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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oonsam May 17. 2022

[카페 투어] 손 뻗어도 하늘은 안 닿아요, 오디너리핏

* 오디너리핏 연희점

브런치에는 왜 제목 글자 수 제한이 있는 걸까? '오디너리핏 연희'까지만 욕심을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뜸 초장부터 욕심을 내고 싶은 곳, 오디너리핏 연희는 그런 카페다. 대흥동에 있는 루아르 커피 바 대흥 본점과 함께 오픈된 곳이다. 높다. 연희동 내에서도 가장 높은 지대에 있어서 언덕을 조금 올라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괜찮다. 정말 괜찮다. 들어서면 가슴 가득 들어찬 숨이 절로 내려간달까.


내 고장 인천에서 무척이나 먼 연희동은 서울에서 문래동 다음으로 좋아하는 지역이다. 언제 어떤 기분으로 가더라도 포근하게 반겨주는 느낌이 들어서다. 올망졸망 크고 작은 주택들이 곳곳에 모여 있어 사람 사는 온기가 가득하고, 온 세상 만물이 다 있는 사러가 쇼핑센터도 있고. 차분한 걸음으로 주변 일대를 한 바퀴 휘이 돌다 보면 어느새 이 동네에 정이 들어 있다.

길 가던 중에 이렇게 순돌이도 만나고요
숨어있으면 못 찾을 줄 알았어?
아래 층은 다른 샵이니까 커피 말아달라고 하면 안돼요

연희동 웃자락에 자리 잡은 오디너리핏 연희는 차분하면서도 포근한 연희동 특유의 분위기가 진하게 묻어 있다. 주택가 사이에서 빼꼼하니 고개를 내밀어 방문객들을 반긴다. 언덕을 올라야 하기에 다소 힘든 점이 있지만, 카페 앞에 다다르고 나면 성취감이 느껴진다. 내가 여길 올랐구나, 이 좋은 카페에 왔구나 하는 그런 성취감.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 계단 더 올라가야 하지롱 :)  


분위기 있는 고택을 개조한 이 카페는 처음 방문하더라도 전에  한 번 와 본듯한 느낌을 준다. 주택 가운데에 계단이 있는 구조에, 푸릇한 정원이 있기도 하고. 오디너리핏 연희점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지 궁금한 생각이 든다. 건물 전체가 카페는 아니므로 들어서자마자커피를 주문하지는 마시길. 가운데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가면 된다. 아래층은 다른 편집샵 공간이다.

가운데 계단을 이렇게 올라가면
큰 통창으로 시원한 인상을 주는 오디너리핏 연희점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크게 조성돼 있는 바(bar) 를 중점으로 바깥 자리와 안 쪽 자리가 나뉜다. 바에서 왼편으로 나가면 시원하게 트인 연희동 전경을 볼 수 있는 바깥 자리에 앉을 수 있고, 오른 편으로 들어서면 조용하게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안 쪽 자리에 앉을 수 있다. 내가 방문한 날은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구름이 잔뜩 찡그린 날이었지만 바깥 쪽 자리는 비어 있는 곳이 없었다.

  

안 쪽에 자리를 잡고 내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정돈돼 있는 실내 공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이토록 정돈돼 있는 곳을 자주 돌아다니는데 왜 내 방은 먼지만 가득 쌓여 있는지 반성도 하게 되고. 오디너리핏 연희점 내부는 적절히 깔끔하고 공간 활용도가 무척 좋은 느낌이다. 다소 불편한 점이 있다면, 크게 연결돼 있는 형태의 테이블이 넓게 자리잡고 있어, 그 자리에 앉으면 프라이빗한 좌석 활용이 어렵다는 점. 그리고 의자가 그다지 안락하지 않아서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기가 막히게 잘 찍었죠? 저도 알아요
실내 통창 부근의 벽쪽 자리
바(bar) 바로 앞쪽 실내 공간. 아늑하니 좋았지만, 천장이 낮아서 목소리가 조금만 커도 울리더라.

