됐다. 엄마는 그걸 몰랐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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