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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체스 Sep 12. 2021

세계, 어디까지 먹어봤니?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신기한 식재료

나는 호기심이 왕성한 인간이다. 호기심이 있어야만 여행도 식도락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좀 거창하게 말하면 생물의 진화를 가능케 한 것도 호기심이다. 원시 해양을 헤엄치며 살아가던 폐어(肺魚) 중 호기심 많은 녀석들 덕택에 고생대에 육상 동물이 출현할 수 있었다, 고 주장하는 건 오버일까? 호모 사피엔스로 한정하자면 호기심 넘치는 몇몇 고대 인류들이 밤가시에 찔려 피를 흘려가며 밤을 먹기 시작했고, 복어의 독에 무수히 죽어나간 덕택에 우리는 지금 속씨원한 복어맑은탕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선조의 피를 단 몇 퍼센트만이라도 물려받은 탓인지 나는 처음 보는 식재료를 보면 적어도 주저하지는 않는다. 특히 해외여행 중에 한국땅에서는 접할 기회조차 없는 식재료라면, 침샘이 돋아 오르는 것까진 아니지만 호기심을 억누르기 힘들다. 그리하여, 나름 적지 않은 여행의 경험을 갖고 있으면서도 소심하기 짝이 없는 탓에 손에 땀을 쥐는 어드벤처도, 가슴 콩닥거리는 로맨스도, 현지인과의 끈끈한 우정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내게, 몇 안 되는 자랑거리가 있다면 그중 하나가 특이한 식재료의 경험이다.

쿠바의 토끼 요리. 토끼는 진귀한 식재료는 아니지만 지금껏 딱 한번 접해봤다. '흐응, 고기네' 정도의 감상

(쿠바 아바나의 나름 명성 있는 식당이었고, 내가 애정 해마지 않는 쥬이 드샤넬을 살짝 닮은 여종업원이 있어서 소심하게 사진을 찍어보았다. 나중에는 테이블에 와서 어깨동무하며 사진도 찍어주었다.

오른쪽은 쿠바의 국민 맥주인 '크리스탈', 그리고 쿠바의 가장 흔한 칵테일인 '쿠바 리브레'. 별것 아니고 그냥 럼에 콜라를 섞은 것)

쿠바의 음식에 대해서는 야박한 소리 밖에 못 하겠다. 그럼에도 모히또에는 애플민트를 아낌없이 넣어주어서 그것만큼음 감격했다.

본격적으로 그리고 과감하게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내 식재료 탐험의 1위에는 '비둘기'가 랭크되어 있다. 하하하. 눈을 의심하지 마시라. 그 비둘기 맞다. 평화의 상징, 닭둘기, 이른 아침 유흥가에서 취객들의 토사물을 쪼아 먹는 그 조류, 바로 그 비둘기 맞다.

비둘기를 먹은 곳은 이집트다. 이집트는 비둘기를 보양식으로 먹는다는 얘길 접한지라 이집트 방문 전에 꼭 먹어보리라 다짐을 하고 있었고, 실제로 해냈다.  

비둘기가 양날개를 앞쪽으로 쭈욱 펼치고 있는 모양새로 구워져 나왔다.

이집트에서는 비둘기를 사육한다. 카이로 같은 도시에 가면 건물 옥상에 백엽상 모양의 큰 상자 구조물이 종종 보이는데, 거기가 비둘기를 키우는 곳이다. 길거리의 토사물을 주워 먹고 자라지 않으니 위생적인 면에서는 우리네 닭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조리법은 한번 살짝 삶아낸 다음에 구워내는 방식. 맛은? 밀도가 치밀하고 쫄깃한 닭고기 같다. 솔직히 말하면 닭고기보다 맛있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렇지만 고기가 너무 적어서 한 마리를 다 먹어도 끼니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단점. 우리네 포동포동한 닭둘기를 대량으로 잡아다가 이집트에 수출하는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집션들이 한국산 수입 비둘기를 보고는 ‘이렇게 실한 비둘기 고기가 다 있나!’ 놀랄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K-비둘기’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것이 닭둘기라 할지언정 조류라는 피사체는, 날아오르는 모습을 포착하기만 하면 나름 멋진 피조물로 비춰진다

1위의 임팩트가 세다 보니 2위부터는 선정이 까다롭게 느껴진다. 2위에 랭크된 음식의 도시는 '시드니'다. 서구 문명국가 중 하나인, 그리고 세련된 도시 이미지를 가진 시드니, 그것도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시드니에 괴랄한 식재료가 무엇이 있을까 싶다. 실은 내게는 랭킹에 올릴 만한 시드니 식재료가 두 가지가 있는데 '헉!' 하는 것보다는 '엥?' 하는 느낌의 식재료를 2위로 꼽아보았다. 그것은 바로 캥거루.

