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차이는 서로 다른곳을 보게 만든다
아내가 메신저로 집에서 '꽃향기가 난다'고 했다. 나는 '당신한테서 나는 향기인가보지'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어디서 나는 향기인지 궁금하긴 했다. 그 이후 집에서 가끔 나도 아카시아 향을 맡을때가 있어서 신기하게 생각했다. 아파트 15층에서 아카시아 향이라니.
며칠 후 욕실 서랍장 위에 올려둔 입욕제가 눈에띄어 내려보니 거기서 아카시아향이 진동을 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말하니 '어쩐지 욕실에서 향이 많이 난다했더니..'라고 했다. 욕실에서 향이 짙게 나 욕실을 아무리 뒤져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욕실 서랍장 위는 아내에게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거기엔 아내가 올려둔 머리끈 등 잃어버려 찾을 수 없었던 물건들이 꽤 있었다.
같이 걷고 있어도 다른 세상을 산다.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가면, 내 시야에서는 창밖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아 강물이 보이는데, 아내의 눈에는 수평선이나 하늘이 보인단다. '저거봐봐'라고 하면 시야각이 달라서 다른 세상을 보는 경우가 많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도 잠시 한눈을 팔면 아내를 잃어버린다. 책장에 가려진 아내를 찾으려면 온 서점을 다 뒤지고 돌아다닐때가 있다.
주방에서도 내가 자주 쓰는 식기를 선반위에 올려두면 아내는 영영 찾지 못하거나 불편하다고 한다. 내가 주방을 한동안 정리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식기가 싱크대 아래쪽에 몰려있었다. 윗부분은 전혀 쓰지 않아서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생각에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은 선반 위쪽으로 거의 옮겼다. 가끔 그 식기들을 쓸때면 아내는 의자를 두고 올라가 까치발을 들곤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웃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