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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Sep 03. 2023

무수히 경직된 삶 속에서



세상이 한 가지 색과 한 가지 모양 그리고 조금의 차이도 없이 똑같은 크기의 도형들로 이뤄져 있었다면 아마 매일이 따분했을 것이다. 어딜 가나 같은 도형들을 반복적으로 마주하고 같은 색상을 바라보면서 지독한 지루함을 느낄 게 분명하다.


백색의 도화지와도 같은 어린아이들이 이 지독히도 재미없는 세상을 그리도 맑은 웃음으로 매일 마주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이 우리의 눈에 비친 세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똑같은 도형들로 구성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그렇게 바라본다.


별다른 새로움 없이 반복되는 매일을 마주하다 보면 아무리 형형색색의 세상이라 할지라도 회색빛으로 비친다. 하늘은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늘 아름답지만, 대부분이 그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오롯이 느끼지 못한다. 느낄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가 그것이다. 아이들은 매일이 새로운 것 투성이다. 마트에서 처음 보는 장난감을 구경하는 게 즐겁고, 처음 방문한 한강 공원에서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새롭다. 그래서 아이들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파랗다고 느끼고, 구름을 보고 하얗다고 느끼며 꽃 냄새를 맡으며 향기롭다고 느낀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순수한 언어로 뱉어내면서 아이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


아이들의 세상이 노란색,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 꽃 냄새, 흙냄새 등으로 다채롭다면 어른의 세상은 그보다 적은 표현들로 구성된다. 어른이라고 모두가 딱딱하고 회색빛이 감도는 세상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아이들의 세상과는 다르다.

어른의 삶은 경직된 삶이다. 생존 그리고 책임이라는 벼랑 끄트머리에서 늘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작은 소리에도 머리털이 곤두서며 사방을 둘러본다. 산뜻한 봄바람이라고 느꼈을 아이와는 달리 어른은 혹시나 이 바람에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이 날아가 버리지는 않을지 초조해진다. 경직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이 지닌 색깔과 냄새, 차가움과 따뜻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한다. 한껏 무뎌진 감각으로 아주 흐릿한 눈으로 아름답나 보다-라며 색깔 없는 무미건조함을 내뱉을 뿐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의 감각과 달리 어른의 감각은 경직되고 무디다. 어쩌면 우리가 힘들어하고 고통받는 이유가 이 무딘 감각 때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게 된 우리의 감각을 깨울 수 있다면 무채색이던 세상이 좀 더 다채로운 곳으로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삶의 오감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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