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영성장에세이
벌써 8일째다. 감정디자인 (내가 스스로 고안한 마음을 돌보는 방법) 을 30일씩 또 100일씩 그렇게 지속해서 했더니 뭔가를 할 때 진득하게 하는 힘이 세졌다. ‘진득하게’는 우리 가족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책방에 오자마자 청소를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청소포로 바닥을 닦고 테이블을 닦는다. 공간이 아주 작아서 청소는 언제나 30분미만으로 끝난다. 청소하면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물론 아직 정리할 것이 수두룩하다. 정리를 안 하고 늘 미뤄둔다. 그리고 정리할 것을 장소만 옮겨가면서 임시방편으로 정리한 척 하는 경우도 많다. 상관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리하는 힘’을 좀 길러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엄마는 아침에 내가 일어났는지를 확인한다. 대개 난 눈을 뜨고 있다. 엄마는 내가 전날 안 씻고 잠이 들어버리면 항상 이런 말을 한다. “너 그렇게 안 씻고 자다가는 피부 다 엉망 된다. 젊을 때부터 관리를 잘해야지.” 나는 언제나 이 말을 흘려듣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일부러 안 씻고 자는 게 아니야. 나도 모르게 잠이 드는 거지.’ 엄마는 내가 라면을 먹을 때도 항상 이 말을 한다. “그렇게 다이어트 한다면서 이런 라면을 먹으니까 당연히 살이 찌지.”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 나는 조금씩 화가 난다. 나도 다이어트를 하고 싶지만, 라면이 먹고 싶은 걸 어쩌나. 기왕지사 끓인 라면을 앞에 두고 꼭 그 말을 해야만 할까. 그럴 때 엄마는 고약한 마녀 같다. 내가 그 라면을 먹으면 응당 살이 찌고야 말겠다는 저주를 내리는 것처럼.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의 말은 종종 큰 힘을 발휘한다. 그 말을 듣든 안 듣든 엄마 자식들의 가슴에 비수로 꽂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엄마는 그걸 모른다. 일요일에 교회에 안 가면 그 집에 큰 벌이 내릴 거라는 뉘앙스를 담는다. 약간의 뉘앙스를 담고 있어서 더 화가 난다. 나는 애저녁에 엄마의 저주에서 풀려났다. 난 교회에 안 가기 때문이다. 죽고 싶을 때는(그런 때가 있었나 싶긴 하다 요즘의 나는) 의지하는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지금은 살고 싶으니까 내게 물어보면 된다. 게다가 그렇게 일요일에 교회에 가고 안 가고를 가지고 복을 주고, 벌을 내리는 신이라면 너무 치사하니 안 믿는 편이 낫지 않은가.
유년기부터 청소년, 청년기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닌 편이라서 나의 무의식에 심겨진 ‘기독교’에 대해 지울 수는 없다. 가끔 운전하다가 창문을 내리고 날도 좋고, 바람도 좋고 기분이 좋아서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CCM(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이라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도 C. S. Lewis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철학과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고 나니아 연대기를 쓴 작가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지만 그는 잉글랜드 성공회 평신도로 기독교 작품을 많이 썼다. 한때 나는 ‘순전한 기독교’와 ‘고통의 문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등 그가 남긴 작품에 빠져있기도 했었다.
내가 종교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가족과 종교를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원래 종교가 없었다. 아빠네 가족은 대한민국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기독교를 믿어온 집안이다. 집안에 목사님도 있고 장로님, 권사님도 다수다. 나는 그것과 상관이 없고 관심도 없다. 종교로 싸잡아서 생각하는 것이 싫다. 그리고 OO 하라~ 고 하는 것도 싫다. 진리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누군가에게는 때때로 진리가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쓰레기나 다름없다 생각한다. 적절한 시기에 내가 선택해서 마음에 품어야지 그것이 진리다. 기독교가 싫다 좋다 논하기 전에 나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오지는 ‘이기주의’에 질려버렸다. 물론 기독교인 모두에게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건 세세하게 이야기하자니 끝이 없겠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어떤 교회에 가냐 마냐 로 한참 논쟁 중이다. 그것이 왜 결혼까지 한 자식들에게도 적용될까. 이해가 안 간다. 엄마, 아빠는 나에게 더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말해봤자 내가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한 번 드릴 바엔 차라리 아내와 남편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신이 있다면 이런 신이 있으면 좋겠다고 어릴 때 생각했었다. 판관 포청천 같은 신은 싫다.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신이 좋다. 그리고 재밌는 신이 좋다. 음악을 좋아하는 신이면 더 좋겠다. 아…. 신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미친. 신이고 뭐고 네가 해라.” 그럼 덥석 내가 한다고 할까?
“아~ 미친. 고선영으로나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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