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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oonsam Feb 17. 2022

한 접시의 소통

전쟁 났냐, 식사하시던 아부지께서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일어나신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시간째 계속 쿵쾅쿵쾅 하는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오물거리며 밥을 씹던 나도 인상을 찡그린다. 윗집에선 도대체 날마다 무얼 하는지, 항상 부산스럽게 움직이거나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도 오늘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 시끄러운 느낌이다. 평소 과묵하신 아버지께서 저렇게 한 말씀 하실 정도면 말 다했다.


때마침 텔레비전에서는 층간소음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이웃이 내는 소음에 견디지 못해 몸싸움을 벌이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일어난다는 내용이다. 윗집에서 쿵쿵 울려대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뉴스를 보고 있자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아부지를 따라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식탁에서 일어난다.


아쉬운 건지 다행인 건지, 득달같이 윗집으로 달려 올라가 집주인과 멱살잡이를 할 만큼의 용기는 내게 없다. 그저 묵묵히 참거나, 안 들리는 척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 가끔씩 기분이 예민한 상태일 때는 이건 아니지! 울컥 화가 치밀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깊게 꽂고 음악을 들으며 잠자코 화를 삭인다. 굳이 갈등을 빚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이것이 이제는 꽤나 거슬린다. 하루 이틀 이어져 왔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층 주인이 바뀐 이래 한 달 전부터 우리 가족은 그 정체 모를 소리에 시달려 왔다. 이전에 지금 사는 윗집 가족이 오기 전에는 이렇게 신경이 쓰일 만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집에서 책을 읽으려 침대에 엎드리거나, 공부를 좀 시작해볼까 하는 찰나에 신경을 긁는 소리가 느닷없이 시작된다.


그럴 때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집에 볼링 시설을 갖춰 놓았는지, 아니면 운동 기구로 운동을 하는 것인지 식구들마다 온갖 추측을 해 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사를 올 때 보니까 윗집 아저씨 풍채가 장난 아니던데, 하는 엄마의 증언으로 ‘윗집 운동기구설’ 이 그나마 설득력을 얻었다. 풍채가 좋다니. 갈등을 빚지 말아야겠다는 내 마음을 더욱 굳히게도 만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후 참고 지내기를 일주일, 아무리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식구들이 힘겨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낮잠을 주무시던 엄마가 무엇인가 쿵! 하는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시는 일이 잦아졌고, 좀체 싫은 내색을 보이시지 않는 아부지께서도 한 지붕 아래 못 살겠다며 질색하신다. 나 또한 마찬가지, 굳이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참으려 했지만 인내심의 한계치에 다다랐다. 처음엔 낮 동안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둔탁한 소리들이 이제는 늦은 저녁, 심지어 잠에 들 무렵까지 들려왔던 탓이다.




악당을 때려잡으려 검을 휘어잡는 용사가 된 듯, 결국 나는 식구들을 대표해 인터폰을 잡는다. 그렇지만 직접 위층을 부르는 일은 아령을 불끈 거머쥔 아저씨를 상상하며 참아보기로 한다. 대신 경비아저씨께 이 일을 고하기 위해 호출 버튼을 꾸욱 누른다. 경비 아저씨께 부탁드려 이쪽의 의사를 전달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은 내 신변의 안전을 확보하고, 또 평화로이 윗집에 대한 예절을 지키기 위해서다.


뉴스에서 봤던 것처럼 우리 집도 층간소음 갈등에 휘말려 버렸네, 생각하니 참 안타깝고 막막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는 되도록 좋게 이야기하고 해결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렇지만 막상 인터폰을 잡고 나니 입맛이 꽤 쓰다. 혀로 입술을 한 번 훔친 뒤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할 말을 잠자코 연습해 본다. 여기 202혼데요… 하고 중얼거리기 시작한 순간 신호음이 끊긴다. 이윽고 달카닥 하는 소리와 함께 예에- 하는 경비아저씨의 나른한 음성이 들려온다.


