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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모스 Sep 26. 2022

차라리 엄마가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면...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미워


엄마와 싸웠다. 이번엔 좀 길게 갈 거 같다. 그동안 쌓였던 것들이 폭발했달까. 


며칠은 엄마에게 전화가 오길 기다렸다. 독하게 마음 먹고, 휴대전화에 저장된 엄마의 이름을 '우리 사모님'에서 '차단1'로 바꿨다. '젤 멋진 분'이라고 저장된 아빠도 '차단2'로 수정했다. 


그러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 안의 미안한 마음이 또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싫었다. 차라리 엄마가 뉴스에 나오는 학대를 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사람들에게 "이 사람을 욕해주세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 아들'(이라고 쓰고, 오빠라 불리는 사람)과 명백하게 차별을 했다면 속이 더 편할 거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걸 안다. 


엄마와의 갈등은 성격 차이도 있고, 세대 차이도 있고 여러 부분이 있지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게 '엄마 아들' 때문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행동하는 건 아무래도 외할아버지 때문이었을 거 같다. 살아서 제사를 지낼 때면 흰 도포를 입고 감투를 쓰고, 딸들에게는 "여자가 무슨 공부냐"면서 책을 불태워버리던 외할아버지였다. 뻔히 내 앞에서 "나한테 손자는 둘 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다. 외할아버지에겐 외삼촌이 낳은 자식들만 손자였던 거다. 


외할아버지에겐 1남6녀의 자식이 있었다. 그분이 아흔을 넘겨 지병으로 돌아가실 때 마지막까지 병간호를 한 건 막내딸이었지만, 그래도 아들만 찾던 양반이었다. 이모들 자식 중에 외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본 사람은 나를 포함해 아무도 없었다.


그런 외할아버지 밑에 자라면서 겪은 설움을 나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엄마는 노력한 거 같다. 적어도 대학은 서울로 보내줬으니까. 그렇지만 자라면서 느낀 '꽁기꽁기'하고 '이상하다'고 느낀 상황들이 명백한 차별이었고, 학대였음을 깨닫았다. 


그럼에도, 난 아직도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연락하길 기다리는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너무 밉다.


결혼 전까지 오빠랑 함께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오빠가 연락이 안된다", "오빠 밥 좀 차려줘라", "오빠가 잘 안되는 게 네가 세서 그런거 같다"는 말을 했던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한 거 같다. 거짓말을 하는게 명백하게 눈에 보이는데도, 아빠 생일에도 집에 오지 않는 아들을 안타까워 했던 엄마에게 짜증도 났지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분이니 받아들이려 했다. 


그렇지만 딸의 가족이 방문한 다음날 본인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았음에도 "너희 잘 놀러다니길래 연락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오빠라면 그랬을까? 확진 판정을 받자마자 "너 어떡하냐"면서 "빨리 검사받아보라"고 했을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나 때문에 내 남편과 자식까지 덩달아 이런 취급을 받은 거 같다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그래서 써보려 한다. 엄마가 미웠던 순간들을. 그때를 생각하면 엄마한테 또 먼저 전화해서 "내가 미안했다"고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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