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영성장에세이
나는 언제나 좀 사서 걱정을 하는 편이다.
막상 해 보면 별것도 아닌 일들이 많은데 시작 전에 대부분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는다. 왜 그런지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그냥 간이 작은 거 같다.
방금 커피를 사서 책방에 들어왔다. ‘잠시 외출 중’이라는 엽서를 책방에 붙여놓고 말이다. 우리 책방에서 가장 가까운 커피 집 이름은 ‘요정’이다. 나는 이 요정이란 이름이 싫어서 그 가게가 열리기 전부터 이렇게 맘먹었다. ‘저긴 안 갈래.’ 그런데 오늘도 나는 이곳의 문을 잡아당겼다. 중년의 남자 사장님이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신다. 카페 라테를 주문하고 잠깐 커피 집을 둘러본다.
문득 ‘커피를 파는 가게’의 명칭을 다들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진다. 나는 카페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이 말 때문에 나이 든 사람 취급을 받았다. 커피 전문점이라고 하자니 좀 그렇고, 커피숍은 더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고…. 그래서 나름 절충한 것이 ‘카페’였다. 비슷한 게 또 있다. ‘루주’. ‘립스틱’을 누가 ‘루주’라고 부르냐고 나한테 가자미눈을 뜨고 야유를 보냈던 어린 동료들이 떠오른다. 우리 엄마도 옛날 세대니까 사물의 명칭을 뭔가 어색하게 부르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화운데숀’ 엄마의 ‘화운데숀’은 파운데이션을 말한다. 엄마가 화운데숀을 말하면 엄마의 딸 중 누군가 하나는 반드시 그 말을 따라 한다. 그건 세월이 지났어도 어쩔 수 없다.
아침에 택배를 포장하고 이렇게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자니 지금이 천국 같다. 나는 이 일을 사랑한다. 글 쓰는 일. 내 머릿속 엉킨 실타래 뭉치를 한 움큼 꺼내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김을 쐬면서 하나씩 풀어간다. 평화롭다.
우리 엄마는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다. 요즘 우리 엄마의 일은 대부분 병원에 다녀오는 일이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우리를 병원에 잘 데리고 갔다. 어릴 때 숱하게 갔던 아주 오래된 단독 건물의 ‘김00 내과’ 김00 의사 선생님은 돌아가셨을 거다.(엄마에게 확인해 봤는데 엄마보다 젊은 분이었단다. 맙소사! 기억의 오류다) 내가 어릴 때도 흰머리가 가득했으니 말이다. 그 병원 기억도 보글보글 끓이는 주전자의 김처럼 떠오른다.
날이 참 좋다. 오늘은 3월 3일이고 곧 개나리고 진달래고 앞 다투어 필 것이다. 서른 무렵까지는 사계절 중 ‘여름’을 제일 좋아했다. 추운 것이 너무 싫어서 여름이 좋았다. 추운 겨울이 되면 ‘모든 인간도 다 겨울잠이나 자 버리지….’라는 생각을 매 해 어김없이 하면서 보낸다. 여름에는 늦은 밤까지 사람들이 가게에서 술을 먹고 논다. 사람들의 생기가 넘실거리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 마흔이 지나고부터는 여름이 그렇게 생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어떤 계절을 좋아할까? 왜 나는 엄마한테 한 번도 그런 걸 물어보지 않았을까? 오늘은 좀 물어봐야겠다. ‘마더북’이라는 책. (엄마가 직접 써서 완성하는 책) 엄마한테 권해봐야겠다. 엄마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 난 엄마가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비가 오는 걸 좋아하는지 눈이 오는 걸 좋아하는지 그 어떤 것도 잘 모른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안다. 회. 해산물. 해삼, 멍게 등 난 잘 먹지 않는 걸 엄마는 좋아한다. 책방 앞을 사람들이 지나간다. 각자의 걸음으로 각자가 가야 할 곳으로 걸어간다. 그 모습이 평화롭게 보인다. 오늘의 평화는 내일의 평화를 견인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평화는 이 순간 나를 ‘더할 나위 없게’ 한다. 그 더할 나위 없음이 진짜 좋다.
| 엄마 인터뷰 5
나는 좋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습니다. 그 날이 항상 그날입니다.
나는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이 세상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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