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모스 Oct 22. 2022

"넌 되바라져서 좀 눌러줘야 해"

정신의학에 ‘둘째 딸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큰 아이는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부모에게 집중적인 애정을 받았고, 후엔 ‘맏이’라는 이름으로 책임감과 자율성이 보장된다. 막내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둘째는 상대적으로 맏이나 막내보다 관심도 덜 받고 책임도 가볍다 보니 부모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과도하게 착한 아이 혹은 지나치게 경쟁의식을 갖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주장한 내용인데 나 역시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요즘 왕왕 든다. 


난 한글을 혼자 깨쳤다. 내가 신동이라 그런 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마와 오빠가 같이 한글 공부를 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귀동냥으로 한글을 익혔다고 한다. 엄마가 따로 앉혀놓고 가르치지 않아도 난 언제나 스스로 해냈다고 한다. 뭘 몰랐던 시절의 난, 나의 그런 부분이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로 인정받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몸으로 하는 건 뭐든 못했지만, 앉아서 하는 건 뭐든 자신 있었다. 6살 때 엄마가 놀지 말라는 옥상에서 놀다가 뺨을 크게 다친 이후로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건 절대 안 했고, 한번 말하는 내용은 쉽게 잊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범생이'였다. 


학교 다니는 내내 학업적인 면으로 부모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이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에게 칭찬을 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시험을 잘 보면 "엄마, 아빠 모두 공부를 잘했으니까 못하는 게 이상한 것"이라고 했다. 상장을 받아 와도 별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엄마가 외출했다 돌아왔을 때 청소나 설거지가 돼 있지 않으면 "공부만 좀 하면 다냐"면서 "인간이 먼저 돼야지"라고 했다.   


오빠가 대학 입학 후 방황을 시작하니 열심히 사는 것도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엄마는 나에게 "네가 성격이 너무 세서 오빠가 잘 안 풀리는 거 같다"라고 했다. 


엄마는 오빠의 방황을 빨리 끝내기 위해 개명까지 하며 동분서주했다. 군 전역 후 하는 개명은 이것저것 복잡한 게 많았지만, 나에게 불도저 성격을 물려준 엄마답게 순식간에 그 모든 걸 해치워버렸다. 


자나 깨나 오빠 걱정만 하는 엄마에게 "난 걱정이 안 돼? 나도 좀 챙겨줘"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때 엄만 "넌 알아서 다 잘하는데, 오빠는 못하니까 챙겨줘야 할 거 같다"고 했다. 그때 그 말이 칭찬이라 여겨졌는데, 어느 순간 '내가 억척스럽게 열심히 사는 게 엄마에겐 아들에게 갈 복을 빼앗아 가는 걸로 보였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퍼졌다. 


난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그래서 오빠보다 먼저 취업에 성공했고, 오빠랑 6년을 같이 살면서 나도 마음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런 어리광을 피우지도 못했다.


엄마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던 순간은 최근에도 있었다. 


올해 초 엄마를 더 이해하고 싶어서 MBTI 테스트 페이지를 보내주면서 "한 번 해보라"고 했다.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 속상해서 말하면, 엄마는 "그 부분은 네가 이해해야지"라고 말했다. 친구와 다툼이 있었다고 미주알고주알 말할 때에도 "네가 이건 잘못했다"고 판결하곤 했다. 내 감정에 대한 공감 보다는 잘못을 먼저 지적하는 엄마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엄마의 MBTI는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엄마는 판결하는 거 좋아하잖아. 내가 속상한 일 있었다고 말해도 내 감정에 대한 공감보다는 잘잘못부터 가르치려고 해서 나 더 속상했어. 그런데 MBTI는 전혀 다르네."

"그건 널 좀 밟아줘야 했으니까. 넌 되바라져서 밟아줘야 했어."


황당했다. 그리고 창피했다. 엄마가 그 말을 할 때 옆에 남편도 있었다. 오랜만에 간 친정에서, 기분 좋게 하려던 MBTI 테스트였는데, 엄마의 뜻밖의 고백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건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엄마 아들이 남편을 데리고 단둘이 놀러 나갔는데, 서울로 이동해야 하는 우리 일정은 고려하지도 않고 늦게까지 영화를 본다며 붙잡고 있었다. 남편에게 1차로 "왜 빨리 안 들어 오냐"고 연락하고, 2차로 엄마 아들에게 "우리 *시까지 가야 하는 거 모르냐"고 따졌다. 


그걸 본 엄마는 "전화를 해서 네 남편 옆에 두고 오빠를 그렇게 잡아야 하냐"면서 "너만 잘났냐? 왜 오빠 기를 죽이냐"고 뭐라고 했다. 


황당했다. 우리 일정을 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 나가자고 한 것도 엄마 아들이었고, 말도 안 되는 스케줄로 영화를 예매해서 늦게까지 잡아둔 것도 엄마 아들이었다. 나였다면 나서서 "윗사람이 제대로 행동해야지, 네가 놀고 싶어서 동생 부부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끌고 나가서 그렇게 무리하게 영화를 봤어야 겠냐"고 혼냈을 텐데, 말이다. 엄마는 그날도 오빠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난 잘난 아들 기를 죽이는 쭉정이였던 걸까. 그렇게 차별할 거면 잘해주지나 말지.


작가의 이전글 "딸이 예뻐요"라는 칭찬에 엄마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