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스쳐 지나간다. 2008년 처음 조두순 사건을 접했을 때 느꼈던 분노와 비슷한 수준의 감정을 느끼는 요즘이다. 당시 중학생 3학년이었던 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그날 먹었던 저녁 식사를 모조리 토해낼 뻔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낄 때면 되레 슬픔을 느낀다. 슬픔이란 무엇인가. 슬픔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항상성을 잃어버릴 때 발생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당연한 성질이 결여되었을 때 굳게 믿었던 영원성이 연쇄적으로 붕괴한다. 그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곧이어 영원성마저 잃게 되었을 때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그 슬픔은 오히려 분노보다도 더 끔찍한 것이어서 온 세상이 무겁게 주저앉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어쩌면 그 감정은 분노나 슬픔을 넘어 절망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미 발생해버려 지나가버린, 돌이킬 수 없는 그 고통들을 우리는 현재의 시간대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목격한다. 그 고통들을 보며 분노하고 슬퍼하지만 이미 그 시간대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지 않음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 무력감은 한동안 나의 시간대 속에 고루 퍼져 일상 속으로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그렇다. 분명 절망의 한 종류였다. 그 어떤 언어나 몸짓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참혹한 고통들을 바라보며 그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 수동적인 행태가 절망스러운 것이다. 인간 내면의 구성 요소들이 미처 정제되지 않은 것들이 많은 탓이다. 목청 높여 외치던 분노 속에는 절망이 담겨있었으나 그걸 명료하게 분리해 내지 못한다.
세상은 앞으로도 우리의 기대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에 좀 더 절망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분노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상실한 이 시대를 향해 슬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