여차저차 우리 식구들이 겪는 소음의 고충에 대해 설명을 해 드리고, 크게 문제를 일으키고픈 마음은 없으니 대신 꼭 좀 전해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거듭한다. 그러고 나자 얹힌 것이 쑤욱 내려간 듯, 괜스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를 시원하게 다 쏟아내고 나니, 묵묵히 듣고 계시던 경비아저씨께서는 또 예에, 하고 길게 말꼬리를 늘이며 대답하신다. 성가셔하시는 모습이 눈에 역력히 떠오르지만, 이제는 됐겠지 싶은 마음이 든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으로 인터폰을 내려놓는다.


잠시 후 물을 마시며 쉬려는데 인터폰이 울린다. 앞으로는 조심하겠답니다, 경비아저씨의 연락이다. 혹여 우리 집으로 달려 내려와 문을 두드려대진 않을까 내심 걱정하던 차였다. 다행히도 경비아저씨께서 대신 말을 잘 전해주신 듯싶다.


흘끔 윗집을 보며 귀를 기울여보니 과연 조용해졌다. 평소 같으면 지금도 드르륵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야 할 때지만 기척이 거의 없다. 감사합니다! 처음 통화했을 때처럼 아저씨께 인사드린 후 사뿐하게 인터폰을 내려놓는다.


간단한 일이었구먼, 마찰 없이 일을 해결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소파에 털썩 앉는다. 이 얼마만의 고요함인가! 혹시 낮 동안 윗집 아저씨께서 집에 안 계시니 순순히 조용해진 것일까, 잠시 생각했지만 아무렴 어떨까 싶다. 드디어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달콤하고도 조용한 휴식의 시간을 한껏 만끽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어서도, 늦은 밤이 되어서까지도 집은 소음 없이 계속 고요하다. 도리어 너무 조용해서 적응이 안 될 노릇이다. 저녁을 준비하시던 엄마는 진즉에 경비 아저씨께 말씀드릴 걸 그랬다며 혀를 차신다.


그러게 말이다. 이리도 간단히 해결될 줄 누가 알았을까. 조용해진 집이 분명 반갑긴 하지만, 혹여 싸움이라도 나지 않을지 걱정하며 직접 찾아가 말하기를 주저했던 것이 내심 씁쓸하기도 하다. 가까이 붙어서 사는데 이렇게나 거리감을 느낀다니, 새삼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파트나 빌라처럼 다세대 주택이 꾸준히 늘고 있는 요즘, 여러 문제들이 많이 일어나며 이웃 사이의 벽이 더욱 두터워지는 듯싶다. 층간소음 문제도 그렇고, 사소한 갈등으로 이웃 간에 폭행이나 살인이 더러 일어나고 있어서 바로 아래나 위에 사는 사람이라도 가까이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내가 윗집 아저씨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봐 마음 졸였던 일처럼, 점차 ‘가까운’ 이웃의 모습이 ‘두려운’ 이웃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웃사촌이라는 살가운 명칭은 점차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것일지도 몰라, 나지막이 웅얼거리며 한숨을 쉰다.


흔히 요즘 세상은 무척 야박하다고 한다. 괜스레 남의 일에 나서면 손해라며, 자기 앞가림이나 잘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길을 걷다가 도움이 요청하거나 위험한 상황을 보게 되었을 때, 요즘은 웬만하면 다들 지나치기가 일쑤다. 그게 아니면 SNS에 업로드하기 위해 저마다 스마트 폰을 꺼내드는 것이 전부인 세상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 잇속을 생각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참 나도 반성할 만한 일이 많다. 얼마나 많은 일을 지나쳤고, 또 마음  속에서 살며시 고개 들던 양심을 억눌러왔던가. 나는 지금껏 무엇이 나에게 득이 되고 실이 되는지만 따져보는, 그런 삭막한 나날을 보내온 것이 아니었는지 되돌아본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밤을 보낸 뒤, 그 다음 날이 되어서도 집은 무척이나 조용한 느낌이다. 늦은 시간에 잠에 든 터라, 열 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잠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침대 위를 헤엄치고 있다. 무거운 눈을 반 쯤 뜬 상태로 가만히 윗집에 신경을 곤두세워 본다. 윗집의 소음은 간 데 없고, 그저 시계 초침 소리만이 집안을 채우고 있다. 만족스럽게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그때, 급작스레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본다. 엄마 앞으로 온 택배일까? 그렇지 않으면 경비아저씨의 방문인가? 아무리 짐작하려 애를 써 봐도, 이 이른 시간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를 만한 사람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한 번 더 초인종 소리가 울리는 찰나 윗집의 그 분이 머릿속에 반짝 떠오른다. 설마 조용히 좀 해 달라고 말했거니 해코지라도 하겠어, 생각하지만 이미 땀이 등줄기를 훑고 내려오고 있다. 집에는 나 혼자 뿐이라 흠칫 겁이 솟는다.


