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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tagamma Mar 07. 2024

우리는 주체적인 존재인가


  세상에는 질서가 존재한다. 질서란, 작은 집단과 공동체, 사회와 세계를 유지하고 지탱하기 위한 시스템이자 구성원들이 합의한 끝에 도출한 계약의 산물이다. 구성원들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무질서는 혼란을 야기하고 혼란은 필연적으로 파괴적 양상으로 귀결된다는 통념을 내면화한다. 이런 과정은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되고 법이라는 후천적 제재를 통해 강화된다. 이 모든 것이 인류 사회와 세상이라는 울타리를 안전하게 지속시키기 위해 정당화된다.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선 질서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 질서는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침범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다. 사회라는 집단의 안녕을 위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지극히 합리적인 처사다. 사회가 붕괴되면 개인의 일상 역시 무너진다. 개인의 자유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결국 사회가 무너지고 무질서가 판을 치게 되면 개인의 모든 권리 역시 불안정해진다. 지금 개개인이 누리는 모든 권리는 개인을 지켜주는 법과 질서가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사회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선 사회 공동체의 안녕이 선제적 조건인 이유다.


규율 속의 자율?


  사회 구성원들 역시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렇기에 누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들을 억제하는 것을 마땅히 감수한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는 법이라는 제재 때문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행위들 역시 사회 질서를 지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질서를 지키기 위해 내 자유와 행복권을 조금은 포기하는 것을 감내한다. 그래야 사회가 유지되고 사회가 유지되어야 내 안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와 개인의 계약은 나름 합리적이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는.


  가장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회가 개인의 주체의식과 자유의지를 앗아간다는 것. 이게 무슨 말일까. "나는 지금까지 내 생각에 근거해서 내 의지대로 행동해 왔다" 과연 그럴까. 알튀세르의 말처럼 개인은 자신들이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거대한 사회 시스템에 의해 특정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교육받았고 '행동하도록' 길러진다. 일단 놀랍게도 개인은 거시적인 관점보다는 미시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내게 벌어지는 일들의 기저에 사회 규율이나 체제의 문제가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이슈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특정 정책과 법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정말 근본적인 문제는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나라를 바꿔보겠다며 정치인들을 갈아치우고 정권을 바꿔도 사실 세상은 그렇게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 아무리 다른 사람들을 앉혀도 부패와 비리는 만연하고 태만은 근절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체스판 위의 체스말을 아무리 바꿔도 결국 그 판 위에 올라간 말들은 체스판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정치판에 들어선 수많은 자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물러나는 경우가 허다한 게 바로 이 때문이다. 모든 체스판에는 각자의 규칙이 존재하고 생존을 위해선 규칙에 순응해야 한다. '규칙에 순응하지 말고 본래 가졌던 의지대로 행동하면 되지 않나?' 체스판에 올라가는 순간 시야는 미시적으로 좁아지고 바로 눈앞의 상대, 즉 적을 해치우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1순위 목표가 된다. 그게 체스판의 규칙이고 세상이다.


  문제는 이런 질서 속에서 과연 개인의 자유의지는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체스판은 체스말들에게 나름의 권한을 부여한다. 이곳저곳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대신, 질서에 복종할 것을 강요한다. 여기에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생존이라는 인간의 최고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며 질서에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사회와 개인의 계약은 균형을 잃는다. 개인은 저항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질서에 복종한다. 그리고 이를 오랫동안 지속시키기 위해 개인이 스스로 자유로운 존재라고 믿게끔 만든다.

  

  가족, 학교, 교회, 언론, 정당 등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개인들에게 내면화시킨다. 쉽게 말해, 자유와 평등 등 '모든 개인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마땅히 누려야 한다' 등 감언이설로 현재의 질서를 정당화하고 합리화시킨다. 더 나아가, 기득권에 유리한 법과 질서임에도 자유와 평등이란 이름 아래 이것이 가장 공평한 방식임을 어릴 적부터 교육시키고 내면화시킨다. 그리고 마치 모든 개인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정부 혹은 국가가 개인을 주체로서 '호명'하는 방식이다. 개인은 이러한 호명에 적극적으로 호응함으로써 자발적 주체로서 사회가 부여한 역할을 충실히 따르게 된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주체가 된다는 것은 개인들이 국가나 법률과 같은 큰 주체(Subject)에 복종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롭고', '자율적인' 인간 주체(subject)가 되는 것, 즉 종속을 의미한다. 개인들이 법과 규범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주체로 여기게 되면, 이제 이들은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신자로서 아무런 의심 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되며, 지속적인 강제와 감시가 없어도 '완전히 스스로' 복종하게 된다. 개인은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자유로 오인하며, 스스로 자유로운 주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 자체가 복종이 된다.


  이처럼 개인을 주체로 호명하는 방식을 통해 비로소 개인은 스스로 국가와 질서에 충실하게 복종하는 종속적인 존재가 된다.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이 오롯이 내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착각하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착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착각은 현재의 질서와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막는다. 시스템에 큰 결함이 있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허다한데도 비판의 화살은 시스템이 아닌 개인들에게 향한다. 그래서 정치인, 정권을 바꾸면 세상이 나아질 것이란 착각을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의 변화가 일어나려면 체스말을 바꾸는 정도로는 불가능하다. 체스판 자체를 뒤엎어 질서를 바꾸고 시스템을 개선시켜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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