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 김양미 지음

일류가 되지 못한 쌈마이 인생들을 위한 팡파르



김양미의 첫 소설집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는 작가의 말처럼 쌈마이들의 이야기들이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삼류 찌질이들의 좌충우돌식 해프닝과 B급 인간들의 눈물겨운 밑바닥 인생들이 폭포수처럼 무한정 펼쳐진다.  



줄줄이 사탕으로 엮은 7편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흡입하며 눈을 몇 번 껌뻑거리자 벌써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작가의 말이 보인다. 정말 눈 깜짝할 새 읽었다. 그렇다고 휘발성만 높은 가벼운 소설은 아니다. 


소설집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는 만일 지금 당신이 무료하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그야말로 당신의 지긋지긋한 시간을 활활 불태워 한바탕 폭소를 짓게 할 재미 만점, 웃음 만점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웃긴 이야기들은 너무 슬픈 이야기들이다. 한번 씨익 웃고 나면 묘한 슬픔이 배꼽 아래에서 일어난다. 이 세상 쌈마이들의 너절너절한 삶의 애환들이 비단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ADHD 증후군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비정상에 관하여‘ 와 ’내 애인 이춘배‘ 그리고 3류 용역 깡패들의 눈물겨운 냥이 장례식을 다룬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등은 웃음 속에 슬픔이 있고 슬픔 속에 웃음이 있는 단편들이다.

김양미 작가의 첫 소설집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인생만사 모든 고통과 슬픔을 웃음으로 극복하고 승화했던 한민족 특유의 정신승리법이 이 소설집을 관통하고 있다. 과연 5천만 민족을 웃게 만드는 김양미표 유머 코드는 무엇일까?


우선 작가 자신이 매우 낙천적인 성격과 천부적인 유머감각을 장착하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좀 웃기는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저런 희로애락에 주눅 들지 않고 희망찬 내일을 꿈꾸기 위해서는 명랑한 태도와 긍정적인 마음이 중요한 조건이다. 고통과 아픔을 해학으로 빚어낸 문장력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선천적인 재능이다.


이런 재능은 단순히 말재주가 아닌 글재주로 이어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작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의도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이리저리 인물들을 툭툭 치며 드리블하다가 그 어디쯤 독자들이 풋하고 웃을 수밖에 없는 지점에 슬쩍 해학과 풍자가 넘실거리는 대화나 문장을 쭉 깔아 놓는다. 


그것은 웃음제조의 기초코드인 언어유희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결국 이 소설집을 읽은 독자들은 백발백중 걸려들고 만다. 이 소설들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소설집이 무조건 재미있거나 웃긴 것만은 아니다. 가정폭력의 섬뜩함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케잌 상자’ 와 행복의 기준에 대한 작가적 의문과 결핍된 사람끼리 상호연대하고 위로하는 ‘방어 대가리’ 편은 또 다른 성격의 단편들이다.


김양미 작가의 언어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한 번 읽고 두 번 읽어도 금방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관념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다. 화려한 수사기법이나 애매모호한 심리묘사도 없다. 



오직 일상의 언어, 체험의 언어로 밀어붙인다. 이것은 쉽게 익힐 수 없는 내공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공력을 들이지 않으면 허락되지 않는 문장들이다. 소설 ’샤넬 No. 5’ 나 ’소설 속 인물‘ 편에서 그녀가 얼마나 소설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일단 그녀는 소설가 김양미라는 고유 브랜드를 등록하고 알리는 데 성공했고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유망작가가 되었다. 조금 더 개성만점의 자기 스타일로 우리의 아픔과 불행이 봄날의 꽃봉오리(춘재)가 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벌써 곱창 굽는 양미 씨의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삶은 흐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