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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드밀 Jun 01. 2024

공감과 인정은 다르다

공감은 감정의 영역 인정은 존중의 영역

공감은 감정의 영역이다.

생각보다 감정은 단순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화 뿐이다.

이마저도 최근 뇌연구에 따르면 좋음과 나쁨으로만 봐도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기쁨이나 즐거움 웃김 행복에 반응하는 뇌의 영역이 같고 슬픔 고통 화 우울 불편함 등에 반응하는 영역이 같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우울과 좌절 불편과 불안 호불호는 감정이 아니라 감정이 들게 하는 요소다. 얼마나 큰 실패 앞에서 좌절하는지 불편한 상황을 얼마나 못 견디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운지는 개인마다 기준이 다르다. 그러니 함부로 공감하는 척할 수가 없다.

뭐 그까짓 일로 그렇게 까지 낙담하고 그래? 라며 그의 상태를 무시해서도 안된다.


감정과 요소를 혼동하면 공감과 인정이 헛갈린다. 감정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는 각자의 영역이고 각자의 기준이기 때문에 누가 맞고 틀린 게 아니다. 공감이 아니라 인정의 영역이다.

타투를 해서 기분이 좋다. 이 말엔 타투를 좋아하는 이의 취향과 그걸 가져서 좋은 감정이 들어있다.

이 말에 나는 타투가 싫어. 라고 반응하는 건 상대의 취향을 인정하지 않는 말이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좋은 기분에도 공감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정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싶다면 너는 타투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인정이 먼저고 나는 아니다.라고 하는 편이 조금은 낫다. 하지만 굳이 남의 좋은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지 않나? 이건 T와 F의 문제가 아니고 그저 너와 나가 분리가 잘 되지 않는 미숙한 반응이다.

본인은 타투를 좋아지 않지만 그의 좋은 기분에 공감할 수도 있다.

네가 기분이 좋으니 나도 좋네. 공감해주고 싶지 않은 정도의 상대라면 그냥 입을 다물면 그만이다.

그렇수 있지, 넌 그렇구나라고 인정해 주면 그만이다.

내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이 없는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하고, 만약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라면 다음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협의해야 한다.

예시로 둔 타투라도 연인사이라면 조금 달라진다.

타투가 있는 아내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 타투가 있는 약혼녀와 헤어질 수도 있지만 날 위해 타투를 지우라던가 절대 하지 말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

(타투는 그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식성이나 옷 입는 스타일 등도 마찬가지다.)


취향은 인정 그다음 단계의 행위는 수용하거나 안되면 적당한 거리로 멀어져야 한다. 상대의 취향이나 불안을 설득하거나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해할 수 없다고 화내는 사람도 많다. 어떤 경우는 자신의 취향이 옳음을 대다수의 의견으로 증명하려 애쓰기도 한다.


본인 취향의 옳고 그름이나 레벨을 설정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도시스러움은 목가적보다 우위에 있지 않고 늘씬한 세련미가 오목조목 귀여움보다 '더' 아름다운 게 아니라는 말이다. 취향의 문제에서는 대다수가 그렇다고 해서 대다수가 우위도 아니다.


서로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면 그야말로 인터레스팅 하다.

적당한 거리를 둘 때 각각 개성 넘치는 아롱이다롱이가 빛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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