 

캥거루 스테이크 되시겠다. 호주 달러로 4X 달러였던 것으로 기억

아, 호주의 상징과도 같은 동물, 캥거루를 먹는다 말입니까? 네, 먹습니다. 맛있습니까? 아니요, 쇠고기와 거의 흡사한데 질깁니다. 근데, 아니, 지금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캥거루를 먹을 수 있지? 하겠지만, 호주로서는 궁여지책의 결단이다. 그 사연을 들어보시라.

호주에는 무수히 많은 야생 캥거루가 있다. 동물원이라든가 필요에 의해서 캥거루를 키우는 곳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호주의 캥거루는 모두 야생이다. 당연히 야생 캥거루는 보호받는다. 그런데 이 야생의 캥거루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 문제다. 많을 수밖에 없다. 번식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임신 기간은 한 달 남짓이고 짝짓기 기간이 따로 없이 연중 내내 임신이 가능하다. 그래서 어찌 되었냐고? 어느 정도인가 하면 호주의 인구가 2,500만 명 정도인데 캥거루는 그 두 배 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러다 보니 캥거루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가 막심하다. 아웃백 지역으로 나가보면 길거리에 로드킬 당한 캥거루의 사체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캥거루도 생명이고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살해당했으니 억울하겠지만, 캥거루를 친 운전자도 피해는 막심하다. 차도 크게 망가질뿐더러 거대한 캥거루를 치여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다. 피칠갑을 한 캥거루가 복싱 글러브를 끼고 나타나 꼬리로 후려치는 꿈을 매일 밤마다 꾼다고 생각하면 나도 오금이 저린다. 살면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생명체를 로드킬을 하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몸무게가 70kg씩 나가는 캥거루만큼은 치고 싶진 않다.

 

하여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캥거루의 개체수가 폭증하면 호주 정부는 캥거루 수렵을 허용한다. 자, 그렇게 되면 막대한 양의 캥거루 고기가 유통된다. 슈퍼마켓에도 팔리고 이렇게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감으로도 쓰인다. 심지어 햄버거의 패티로도 올라온다. 호주 여행을 한 사람이라면 아는 햄버거 가게가 있다. 바로 '헝그리 잭'. 미국에 맥도널드가 있고, 한국에 롯데리아가 있다면, 호주엔 헝그리잭이 있다. 호주를 대표하는 패스트푸드 전문점이다. 캥거루 사냥철이 되면 캥거루 고기가 워낙 저렴한 가격에 유통되고, 국가적 차원에서 캥거루 고기를 먹어 치워야 하는 사명을 완수해야 하기 때문에 헝그리잭에 캥거루버거가 메뉴에 올라오는 것이다. 나도 먹어보진 못 했다. 흠, 이 버거의 이름을 '캥버거'라고 하면 어떨까.

캥거루 순살코기 1kg이 1.6만원 가량 (18 호주달러)
호주의 ‘롯데리아’인 헝그리잭
시드니 맨리(Manly) 비치에서 먹은 햄버거. 아주 평범한 쇠고기 패티입니다.

아, 이쯤에서 시드니의 '엥?' 하는 식재료가 캥거루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과연 ‘헉!' 하는 식재료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악어다. 치킨 가라아게처럼 조리한 악어 튀김을 먹었고, 치킨 가라아게와 거의 흡사한 맛이 났다. 쫄깃한 닭고기 식감. (파충류들은 조리해보면 대체로 닭고기와 흡사하다고 한다)

시드니 이자카야의 악어 튀김
알파카 고기 볶음밥. 쿠스코 첫번째 방문의 마지막 식사였다. 이걸 입속에 밀어넣듯이 식사를 마치고 밤버스를 타고 티티카카호수로 떠났다.

3위, 알파카 고기.  아, 맛있다. ‘그 귀여운 녀석을 어떻게 먹어?’ 하겠지만 양도 귀엽고 소도 귀엽지만 먹지 않습니까? 아니, 귀엽고 말고를 떠나서 양을 키워 털을 옷감으로 사용하고 그 고기를 먹듯이 남미에서는 알파카가 양이다. 지구 반대편 한국인들의 따스한 겨울을 위해 코트의 옷감이 되어주고, 그리고 나서 남은 고기는 잉카의 후예들이 맛있게 먹는다. 문제 될 게 있습니까?


단 돈 2천 원 정도로 기억되는 알파카 볶음밥은 그저 '육류'라는 것 외에 뭐 하나 내세울 요소 없는, 볶음밥의 부속물로써의 고기였다. 알파카 고기라길래 시켜봤던 것뿐. 그러고 나서 다시 10년쯤 지나서 페루를 방문했을 때, 알파카 스테이크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마추픽추 아랫동네인 아구아스깔리엔떼스에서 파인 다이닝을 겨우겨우 찾았다. 아무거나 잘 먹는 나이지만, 그때만큼은 와인을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알파카 스테이크가 메뉴에 있어서 주문을 했는데, 웬걸. 너무 맛있잖아, 엉엉 울면서 먹었다.

