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영성장에세이
나는 엄마를 잘 알고 있을까? 어렸을 때 아빠의 사진첩에 꽂혀 있던 한 여자 사진이 떠오른다. 그 사진은 증명사진이었는데 꽤 예쁜 여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엄마 사진은 아니었고 그 여자가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알고 보니 우리 아빠가 선을 봤던 여자의 사진이란다. 나는 기가 막혔다. 무슨 엄청나게 사랑했던 사이도 아니고 그저 선을 한 번 본 여자의 증명사진을 이렇게 애들을 주렁주렁(다섯) 낳은 이 시점에까지 보관 하냐. 아빠한테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그 와는 별개로 그 사진을 보았을 때의 속마음. 눈도 크고 얼굴도 갸름하고 헤어스타일과 화장법도 엄마와는 달랐다. 순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여자가 우리 엄마면 나는 어땠을까?’
그 생각을 정말 짧게 하고 너무 놀라 있었다. 언니들은 그 사진을 어떻게 해야 흔적도 남지 않게 쫙쫙 찢을지 궁리 중이었다. 예쁜 여자와 매일 우리를 키우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우리 엄마. 죄책감이 밀려왔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 그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유 배달을 하는데….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다.
나야말로 엄마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닐까? 나는 엄마의 매일 매일을 알 수 없다. 엄마가 깔깔깔 웃었는지, 흐느꼈는지 나는 그 수많은 엄마의 날을 잘 모른다. 엄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일흔 네 번이나 지났으니 엄마의 모든 날을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나는 엄마를 지레짐작으로 판단한다. 엄마가 혹 나중에 이 글을 본대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해할까봐 좀 무섭다) 나는 엄마를 잘 이해하고 싶다. 물론 그 일은 나를 위해서다. 글 쓰는 사람들이라면 자기의 글에 Delete 키를 눌러서 그동안 쓴 것을 한 번에 지워버리고 싶은 때가 있다. 그게 100페이지가 넘는 글이라고 해도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그래도 나는 지우지 않는 선택을 하겠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더라···. 아 그 여자. 그 여자 증명사진을 그리도 오래 보관하는 아빠와 엄마의 심리를 잘 모르겠다. 둘 다 심드렁했으니 그냥 버리지 않아서 거기에 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내가 정말 크게 놀랐던 일이 또 있다. 그건 주말의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TV에서 볼 때였다. 한참 영화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아주 작게 이야기를 했다. “저거 너희 아빠랑 극장에서 봤는데….”
그때 나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역대급 태풍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지금 둘 사이를 보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나의 머리를 한 번 더 강타했다.
“피카디리에서 봤어.”
둘이 영화를 보러 간 남자와 여자.
그 남자와 여자는 내가 아는 남자와 여자다. 엄마와 아빠.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때의 충격이 컸기에 내가 그걸 기억하고 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뭐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둘은 사랑했다. 우리가 잘 모르고 그 수많은 시간이 뭔가 와 닿지 않는다고 해도 그 일은 있었던 일이다. 허구가 아니다.
평소에 로맨스를(영화, 드라마, 소설)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엄마와 아빠의 로맨스에는 기분이 좋아진다. 엄마는 오갈 데 없어서 아빠네 집에 왔다지만 오갈 데 없다고 아무 남자와 살 순 없다. 그 시절의 타이밍이 서로를 끌어당겼는지 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엄마랑 아빠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다. 그걸 부인할 순 없다. 서로 쳐다만 봐도 눈에서 꿀이 뚝뚝 흐르던 시절.
다행이다. 엄마가 그런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다행이다. 내가 생기기도 전에 둘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런 시절이 없었다면 좀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거 같다.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아무튼.
오늘은 로맨스인 거로.
| 엄마 인터뷰 3
지금 남편과 19살에 나는 그 때 교회를 안 다녔고 남편 믿는 사람이라 교회를 다녔고 배재고등학교에 밤에 운동장에서 부흥회를 한다고 하여 남편과 동료 채상순, 나 이렇게 셋이서 거기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만났습니다. 빌리 그레엄 목사님께서 부흥회를 하실 때 부흥회도 처음 교회도 그 때부터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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