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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모스 Oct 22. 2022

"딸이 예뻐요"라는 칭찬에 엄마는...

어릴 적,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을 보고 난 엄마가 공주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구적으로 큰 이목구비와 날씬하고 길쭉길쭉한 키, 여기에 하얀 웨딩드레스까지 엄마는 동화에서 보던 공주님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엄마는 젊은 시절 미스코리아 출전 제안을 받을 정도로 미인이었다. 아빠와 결혼해 지방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서울에서 살았는데 요즘 말로 '헌팅'도 많이 당하셨던지, "길거리에서 처음 본 남자가 만나보자고 연락처 물어보는 게 특별한 일이냐"고 말하실 정도였으니까.  


오빠는 그런 엄마를 꼭 닮았고, 난 아빠 판박이 었다. 키는 물론 발가락과 손가락까지 쭉쭉 뻗고,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축복받은 체질은 모두 오빠에게 갔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셔서 온 몸이 근육인 아빠를 제외하고 친가 식구들은 조금만 먹어도 살이 쪄서 평생 식이 조절을 하셔야 하는 분들이었다. 짧고 둥근 내 손을 보면서 고모들까지 "영락없는 김 씨네, 어쩌냐"라고 하셨다. 


지금이야 아이들에게 외모로 평가하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게 굉장히 몰지각한 행동이라고 인지하는 추세이지만, 20~30년 전만 해도 아이들에게 "못생겼다"고 말하는 어른도 적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오빠는 날씬한데 넌 통통하다"는 말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엄마도 "딸아이가 예쁘다"고 모르는 어른들이 칭찬하면 "아들은 더 잘생겼어요"라고 말하곤 했다. 엄마 스스로도 나보다 아들이 외모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했고, 이를 굳이 내 앞에서도 숨길 생각이 없었던 거다. 


결국 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저녁을 굶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잘 안 먹고, 다이어트를 하니 제대로 성장이 이뤄질 리 없었다. 성인이 됐지만 내 키는 160cm도 넘지 않는다. 엄마보다도 작다. 


여기에 지금까지도 살에 대한 강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이어트를 하고, 요요가 오고, 다시 다이어트를 하는 굴레 속에서 살고 있다. 사실 지금도 다이어트 중이다.


살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 맛있는 것,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무턱대고 먹다 보면 살이 찌고, 살이 오른 내 몸을 보편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시 더 힘들게 다이어트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싶을 때도 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후 문득 나에게 "내가 뚱뚱해요? 애들이 나보고 뚱뚱하다고 해요."라고 말했다. 영유아 검진표를 기준으로 내 아들은 평균 몸무게보다 조금 나가긴 하지만, 비만까진 아니다.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뚱뚱하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아이를 위해 난 "넌 지금 성장기고, 지금 네 몸은 절대 뚱뚱한 게 아니며, 넌 지금 그 자체로 충분히 멋있다"고 말해줬다.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엄마가 문득 원망스러워졌다. 어릴 때 주변 사람들이 나의 외모를 오빠와 비교하고, 그들만의 기준으로 이러쿵저러쿵 말할 때 엄마만이라도 "넌 그 자체로 예쁘다"고 해줬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초등학교때부터 기형적인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나서진 않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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