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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모스 Oct 22. 2022

내가 오빠를 '엄마 아들'이라고 부르는 이유

엄마는 다 큰 여자가 혼자서 자취하면 결혼할 때 흠이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래서 내 첫 자취는 오빠가 전역하고 나서야 이뤄질 수 있었다. 


오빠와 둘이 사는 건 쉽지 않았다. 두 살 터울에 어릴 때부터 잘 안 맞았던 우리 남매가 부모님이라는 완충 장치도 없이 같이 있다 보니 눈만 마주쳐도 싸웠다. 청소와 설거지, 빨래 등 집안일 때문에 싸우면서 신혼부부들이 왜 부부싸움을 하는지 이해하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엄마의 기억에 따르면 어릴 적에는 지저분한 것들이 바닥에 있으면 가구 밑으로 밀거나 서랍 안에 쑤셔 넣을 만큼 깔끔을 떨었다는 오빠는 내가 직접 목격한 사람 중 가장 지저분한 사람이었다. 남들은 군대에 다녀오면 깔끔해진다는데, 오빠는 "군대에서 내가 깔끔을 떨면 몸이 더 피곤해지니 최대한 버텨야 한다는 걸 배웠고, 그러다 보니 좀 지저분해도 견딜만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바로바로 설거지를 안 하냐", "빨래를 한 후 옷을 꺼내놓지 않냐"고 말하는 나에게 "너의 청결 기준을 나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말했다. 


말해도 바뀌지 않고, 아들도 아니고 동생도 아닌 보호 의무가 전혀 없는 오빠를 위해 취업 준비로 바쁜 그 시간을 쪼개 싸우고 싶지 않았다. 공용 공간인 부엌과 거실, 화장실은 내가 눈에 보일 때마다 청소를 했고, 설거지만 먹고 나면 알아서 치워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오빠가 공시 준비로 휴학 기간이 길어지고, 내가 먼저 취업을 했다.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공과금과 기본적인 생필품 구매는 내가 부담했지만 정작 내가 배고플 때 내 손으로 사다 놓은 라면이나 빵을 오빠가 다 먹어치워 흔적조차 없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분노를 표출하면 오빠는 "먹을 걸로 치사하게 그러지 말라"고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왔는데 집안이 엉망이라 화를 내면 "밖에서 짜증 난 걸 집에서 푼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 나를 더욱 좌절하게 만든 건 엄마였다. 엄마는 오빠가 연락이 되지 않으면 나한테 전화를 했다. 내 안부를 묻기 전에 "오빠가 연락이 안 된다"면서 "네가 오빠 밥 좀 잘 챙겨줘라"고 했다. 나도 똑같이 학교 다니고, 공부하고, 심지어 집안 청소에 공과금 납부까지 전담으로 챙기고 있는데 밥까지 해 먹이라니 화가 났다. 


오빠와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가는데 둘이 따로 사는 걸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하니 스트레스는 더욱 커져가던 상황에서 엄마에게 또 "밥 챙겨주라"는 전화가 왔다. 난 폭발했다. 


"엄마. 난 오빠 밥 챙겨주는 사람이야? 왜 나한테 자꾸 밥 챙겨주라고 그래? 오빠한테도 내 밥 챙겨주라고 해?"


엄마는 말이 없었다. 


"나 오빠 식모 시키려고 같이 살라고 한 거야? 오빠 연락이 안 되면 오빠한테 뭐라고 하고, 밥 챙겨 먹는 것도 스스로 챙겨 먹으라고 그래. 왜 자꾸 나한테 그래?"


하지만 그 후에도 오빠랑 갈등 상황에서 엄마는 집에서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 오빠 편을 들었다. 나에게 죄인이 된 듯 미안해하면서도 "네가 참아야지 어쩌겠니"라고 했다.


사회 초년생 때, 일도 많고, 술도 많이 먹고, 집에서는 눈만 잠깐 붙였다가 나갈 때가 허다했다. 내가 신경 쓰지 못하는 동안 설거지는 점점 쌓여갔고, 나도 '언제까지 안 하나 보자'라는 오기로 그대로 뒀다. 오빠는 밥그릇이 없어서 반찬통까지 꺼내 밥을 담아 먹었다. "지저분하게 쌓아 놓은 것도 보기 싫고, 빨리 정리 안 하면 벌레가 생기니 제발 설거지 좀 빨리 하라"고 말하자, 오빠는 "알아서 할 테니 가만 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주말에 설거지 더미를 그대로 쌓아두고 오빠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머리에 뚜껑이 열린다는 걸 그때 느꼈다. 내가 먹은 것도 아니고 본인이 먹은 것도 치우지 않는 이기적인 태도에 오만 정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는 아들 잘못 키웠어. 진짜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쩌겠니. 네가 좀 해줘."


그때부터 난 오빠를 엄마 아들이라고 부르게 됐다. 내가 결혼한 후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오빠와 난 원수 같던 남매에서 그래도 꽤 나쁘지 않은 사이로 발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오빠는 내가 그를 '엄마 아들'이라고 부르는 걸 못마땅해한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난 이 호칭을 정정할 필요성을 아직까진 느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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