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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이 Jan 30. 2022

수능특강 지구과학1, 수학1, 수학2

이제까지 살아온 것만 봐도 난 강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또 하나의 수능이 끝났다. 수능이 끝나면 내 책장에는 공짜로 가져가라고 해도 가져갈 사람 없을 교재가 남는다.


작년에도 열심히 살았다. 먼 곳을 다니느라 지하철에서만 하루에 세 시간을 보냈다. 과외는 소위 가까운 곳에서 하면서 ‘꿀 빠는’ 일이어야 한다던데, 유독 동선이 길었다. 자취방이 있는 회기에서 하남, 구로, 영등포, 인덕원, 금천구, 이수를 오갔다.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한 것 같지만, 달리 보면 이런 구석구석을 언제 돌아다녀 보겠는가. 돈도 모았고,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과 함께 호흡하며 나 역시도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울 수 있었다. 게다가 작년에는 유독 학부모님이 속 썩인 적이 없다. 오히려 과할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


한 해 동안 나를 믿고 따라준 학생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집에 손 벌리지 않을 수 있었다. 가족의 지원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에서, 스무 살 때부터 누군가의 앞에서 말을 하며 돈을 벌고 거의 모든 생활을 했다. 지금은 나이가 꽉 차 가족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기에도 애매하지만 말이다.



스물여덟이라는 나이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부담감을 가져다주는 요즘이다. ‘더는 과외를 안 하겠다는 연락을 받지는 않을까’, ‘이제 또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지’, ‘무엇이 문제였지’ 등 신속한 해답을 기다리는 고민의 늪에 언제까지 빠져 허우적대야 하나 싶다. 물론 과외보다 더 고되고, 힘든 일을 하면서, 하루 벌어서 하루를 겨우 버티는 – 심지어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 수많은 사람에 비해 나는 더 편하게 살았음을 알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뚜렷한 목표가 없는 스스로가 싫다. 흙수저의 삶을 살았으면서 다른 또래들처럼 정신 차려서 일찍 자리 잡지 않고 허송세월한,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한 ‘가난할 수밖에 없는 DNA’가 싫다. 주변의 수완 좋은 친구가 과외로만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왜 여태까지 그런 생각을 못 했나, 진작에 전투적으로 돈을 끌어모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든다.


직접 만든 시험지


만약 지금 당장 직업을 고른다면 주저 없이 강사를 선택할 것이다. 실력도 있으면서 ‘좋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강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잘하는 일이고, 친구들도 내가 강사를 하면 잘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해왔다. 그러나 오래 이 생활에 몸담고 있었음에도 그동안 한 번도 알아보지 않았던 학원/인강 강사의 세계. 인터넷에 검색해본다. ‘고위험-고수익의 직업’, ‘대학생 때부터의 꾸준한 노력’, ‘최소 10년간의 ‘무명’의 강사 생활’ 등이 키워드로 등장한다.


역시 어느 분야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잘 버티기나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어떤 애는 여기 취직했다더라 하는 부모님의 따가운 눈초리, 주변 친구들의 노력과 이를 보고 드는 무기력함, 공부를 게을리했던 대학 생활에 대한 후회,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막함, 낮은 자존감이 뭉쳐져 거대한 눈덩이가 나한테 굴러오는 기분이 들었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쏜살같이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복용하기 시작한 정신과 약이 갑자기 무력해졌다. 심장이 빨리 뛰고 바닥이 빙빙 돌고, 눈물과 함께 사방의 벽이 내게 다가온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시각은 어느덧 아침 7시를 훌쩍 넘겼다. 안 되겠다, 얼른 잠으로 도피해야겠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눈을 떴다. 마음이 안정되고 파묻혀 있던 눈 속에서 헤집고 나올 에너지가 생겼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현재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사람은 누구나 왔을 이런 순간에 어떻게 이겨냈는지 솔직한 이야기가 들어보고 싶었다. 일전에 스치고 지나갔던 유재석의 말이 생각나서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래, 목표도 좋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에 집중하자. 희망 진로는 강사 아니면 기상 관련 직종이고, 당장 2월에 공무원 1차 시험과 3월에 산업 기사 시험이 있다. 그렇다면, 미래를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생각을 잠시 접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어떨까? 시험이든 희망 직업이든 모두 과학 지식이 필요한 일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뭔가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예전에 읽었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의 주인공처럼, 월에 얼마 이상 모으겠다는 계획까지 추가했다. 그래, 이제까지 살아온 것만 봐도 난 강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의 1년에 집중해보자. 잠깐 주저앉았을지라도 다시 일어나 후회없이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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