요즘 많은 SNS 채널이나 커뮤니티에서 '감성카페 특' 이라는 제목으로 글이 자주 올라오곤 한다. 자리가 무척이나 불편하고, 다 무너져가는 공간으로 되어 있고(아마 언더스테이티드 형태의 인테리어를 말하는 듯한데). 개인적으로는 가볍게 유머로 받아 들이며 웃어넘기지만, 사실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다. 카페마다 업주들의 고민이 녹아들어있고, 그 고민을 존중하며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적어도 나는 내가 방문한 카페들을 더 존중하고, 미약한 글로나마 응원해 나갈 예정이다. 오디너리핏 연희점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갑자기 생각이 들어 적어봤다. 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나와 함께해 주시길.


모쪼록 오디너리핏 연희점 실내는 차분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다. 도시적인 인상의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한편으로, 옛 주택의 바닥과 천장이 공존한다. 묘한 느낌이다. 묘하지만 어색하지는 않다. 단 음식에 약간의 소금을 더하면 단 음식의 단맛이 더 강해지듯이, 기존 주택의 안락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모던하면서도 차가운 인테리어를 과하지 않게 잘 더한 느낌이다.

매장에서 파는 여러가지 굿즈가 깔끔하게 전시돼 있고
갖가지 소품들도 구석에서 시선을 끈다

안쪽 공간 잘 둘러 봤으니 이제는 주문할 시간. 오디너리핏 연희점의 커피는 기본적으로 브루잉 커피다. 핸드드립으로 어떻게 회전율을 감당할까 궁금했지만, 메뉴 아래쪽에 콜드브루도 있는 것을 보고 납득. 왜 에스프레소는 취급하지 않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으나 여쭤보지는 않았다. 아마도 커피의 자신감, 그리고 신념의 차원이겠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루잉 중급(intermediate) 자격증을 준비하던 시기, 무척이나 생각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하면 균일하고 예쁘게 포트의 물줄기를 유지할 것이며, 원두 본연의 맛을 연출할 수 있을까하는 그런 생각들. 다른 사람들이 추출한 커피가 내 것과 맛이 다를 때 느꼈던 그 당황스러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결과적으로 시험을 통과해서 자격증을 얻기는 했지만, 마치 운전면허증을 딴 것과 같은 마음이었다. "나란 사람이 운전을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커피는 무척 예민하다. 분쇄도나 추출 여건, 물의 양이나 온도가 미세하게 달라져도 맛이 크게 바뀐다. 이러한 특징은 핸드드립에서 두드러진다. 같은 바리스타가 같은 원두로 커피를 추출하더라도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심지어 바리스타의 기분에 따라서도 차이가 생긴다. 앞서 오디너리핏 연희점이 대단하다고 언급한 것은 이러한 브루잉 커피의 특징을 알고서도 주력 메뉴로 선보이고 있다는 데에서 느낀 것이다. 콜드브루 마실 거라고? 팍시, 브루잉 커피 드셔보세요. 꼭.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다. 그저 브루잉 그라인더와 드립 도구들이 있을 뿐
브루잉 커피 한 잔과 아인슈페너, 그리고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주문했다.
아인슈페너 크림 쫀쫀해요 빠방

공간만큼이나 브루잉 커피의 맛도 깔끔했다. 아인슈페너는 크림의 쫀쫀함과 달콤함이 충실했다. 특히 브루잉 커피는 주문할 때 설명 들었던 맛과 향이 모두 느껴졌다. 바스크 치즈케이크는 크게 특별한 부분은 없었지만 커피와 훌륭한 조합을 이뤘다. 전반적으로 부족함 없이 만족스러운 메뉴들. 다른 방문객들의 메뉴도 대체로 비슷했다. 잠봉뵈르를 주문한 분들도 왕왕 보였는데, 다음에 오면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너리핏 연희점의 진가는 바깥 자리로 나가야 느낄 수 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연희동 전경,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커피와 케이크를 즐기다 바깥 공기를 마시러 나갔다. 탁 트인 하늘과 연희동 전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연희동의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만큼 하늘이 가깝다. 손 뻗으면 떠가는 구름 한조각 정도는 검지와 엄지로 끄집어 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운이 좋게도 안개가 없는 날이어서 연희동도 막힘없이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멀리 야트막한 산까지 보여서 눈이 한결 편한 느낌도 들었고.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들 덜어내며 멍하니 있기에는 최적의 조건.


친한 사람이 연희동 카페 어디가 좋아, 물어본다면 단연코 1순위인 곳이다. 싫어하는 사람한테도 못내 아쉬워하며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카페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하늘멍' 때리면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분들, 소중한 친구나 연인과 데이트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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