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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Jan 10. 2022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리뷰

그저 덤덤하고 고요하게, 깊어지는 이야기가 한없이 무겁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과거 개봉 당시 조조로 예매했다가 놓친 후 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는데, 5년 뒤인 지금 재개봉해서 이렇게 볼 기회가 다시 찾아온 걸 보면 '확실히 인연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보다' 싶다(왜, 만날 인연이라면 결국 만나게 된다고들 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만난 영화는 마치 영화가 살아서 나와 문답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관객이 '왜 널 보게 됐을까' 물으면, 영화가 두 시간 여 동안 그에 대한 대답을 해 주는 듯 말이다. 이 영화 역시 그랬다.





※이후 영화의 스포일러가 담긴 글이 이어집니다. 불편하신 분들께서는 영화를 보고 와주셔도 괜찮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인간이 사회로부터 버려지는 과정'과 처음으로 대면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마비 전력으로 인해 다니던 직장에서의 일을 할 수 없게 된 중년 남성으로, 복잡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행정절차로 인해 질병수당마저 끊기며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놓이게 되며 그제야 자신이 이 사회에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어려운 주변 사람들을 도우며 삶에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였지만, 질병수당 자격심사 결과 항고 직전에 결국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며 끝끝내 사회에서 버려진 채로,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만다.



나 또한 언젠가 이 사회로부터 버려지는 순간이 오겠구나...




우리가 늙고 병들어 인간으로서의 효용가치를 잃게 되면, 과연 사회는 우리를 지금처럼 끌어안아줄까? 점점 빨라지는 사회 시스템의 발전에 점점 뒤처져 갈 우리를, 이 사회는 기꺼이 손을 내밀어 이끌어 줄까? 어쩌면 그럴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고 버리고 가는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위기감이 생겼다.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분명 우리 주변에도 이런 '버려진 이들'이 무수히 많지 않던가. 이전에는 무조건 그 책임이 그들에게 있을 거라는 식의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곤 했었는데, 이제는 감히 무턱대고 그럴 순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그 역시 그저 '또 다른 다니엘 블레이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어쩌면 이렇게 담백하고 담백한지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주제가 무겁더라도, 그를 풀어내는 방식 역시 그럴 필요는 없음을 참으로 잘 보여준다.


정말 담백하다. 사회적으로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가 느낄 답답함과, 그런 상황을 야기한 이들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인 만큼 감정적이고 어두운 연출이 주를 이룰 것 같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감정을 격하게 쏟아내는 등의 일반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야기를 충분히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 다니엘이 혼자, 또 주변 사람들과 삶을 이어나가는 정말 일상적인 모습들 가운데 조금씩 그의 처지가 바뀌어 가고, 점점 본인이 사회적으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완벽히 인정하고 체념하게 되는 과정과 그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극을 무르익게 만든 것이다. 계단식으로 뚝뚝 끊기며 감정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이 아닌,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매우 부드럽게 이어지는 연출이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물론 그만큼 볼 당시에는 심심하게 느낄 수 있지만, 그 흐름이 몹시 자연스러운 데다가 오히려 영화가 끝난 이후에 그 여운이 더 진하게 남는 느낌이랄까. 역시, 괜히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이 아니구나 싶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그들 모두가 우리의 이웃이자 우리 자신이었다


그에 더해 이 영화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 주인공에, 애 딸린 미혼모, 옆집 백수 청년까지 참으로 평범한 이들이 평범한 설정을 입고 연기에 임하며,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역시 일상적인 부분, 즉 너무 극적이지 않은 것들로 가져와 영화를 더욱 '평범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현실적인 주제에 맞는 현실적인 연출이 이루어진 아주 모범적인 사례인 것이다.


이런 연출이 참 쉽지 않다 생각하는 것이, 보통 영화는 하나의 '극'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극적인 사건', 그래도 그나마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울 법한 사건들로 구성되기 마련이라 관객 입장에서 영화가 제 아무리 현실과 가깝다 한들, 영화를 '현실 같게 만들어진 연극' 정도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우리가 흔히 '주인공 배우가 연기를 잘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한데 이 영화는 지금까지 필자가 봤던 작품들 가운데서도 현실에 가장 근접해있다고 할 수 있. 물론 이 영화의 배우들을 다른 영화에서 본 적이 있었다면 좀 더 영화라는 인식을 갖고 감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이 정도로 평범함 속에 임팩트를 감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작품을 만들어내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기 때문에.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사랑하는 이를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가는 그런 삶



 생의 끝에서 인간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필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를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 영화는 은연중에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고, 결말 부분에서 그 나름의 대답을 내놓았다. 결국 생의 끝에서 우리의 존재가치를 대변해주는 것은 그 누구도 무엇도 아닌,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들이라고 말이다. 사회는 우리가 늙고 병들어 효용 가치가 없어지면, 즉 돈을 벌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유무형적인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능력이 사라지면 우리를 바로 내치겠지만,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사랑을 베풀었던 소중한 이들만큼은 우리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인지 기억할 것이며, 비로소 우리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항상 살아 숨 쉴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항상 마음에 품고, 주변 사람들에게 아내로부터 받았던 마음을 다시 베풀었던 다니엘처럼.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버려진, 그리고 버려지지 않고자 발버둥 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 느끼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 버려지겠구나...' 하고 말이다. 설령 우리가 다니엘과 같은 기술직 노동자가 아닐지언정, 우리 모두가 이 사회 아래에서 그저 한 명의 '노동자'에 불과하지 않던가. 이용가치가 사라진 물건은 대체되어 버려지듯, 우리 역시 이 사회를 구성하는 부품 중 하나로서 언젠가는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 것이며,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적어도 그를 늦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설령 버려지게 된다 한들, 우리는 어떤 존재로 기억되어야 할 것인가.


때문에 이 영화는 버려진 이들과, 버려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필자처럼 이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울 훌륭한 각성제가 되어줄 것이다(그러나 젊은 세대들이 버려지지 않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공무원을 택하는 풍조만큼은 반드시 사라지길 바란다. 너무 이른 시기에 찾아오는 안정은 오히려 우리 스스로에게,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독이 될 수 있다 생각하므로.). 오래간만에 모든 이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작품이라 생각하므로, 재개봉할 경우 영화관에서, 그게 아니면 OTT 서비스를 통해서라도 한 번쯤은 감상하시기를 적극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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