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할때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보기로 하고, 퇴근이 늦어 허겁지겁 달려간적이 있다.
극장이 아내의 회사 바로 옆이라 아내는 퇴근 후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고, '공덕역에서 버스갈아타면 더 좋아요'라고 했다. 나는 버스로 갈아타는게 번거롭고 환승하면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릴거라며, 그냥 지하철로 광화문까지 가겠다고 했다. 내가 하는말이 너무 당당했던지, 아내는 아무렇지않게 그러라고 했고 만나서 영화를 재밌게 보고 그 일은 대수롭지 않게 잊었다.
그 후 한참이 지나 광화문 그 건물에 다시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아내의 말이 기억나 버스를 갈아탔더니 꽤 수월했고 시간도 절약됐다. 그제서야 아내에게 그 말을 듣지 않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과를 했다. 무의식중에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것 같다고.
나는 가끔 이렇게 똑똑한 척을 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길도 잘 못찾고, 관심없는건 지나칠 정도로 기억을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내는 내게 넌지시 무언가를 말하고, 그 말을 따를지는 내게 맡긴다. 길을 잘못가더라도 같이 따라온 후에 '난 자기가 다른 생각이 있는 줄 알았지'하고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아내 덕분에 나는 책임감이 조금 더 늘었다. 내가 잘못가면 우리 다 같이 잘못가겠구나 하는.
아내 핸드폰이 고장이났다. 아들이 들고 떨어뜨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화면이 안보이게됐다. 나더러 핸드폰 바꾸러 같이 가자고해서 따라나섰다. 옆에 앉아서 조금 설명을 듣다가 내것도 알아봐 준다는 점원의 말에 번호를 불러줬다. 점원은 왜 결합도 안하셨는지, 요금제는 또 왜 이렇게 예전껄 쓰시는지 물었다. 몰라요 허허, 그것도 몇년전에 후배가 좋다는걸로 바꾼건데 허허.
실제 "허허"라는 웃음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저 인자하지만 도통 말하는게 뭔지 모르겠다는 "허허"라는 소리를 마음속으로는 내었던것 같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젊은사람들이 아주 빠르게 인식하고 계산하는 내용들에 대해 완전히 손을 놓은 세대가 된것 같아서 내심 씁쓸했다. 그래봐야 나도 아직은 삼십대이거늘.
나름 어려서부터 전자기기 욕심도 많고, 최신 트렌드를 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탓을 하고 싶어질만큼 헛똑똑이다 정말. 그자리에서 아내와 같이 더 저렴해진 요금제로 변경을 하고 새 핸드폰을 받았다. 허허. 아내도 놀리는듯 '전에 요금제 엄청 자세히 알아보더니 히히'라고 했다. 헛똑똑이의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