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tagamma Oct 02. 2023

비의 역사

2


    그날도 이렇게 비가 많이 왔다. 대학에 붙고 처음 수업을 들으러 갔던 날, 처음 마주하는 동기들과 교수님들. 낯선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질적인 . 대학 수업 첫날 눈에 담은 모든 것들을 엄마에게 자랑하기 위해 수업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술을 마시러 가자는 동기들의 유혹에도 고개를 저으며 집으로 가던 중에 처음 보는 번호로부터 연락이 왔고, 연이어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음 보는 번호는 병원이었다. 이상동기 범죄라고도 불리는 묻지살인의 피해자로 엄마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품지 못할 운명이었는지 얼굴도 이름도 모를 미친 사람의 칼에 단번에 즉사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날은 내 스무 번째 생일이었고 엄마의 기일이 되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리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내내 비가 왔다. 장례는 너무나도 조촐했고 쓸쓸했다. 어릴 적 실종되어 버린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빠라는 사람의 친가 쪽 사람들은 연락이 끊긴 지 너무 오래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때 당신네 아들과 백년가약을 약속했던 사람이, 우리 엄마가 칼에 맞고 비명횡사했는데 장례식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건 너무하 않냐고 따지고 싶었다. 아빠가 실종된 후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우리에게 왜 그리도 매정했는지 고 싶었다.

    덕분에 나는 그날 이후로 아빠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마음속 우물의 아주 깊은 곳에 처박아두고 다시는 끄집어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런 우울한 역사 때문인지 강박적으로 비가 오는 날을 싫어다. 이후로도 안 좋은 상황들마다 어김없이 비가 왔다. 이 정도면 나 좀 싫어해달라고 눈앞에 숟가락 떠미는 꼴 아닌가.

    그래서 원하는 대로 싫어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도 밝고 활발한 성격이 아닌데 더 어두워지고 싶지 않아서 비가 쏟아질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즉시 만반의 준비 태세에 돌입한다. 잡혀있던 약속을 취소하고 가능하면 휴가를 쓰고 방 안에 몸을 숨긴다. 비가 오는 꼴조차도 보고 싶지 않아 커튼을 쳐버리고 시야를 차단다. 빗방울이 지상과 부딪히며 생기는 마찰음도 듣고 싶지 않아 온종일 좋아하지도 않는 노래를 듣는다. 끄러운 목소리와 멜로디로 가득 찬 소음이 차라리 빗소리보다 나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비를 피하려고 했는데. 지금처럼 갑작스레 길 한가운데서 비를 맞는 상황은 그저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아니, 화가 난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기상 상황을 체크했는데, 오늘은 비가 온다는 예보도 없었고 더군다나 하늘도 너무 맑았단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비가 쏟아진다고?

    "건 너무 하잖아..."

    말 피곤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팡이 든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