     

알파카 스테이크. 색상이 오묘하죠. 돼지고기 같으면서도 쇠고기 같다. 중간 정도로 구워서 살짝 핑크빛이 감돈다. 색상으로만 보면 미디엄웰던
엉엉 울면서 먹은 이유는. 이렇게 귀여운데 어쩜 이렇게 맛있냐며 엉엉 울었기 때문.
어지간해서 기념품을 사오지 않지만, 진짜 알파카 털로 만든 알파카인형, 너무 귀엽잖아.

그 외에도 색다른 음식은 여럿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순록 고기를 잔뜩 넣은 수프를 먹어 보았고, 케냐에서는 영양 고기도 먹었다.(가젤 종류였는지 임팔라였는지까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도 식재료로 쓰이는지라 자랑거리는 안 되지만, 지금껏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았던 고래고기는 스웨덴에서, 그리고 개구리 튀김은 베트남에서 먹었다. ‘타조회’도 낯섬의 영역에서는 상당히 순위가 높을 법도 하지만 여행이 아니라 회식이었으니까 패스.


알파카는 맛있었다고 털어놓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식재료들에 대한 평을 내리자면 한번 시도만으로 족하다. 우리가 닭과 돼지와 소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순록과 톰슨가젤과 악어 고기에 열광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열광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가축화했거나 혹은 적어도 유통이라도 되어서 미식가의 테이블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처음 보는 식재료를 접한다면 가차 없이 주문을 할 것이다. 곰 발바닥 요리라든가 샥스핀 등 불법적인 요소가 있거나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공수된 재료가 아니라면 내 호기심은 어디라도 가닿을 것 같다. 점심 하나 먹을 때도 검증된 식당보다는 처음 가보는 모험을-아직 안 가봤단 얘기는 아무도 안 가고 있다는 뜻이고, 그것은 그 식당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단 의미이므로 다들 저어하지만- 감행하는 타입의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다. 맛을 떠나, 궁금한 것이다. 아주 희박한 확률이지만 그러다 운 좋게 맛집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메뉴 제일 아래칸에 그 누구도 주문해보지 않아 발견되지 못한 진주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자랑거리는 아닐지라도 하나의 성취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육지에 오른 폐어처럼, 운 좋게 복어의 내장과 알을 피해 고기만 먹고 살아난 혈거인처럼.

순록탕에서 건져낸 순록고기와 감자와 당근. 오로라를 관찰하면서 중간중간 몸을 녹이라도 설치된 오두막집에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오로라를 보려면 추위를 견뎌야 해요. 추운 겨울 북위 70도 정도는 올라가야 하니까.
3일밤을 잠복했는데 이게 전부였다. 억울하다. 나도 오로라 커튼 보고 싶단 말이다
개구리 튀김. 파충류가 아니라 양서류지만 역시나 닭고기 식감이다.

후일담.

랭킹에도 없고 진귀한 식재료라고 하기에 민망하지만, '뭐?'라는 반응이 나올만한 음식이 하나 있다. 이 이야기는 다른 포스팅에서 다뤄질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여기서 꺼내 본다. 그 음식은 바로 '조기회'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인 도미토리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좀이 쑤시던 차에 도미토리 주인 내외와 나처럼 좀쑤족 두엇이 함께 작당을 하여 짧은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쪽으로 40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해안도시 마르델플라타. 그곳에서 어느 교포 아주머니 댁에 잠시 방문을 했는데 대서양에서 잡은 조기라며 회를 떠주셨다. 한 달간의 남미 여행 중에 초고추장을 찍은 생선회를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감격 또 감격.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그 지명조차 모르고 살았을 마르델플라타라는 도시에도 아주 작은 교포사회가 있었다. 거기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분은 해산물 수출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인 여행자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잡은 수산물 중 조기와 꽃게를 커다란 아이스박스 한가득 가져왔던 것이다. 덕분에 꽃게찜도 실컷 먹었다. (꽃게찜은 20일 후쯤 '까부 프리오'라고 하는 작은 브라질 도시에서도 실컷 먹었는데, 그 얘기는 또 길어지니까 여기서 그만). 그분으로부터 짧게 사업 얘기도 들었는데 주력 수출품목은 간장게장용 꽃게라고. 당시 김X미 간장게장이 한국 홈쇼핑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는데, 그게 자기네가 대서양에서 잡은 꽃게라고 자랑스레 말씀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의 꽃게와 맛은 똑같고 크기는 훨씬 크더라구요. 대서양의 꽃게라는 것. 해수욕장에 출몰할 만큼 흔하기까지.  


대서양의 해산물을 한국으로 수출하는 마르델플라타의 어느 교포분 덕택에 원없이 회를 먹었다
마르델플라타 항구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사이좋은 바다사자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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