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고선영성장에세이

by 작가 고선영


“이혼 해. 이혼하라고!”


엄마, 아빠 면전에서 나는 이 말을 참 많이 했다. 아빠는 이 말을 들으면 증기기관차처럼 화를 폭폭 냈다. 나는 엄마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자식새끼들이 뭐라고 그까짓 거 그냥 확 나가버리지 뭐 하러 참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나 초등학교 한 4학년 때쯤인가 한 번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하루인가 있다가 왔던 것 같은데 엉엉 목 놓아 우는 나에게 아빠가 술 먹고 커다란 무를 던진 기억이 난다. 나는 커서도 아빠가 엄마를 무시하고 구박하면 이혼하라고 난리를 (솔직히 지랄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지만) 쳤다.


그 때 엄마가 이혼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의 세상에서 이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다. 어떻게든 지켜내야만 했던 가정인데 그런 엄마를 조롱하듯 이혼하라고 소리 질렀던 나를 떠올리니 정말 부끄럽고 한심하다. 우리 엄마는 대단한 사람이다. 멘탈이 정말 끝내주게 단단한 사람이다. 여러모로 엄마를 비난했지만 엄마를 존경하기도 했다. 깨부수는 것이 용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지키고 참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아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는 좀 이상하리만치 기억력이 좋다. 날짜를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기억을 한다. 내가 생각할 때 아빠는 엄마에게 자격지심이 컸던 것이 분명하다. 자격지심이 없는 건강한 사람을 살면서 많이 보지는 못했다. 대부분 자격지심이 있고 그것 때문에 왜곡된 관계를 형성한다. 나도 그렇겠지. 일흔 다섯 살의 송민혜. 사람이 75년을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이렇겠지 정도로만 예상할 뿐이다. 그동안 고단한 일이 많았던 것은 말해 무엇 하랴. 엄마는 지치고 고단한 생을 살아왔다. 그렇지만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 엄마는 아직 젊다. 75년을 살았지만 카톡으로 우리와 문자를 주고받고, 이모티콘도 언니들보다 더 잘 쓴다. 노트북으로 교회 카페에 성경 말씀을 올리고 성경 필사를 하고 있다. 우리 엄마는 언제나 배운다. 엄마의 기력이 많이 쇠해졌어도 나는 엄마가 젊다고 느낀다. 엄마가 너무 늙었다는 생각을 자꾸 잊어버린다.


엄마가 늙는 것.


그것은 슬픈 일이다. 엄마가 늙고 동시에 우리도 늙는다. 우리는 어느 틈엔가 모두 흰머리 소녀가 되었다. 우리는 태어났고 언젠가 죽을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도 까마득히 잊히는 때가 오겠지. 그 생각은 나를 슬프게 만들기도 하지만 자유롭게 해 주기도 한다. 엄마가 힘들었던 그 어떤 순간에 이혼을 하고 우리와 만나지 않았다면 얼마 전 우리가 느낀 그 김밥을 쌀 때의 기쁨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엄마와 아빠에게 꽥꽥 소리 지르며 이혼하라고 했던 나는 여러모로 잘 못 했다.


가족관계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 나의 실수와 부족함을 통해 조금 더 나를 배운다. 이제는 그런 말을 안 하고 싶지만 나는 또 버릇처럼 아빠의 불같은 화에 이혼하라는 말을 한다. 그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예전엔 아빠가 버릇처럼 화를 내고, 엄마가 버릇처럼 우는 것처럼 나도 버릇처럼 그 말을 꺼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라는 영화에서 벤자민은 노인으로 태어나서 점점 젊어지다가 종국엔 아기가 되어 죽는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때때로 그 영화가 떠오른다. 엄마와 나의 시간은 평행선처럼 닿지 않는다. 엄마가 1년을 늙어갈 때 나도 1년을 늙는다. 만약에 영화처럼 나와 엄마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어떨까? 내가 받은 무한한 사랑을 갚아줄 수 있을까? 엄마와 딸이라는 이름으로 나이가 든 나는 젊은 엄마에게 나를 보살피라고 생떼를 부릴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엄마의 인생을 다 알 수 없다. 엄마의 감정과 엄마의 히스토리를 유추할 뿐이다. 그러니 섣부르게 안타까워하지도, 동정하지도 말자. 그것은 나의 오만이다.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 엄마 인터뷰 10

나이가 드니 조바심이 사라지고 여유가 생겼어요.

여유는 생겼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그 조바심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노력 중입니다.






나이가드는장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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