떨리는 손으로 인터폰 화면을 확인한다. 그런데 웬걸,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다. 사근사근해 보이는 한 아주머니께서 서 계시다. 자세히 보니 내게 보험 가입 권유를 하시거나 종교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요구할 것만 같은 느낌도 살며시 든다. 그래도 일단 윗집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찰칵, 현관문을 천천히 연다.


안녕하세요! 윗집에서 왔어요, 아주머니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내게 인사를 건넨다. 윗집은 아니라며 안심했건만, 결국 윗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상상하던 풍채 좋으신 아저씨가 아니었다는 점이랄까.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는데, 아주머니의 무릎께에서 서너 살 쯤 되어 뵈는 남자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혼자 오신 게 아니었구나, 고놈 참 귀엽게도 생겼다. 침대에서 방금 일어난 추레한 몰골로 아이와 눈을 맞춘다. 용케 울지는 않는다.


아이의 손에는 잡채가 담긴 접시가 들려 있다. 잡채를 조금 많이 해서 가져와 봤어요. 우리 남편도 죄송하다는 말 좀 전해 달라네요. 내 시선이 접시에 머무르자 아주머니께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신다.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던 아이는 엄마에게 잠시 눈길을 주더니, 이윽고 두 손으로 내게 접시를 건넨다. 세상에, 그 오동통한 손가락이라니! 그 광경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파하하 웃음이 터지고야 만다.


아주머니께서도 함께 웃으시며,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뛰어서 너무 죄송하다고 말씀하신다. 이미 아이의 똘망한 눈망울과 잡채 한 접시에 녹아버린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다. 엄마가 증언했던 ‘윗집 운동기구설’ 이 ‘윗집 귀염둥이설’ 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조고만 귀염둥이가 여태껏 뛰어다녔던 광경을 상상하니 그저 웃음이 난다. 앞으로 더 주의할게요, 아주머니의 훈훈한 인사를 끝으로 현관문을 닫는다. 훈훈한 인사만큼이나 잡채가 담긴 접시도 은은히 따뜻하다.


그 기세 그대로 기분 좋게 식탁에 앉아 잡채를 한 젓가락 먹어 본다. 아주머니께서 음식 솜씨가 참 좋으신 모양이다. 입 안 가득 고소함이 퍼지며, 지금껏 윗집에서 들려온 소음으로 쌓여 온 스트레스가 한 순간에 녹는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확실치도 않은 윗집의 사정을 넘겨짚고 지레 경계심부터 품었던 내 자신이 못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아무렴 어떠랴! 윗집 아주머니께 직접 사과도 받았고, 소음의 원인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미 내 머릿속엔 풍채 좋으신 아저씨는 간 데 없이 귀여운 아이의 눈망울, 그리고 사근사근한 아주머니의 얼굴만이 남아 있다. 물론 이 따뜻한 잡채도. 접시를 가져다주면서 아이 먹을 과자를 좀 선물해야겠다, 잡채를 우물우물 씹으며 생각한다.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바쁘고 삭막하게 살아가는 요즘, 이웃을 위해 마음을 열어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듯 무척이나 가까이 살면서도 나와 이웃 사이의 벽은 높다랗기 그지없다. 그저 피해를 볼 지도 모른다는,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안 된다는 계산에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몸을 움츠린다.


부끄럽지만 나는 윗집에서 찾아온 한 접시의 따뜻함으로 그 벽이 얼마나 허물기 쉬운가를 몸소 느꼈다. 또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이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비록 먼저 적극적인 소통의 손길을 뻗진 못했지만 윗집에서 내민 잡채 한 접시, 그들이 나누어 준 그 따뜻한 마음을 또 다른 이웃들에게 두고두고 갚으며 살아갈 생각이다. 요즘 사람들은 차갑고 이기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마음 열기를 망설일 것이 아니라, 마주친 눈길만으로도 먼저 미소로 인사할 줄 아는 그런 이웃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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