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말 중에 비가 오면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라는 말이 있다. 빗방울이 이곳저곳 떨어지는 소리가 기름에 빈대떡을 지지는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라나(실제로 빗소리와 빈대떡 부치는 소리의 파장이 비슷하다는 음향분석이 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비가 오는 날에 빈대떡보다 커피를 더 즐겨왔던 듯하다. 빈대떡은 너무 헤비하잖아. 몸에 기름 냄새가 베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도 한몫 한다.
일단 나는 맑은 날씨보다 흐리고 어두운 날씨를 더 좋아한다. 흐리고 어두우면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비가 아스팔트에 스며드는 그 특유의 내음, 으레 '비 냄새'라 칭하는 그 냄새가 무척이나 좋기도 하고. 괜스레 감성에 젖기도 하고. 감성이 곤두서는 만큼 커피를 찾게 된다. 평소에 잘 마시지 않는 따뜻한 라테나, 진득한 크림이 잔뜩 올라가 있는 아인슈페너 같은 크림 커피가 유독 마시고 싶어진다.
☕마포구청역 '먼스 스컬프쳐(month.sculpture)'
➡ 마포구 성산로2길 21-31 1층
고백하자면, 사실 다녀온지는 꽤 됐다. 시간이 비교적 오래 지났음에도 이렇게 글로써 추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 날은 비가 무척 많이 내려 바짓단이 잔뜩 젖었고, 습도까지 높아서 이래저래 불쾌지수가 높았다. 그럼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비오는 날 특유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던 실내, 그리고 맛있는 커피 덕분이다.
좋은 카페의 본질은 커피 맛에 있다지만, 특유의 분위기와 인테리어를 빼 놓을 수는 없다. 커피의 맛이 좋아도 내부 분위기나 인테리어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없고, 반대로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좋아도 커피 맛이 좋지 않으면 영 별로일 수 있다. 먼스 스컬프쳐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비 오는 날의 감성에 오롯이 젖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 그리고 진한 커피의 향과 맛을 모두 충족했던 곳이다.
소소한 듯 소소하지 않은 벽면 곳곳의 그림은 배치에 큰 신경을 썼을 듯한 느낌이다. 각 벽면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크기가 크지 않아 다소 휑한 듯한 느낌을 자아냈지만 묘하게 공간을 가득 메우는 인상을 준다. 그림을 바라보다 보면 마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은 듯한 책들, 갖가지 오브젝트들도 시선을 끈다. 적당하게 은은한 조도의 조명은 그림과 오브젝트의 느낌을 극대화해준다.
볼륨을 한껏 낮춘 배경음악도 귀에 들어온다. 일반적으로 카페의 배경음악은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막아주고, 내가 앉은 테이블의 말소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어느 정도 시끄러운 볼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먼스 스컬프쳐에 잔잔하고 작게 흐르는 가사 없는 배경음악은 모든 테이블을 포용하는 느낌이다. 앉아 있는 다른 방문객들은 이러한 배경음악에 화답하듯 조곤조곤한 말소리로 조용히 분위기를 즐긴다. 천천히 내부를 훑으며 음악에 감사함을, 함께 커피를 즐기는 방문객들에게 내적인 감사함을 표한다.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가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접 받아서 테이블로 가져오는데, 공간이 비교적 협소해서 자칫 어디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무사히 테이블에 착륙. 비가 오는 날은 역시 농도 짙은 크림커피다. 빨대 없이 입을 대고 천천히 기울이면 달콤한 크림과 쌉싸름한 커피가 입안 가득 들어찬다. 윗 입술에 크림 묻으면 혀로 삭 핥아주고. 티슈에 양보할 크림은 없다.
차가운 라테는 고소했다. 난 차가운 라테를 마실 때 바로 섞지 않는다. 빨대를 꽂아 아래쪽의 우유를 먼저 마셔보고, 그 다음 빨대를 위쪽으로 올려 샷을 마셔본다. 카페 매니저 시절 직업병이다. 우유는 어떤 것을 쓰는지 유추해보고, 샷은 어떤지 음미해본다. 사실 부질없다. 이번에는 바로 섞어서 전체적인 맛을 음미한다. 우유와 샷이 섞이며 그라데이션을 그리는 그 모습은 언제봐도 매력적이다.
케익은 적당히 달고, 적당히 맛있다. 같이 주문한 보람을 느끼는 정도다. 커피와 찰떡궁합인 만큼 계속 손이 간다. 커피 한 모금, 케익 살짝. 크림치즈에 새큼한 과일이 더해진 케익은 밀도가 탄탄하다. 눅진하게 혀 위에 녹아든다. 적당히 맛있다고 했는데 표현만 보면 엄청 맛있는 느낌이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먼스 스컬프쳐의 분위기를 소개한다. 비가 오면 항상 생각나는 카페, 내게는 빈대떡보다 먼스 스컬프쳐다. 최근에는 어떤 분위기로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시간이 나면 꼭 다시 가 볼 생각이다. 먼저 가시게 되면, 꼭 눅진한 크림 커피를 마셔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