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걸그룹이 '노력'과 '희망'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불과 일 년여 사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무너졌습니다. 경제, 사회, 정치 등등...
사실 코로나는 일종의 기폭제에 불과했죠. 이미 많은 부분이 내리막이었던 상황에서 코로나는 그저 그 민낯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렴풋이 느껴지던 대한민국 사회의 추악한 면모들이 수면 위로 하나 둘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이 좌절했고, 또 그런 분위기는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무너져 내린 가치를 하나만 꼽자면 바로 '노력'이었을 겁니다. 부동산, 주식, 코인 투자로 인한 소득이 일반적인 노동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을 아득히 추월, 아니 초월하며 일의 가치, 노력의 가치는 그야말로 땅바닥에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LH 사태에 그렇게 분노한 것 아니겠습니까? LH 직원들은 사내에서 먼저 얻는 정보들로 땅만 사면 몇 억, 몇 십억, 심지어는 당장 은퇴를 해도 될 정도의 돈을 버는데, 우리가 매주 노력해서 벌어들인 돈은 그에 비하면 코 묻은 돈처럼 느껴지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대체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할까요. 대체 누가 감히 노동의 가치가 신성하다는 허울 좋은 소리를 해댈 수 있을까요(그래서 중장년층들이 청년층에게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셔도 청년들이 전혀 공감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들 역시 험난한 시대를 살아오셨겠지만, 지금 청년들이 사는 시대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시대가 되어버렸고, 그 시대를 살았던 시각으로 청년들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해준다 한들 청년들에게는 공감도, 도움도 안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심히 걱정됩니다.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공무원에 많은 청년들이 몰리며 도전이 아닌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두게 된 것부터가 절망적인데, 이제는 그렇게 공무원이 된 이들마저도 주식, 코인 투자에 열을 올릴 정도로 청년들이 노력하기를 포기하고, 심지어 거부하고 있는 이 병들대로 병든 사회가, 대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가 말입니다(나아간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사회는 이미 앞으로 나아갈 능력도, 의지도 상실하고 만 것 같거든요).
그러던 와중, 걸그룹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5년 여의 고생 끝에 빛을 보게 된,
한 나이 많은 걸그룹 이야기.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지는 안 좋은 소식들 속에서 지독히도 기뻐할 일이 없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브레이브 걸스가 보여준 '인생역전 만루홈런'은 분명히 함께 기뻐하고, 대견해할 만한 굉장히 반가운 소식 중 하나였을 겁니다. 모 방송사의 트로트 프로그램의 대히트로 이어진 무분별한 트로트 프로그램의 범람 속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도 반가워하실 분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이렇게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에 우리가 이 정도의 기쁨과 희열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노력'의 가치를 이 사회에 다시금 상기시키고, 노력한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케이스가 비록 흔치는 않지만, 흔치 않기 때문에야말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힘들지만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아!"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좀 뜬금없지만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과거 걸그룹 EXID가 팬이 직접 캠코더를 들고 찍은 <위 아래>라는 곡의 '직캠 영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유명 걸그룹이 되었다면, 브레이브 걸스는 역시 군장병들을 위한 공연, '위문열차'에서 <롤린(Rollin)>이라는 곡을 공연한 영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뛰어난 라이브 실력과 공연을 제대로 즐기는 모습, 그에 반응한 시청자들의 재미있는 댓글들을 담은 영상이 유튜브에서 조회 수 대박을 치기 시작했고, 그러자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그들의 음악이 차트를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무려 4년 전의 노래로 음악방송에 출연, 결국 방송 3사를 비롯한 6번의 음악방송에서 1위를 거머쥐는 기염을 토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이 EXID의 케이스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이들이 비교적 젊은 세대들 가운데서 인기를 얻었던 EXID보다 더 폭넓은 계층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두 그룹의 우위를 가르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 현상 그 자체를 제가 느낀 대로 말씀드립니다).
우선 1) 군인들을 중심으로 대다수의 남성들을 팬으로 만들며 두꺼운 팬층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2) 털털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여성팬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을 어필했습니다. 게다가 3) 트로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젊은 대중음악에 입문하신 중장년층 청자분들께서도 그들의 음악을 통해서 브레이브 걸스를 접하고, 팬이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는 우리 모든 세대가 난세에 영웅처럼 등장할 누군가가, 또 그런 스토리가 간절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 그리고 재부상은 그들에게뿐만 아니라 그들의 팬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었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모두 기쁜 소식이자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던 것이죠. 그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모두 함께 공감하기 너무나 좋은 판이 깔려있다는 겁니다.
물론 브레이브 걸스에게 '성공한 걸그룹'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그들이 이미 성공할 요소들을 다 갖춘 그룹인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는, '매력 있는 그룹'
우선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꾸준히 노력하는 가운데 그들만의 스토리가, 그리고 멤버 개개인의 캐릭터가 잡히며 팬들이 빠져들만한 '매력이 있는 그룹'이 될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쌓이지도 않고, 억지로 만들래야 만들 수도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2. 그를 받쳐주는 '실력과 인성'
일단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1차 관문 통과라면, 실력과 인성이 있는지 없는지가 팬이 되는 2차, 3차 관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의 경우 이 두 가지 모두 갖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브레이브 걸스는 우선 출중한 라이브 실력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군장병을 위한 행사인 '위문열차'에 수십여 차례 출연하며 모든 곡을 라이브로 진행해야 하는데, 그 환경이 굉장히 열악해 저절로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걸그룹에게 이런 비교를 하기는 좀 뭐하기는 하지만, 극한의 환경에서 사는 북극곰이 지구 상에서 가장 강한 동물 중 하나인 것처럼 말이죠.
게다가 위문열차 같은, 돈이 되지 않아 다른 걸그룹 들은 기피 하곤 하는 행사에서 시종일관 미소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며 진정으로 무대를 즐기는 모습은 그들이 기본적으로 '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하며, 그런 점에서 많은 분들이 팬이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방송에서 보이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 역시 굉장히 성숙한 데다가(멤버들 간 평균 나이가 서른이라고 하니, 실제로 성숙한 그룹인 건 맞습니다...), 팬들과의 원활하고 격 없는 소통방식을 지향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피드백을 바로바로 주는 모습(팬들이 보낸 도시락에 달려있는 리본을 무대에 하고 나오는 등)은 이들의 팬이 되지는 않을지언정, 안티가 될 수는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줍니다.
3. 든든한 지원군
게다가 대한민국 탑티어 프로듀서 중 하나인 용감한 형제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그룹인 만큼, 음악적으로나 재정적인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질 예정이기에 더더욱 이들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굉장히 지원을 많이 해주면서 공들여 만들어졌지만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었죠.
위와 같은 이유 등으로, 저는 경쟁력 있는 후속곡들이 하나둘씩 터져주기만 한다면, 앞으로 브레이브 걸스가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인기를 누리며 활동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생각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국민 그룹'으로서 말입니다.
저 역시 <운전만 해>를 매우 즐겨 듣고 있는 팬의 입장으로서, 브레이브 걸스 본인들이 지금 단순히 '역주행을 한 걸그룹'이 된 것이 아니라 '노력과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그룹으로서 오래도록 롱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그들을 보면서 다시금 노력의 가치와,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살려 각자의 자리에서 더 노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가올 여름, 새로운 곡으로 컴백하게 될 브레이브 걸스의 행보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