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멩이 Jun 11. 2022

+)  과학 강사의 꿈

제17회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출품작

문제없이 달리던 자동차의 기름이 다 떨어져 버렸다.


‘힘내라’, ‘화이팅’... 응원의 말이 더는 힘이 나지 않았다. 터덜터덜, 한 걸음 두 걸음. 반짝반짝, 주유하라는 경고등. 급기야 무릎을 굽히고 주저앉았다. 딱히 슬픈 일이 없는데도,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없는 듯 눈물을 흘렸다. 어느샌가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어깨를 토닥이며 물었다. “젊은 친구, 왜 그래?”     


스물이 되자마자 뒤를 돌아볼 여유 없이 고속도로에 들어왔다. ‘다른 나라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경제적인 건 알아서 해결하는데...’ 쉰이 넘어서도 허리가 휘도록 일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담긴 속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그렇게 비용이 많이 드는지 커서야 알았다. 공부와 서울에서의 생활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공부에 집중하려 해도 지금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 알바를 하면 장학금을 위해 공부에 집중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며칠 전 과학을 가르쳐주기 위해 새로 만난 과외생의 말, “노력하면 성적이 오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결과가 전부는 아니죠. 그것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답을 하며 일과 학업의 사이를 저울질하려 ‘노력’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균형이 무너지면 과정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위기. 마트에서 한 묶음 라면을 사서 자취방 찬장에 넣어놓고, 포스트잇에 바를 정 자를 그려가며 일주일에 걸쳐 나눠 먹었던. 친구라고 하기도 모호할 정도로 안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도와달라는 사정을 하며 애꿎은 관계만 어색하게 만들었던.     


어딘가에 있을,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고 그렇게 몇 번의 고비를 넘겼다. 그러다 한 명 두 명, 코로나19로 얼어붙었다는 취업의 문턱을 잘도 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꿈을 꾸지도, 자리도 잡지 못한 내가 하염없이 초라해 보였다. 언제 비로소 하루하루를 걱정하는 삶에서 벗어날까?     


새해 첫날, 무기력함을 달래고자 후배와 만나기로 했다. 그는 학교를 갓 졸업하고 인턴을 하며 방송국에 입성하는 목표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우리끼리 정한 시각과 장소에서 만날 정도로 막역하다. 켜켜이 쌓여만 가는 불안감을, 부딪히는 술잔에 기대어 털어놓았다. 평소 간결하고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를 좋아하는 그가 내 말을 다 듣더니 입을 뗐다.     


“형, 저는 형이 어떤 사정인지 다 알아요. 그런데도 평소에 다른 사람 앞에서 어렵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 모습에 놀랐어요. 하지만 저는 다 알아요. 제 생각엔 형만큼 어려운 사람도 없고, 형처럼 스무 살 되자마자 과외 같은 거 하면서 부모님 도움 안 받기 시작한 사람도 없어요. 형만큼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쪽으로 나가보시는 건 어때요?”     


친구는 나의 상황을 그대로 이해해주었다. 순간, 취준생으로서 으레 받았던 응원을 들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용기가 샘솟았다. 친구는 길 복판에 멈춰 어찌할 줄 모르는 나를 뒤에서 밀어주었다. 덕분에 과학을 공부하는 모든 청소년의 스터디 플래너에 이름이 실리는 강사라는 꿈이 생겼다. 그 꿈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한 달째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래, 난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다시 일어나서 달려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