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느낀 것은 동업자가 있다면, 언젠가는 균열이 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 2022년. 아직 코로나가 한창 지배적이던 시절.
부산에 한 오피스 상권에는 점심시간인 11시 30분만 되면 수십은커녕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는 것을 2층 식당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와 저 중에서 10분의 1만 잡아도 대박이겠다."
아니 20분의 1만 잡아도 홀을 꽉 채우고도 남을 것 같아 보였다.
점심시간에 우르르 나오는 손님은 콩나물더미 마냥 사람들 머리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폐업을 했지만, 적어도 나에겐 다행이었던 건 투자 비용이 그다지 크게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동업자는 비용을 많이 대는 대신 서비스와 홀에 대한 매니저 부분을 모두 가져갔고, 나는 요리사인 만큼 주방에 대한 권한을 대부분 가져갔다. 그렇게 파트가 나뉘어 있지만, 항상 무언가를 할 땐 서로의 합의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합의라는 건 참 쉽지 않았다.
손님들에겐 곱빼기 메뉴를 필요로 했지만 이제 막 자리 잡은 메뉴판에 혼잡함을 일으킬 수 있는 것보다는 양을 많이 주는 메뉴를 새롭게 내자는 것이 내 의견이었고, 나는 그걸 강하게 어필했다. 나의 의견은 받아들여졌지만, 동업자는 나의 강한 어필에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왜 그런 부분에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나?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사업을 위해서 그런 감정을 억누르다 보니 반감이 생기기도 하고, 아무리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마냥 원치 않았던 이상 반감을 자신의 마음속 어딘가에 숨기고 있던 모양이었다.
같은 의견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는 매번 같은 의견만 있을 순 없었고 하면 할수록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위기가 왔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최고 경계 단위로 올라가면서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하기도 하고 회사가 사라지기도 하며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 점심식사를 하는 문화가 바뀌고 있었다.
우리는 그 문화를 체크하지 못하고 마냥 손님을 기다렸기에, 점점 줄어드는 손님에 현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만큼 스트레스는 당연했다.
"일은 내가 더 하고 고생도 내가 더 하는 데, 왜 수익 배분이 이래?"
나중에는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어긋남.
사실상 창업 비용엔 동업자가 더 지불한 만큼, 내가 의견을 내고 어필을 할수록 자존심이 상하고 있었다는 걸 동업자는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야 말해왔다.
"아니 왜 내가 의견을 내는 거에 자존심이 상하는데, 내가 그렇게나 없어 보여?"
그런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런 감정 싸움 자체가 일어난다는 게 문제다.
시작이 같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업인 만큼, 어긋남은 계속 일어난다. 스포츠 팀 마냥 똘똘 뭉치기는 생각보다 어렵고 의리와 화합으로 함께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서로 합의와 협의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이 다르다.
동업은 결코 팀이 아니기에.
그나마 돈의 투자가 적었던 나였기에 이런 글을 편안하게 쓸 수 있다는 시점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