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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률 Jul 12. 2024

길으을 비켜라아

차폭감은 아직도 없고 T자 주차를 한 번에 성공한 적도 없다. 하지만 2차선 도로에서 구급차를 위해 길을 터준 적은 있다! 그래서 난 이제 초보운전이 아니라고 한다.


'뭐지? 왜지? 앗 뒤에..!'

초보 시절, 앞차가 갑자기 차선 바깥쪽으로 붙이면서 가길래 당황한 적이 있다. 얼레벌레 주변을 살피다 보니 구급차가 내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이미 다른 차선에서 충분히 간격을 벌려주어서 내가 어리바리하고 있어도 다행히 지나갈 공간이 충분했나 보다.  


도로 위의 선배님들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양보도 안 해주고 깜빡이 없이 뒤에서부터 달려와서 추월하는 선배님들이었는데. 동네에서 마주칠 때마다 쥐어패던 동네 형이 할머니 리어카를 끌어드리는 장면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약간 뭉클하기까지 했다.




넓은 공터가 아닌 2, 3차선 도로에서 길을 터주는 건 초보운전자에게 꽤 고난도 기술이다. 옆 차선 차와 호흡을 맞춰서 간격을 벌려하고 그 와중에 비상등을 눌러서 주변 차들에게 신호를 보내야 한다. 앞차와 뒤차가 구급차를 언제 발견하고 멈출지 모르니까 충돌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옆으로 비켜주기만 하면 되는 건 그나마 간단하다만, 상황 판단을 해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다. 구급차가 중앙선을 넘어서 주행할 수도 있고 교차로에서 신호와 상관없이 달려갈 수도 있다. 


게다가 초보는 시야가 좁디좁다. 차선 중앙으로 잘 가고 있는 건지, 앞 차가 급정거하진 않는지, 옆 차가 깜빡이 없이 끼어들진 않는지 등 눈은 두 개뿐인데 봐야 하는 건 많다. 그런 중에 백미러로 뒤에 구급차가 오고 있다는 걸 미리 파악할 정신은 없다. 


뭣도 모르고 차선 중앙에 잘 맞춰 달리고 있을 때면 뒤에서 답답한 구급차가 비켜달라며 조용히 "빵" 할 때가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는 거다. 아직도 내 바로 옆에서 "빵!!!" 하는 게 아닌 이상 비켜야 하는 게 나인지 앞 차인지 잘 모르는데 정중한 "빵"이 초보 귀에 들릴 리가.




시야가 넓어져서 백미러도 볼 수 있고 차선 옮기기도 익숙해진 때에, 나에게도 선배미를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갑자기 백미러로 보이는 뒤차들이 홍해처럼 갈라지지 않는가? 그리고 그 사이로 구급차가 오고 있었다.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차선 바깥쪽으로 차를 붙이고 잠시 정지했다. 다들 머뭇거리지 않고 길을 터주는 순간에 나도 합류했다는 희열이 대단했다. 오케스트라 화음의 한 음처럼 자연스러웠다. 


운전하면서 화가 날 때가 참 많은데, 많은 차들이 일사불란하게 모세의 기적을 보여줄 때는 매번 인류애를 느낀다. 그리고 처음으로 일사불란함의 일부가 되었을 때가 초보운전 타이틀에서 졸업한 때라고 생각한다. 나 이제 좀 센스 있는 운전자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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