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 러브 앤 썬더(2022)> 리뷰
아마 올해 가장 많은 분들이 실망한 영화 중 하나가 아닐까. 토르의 '전 여친' 제인이 '쉬토르(마이티 토르)'로 돌아온다는 소식부터 많은 분들에게 "뜬금없다", "개연성 없이 PC를 너무 의식한 것 아니냐?"라는 등의 빈축을 산 것도 모자라 정작 공개된 작품의 퀄리티마저 실망스러워 안 그래도 기울고 있던 마블의 가세를 더욱 가파르게 기울게끔 만든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전작인 <토르 - 라그나로크>를 통해 죽어가던 시리즈에 숨을 불어넣었던 타이카 와이티티, 그런 그가 대체 왜 이번에는 실패를 거뒀던 말인가. 어찌 보면 '무난한 마블 영화'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 찬찬히 뜯어보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타이카 와이티티는 마치 이 영화가 본인의 마지막 마블 영화인 것처럼 오프닝 씬부터 본인의 개그 욕심을 마음껏 쏟아낸다. 전작인 <토르 - 라그나로크>가 다소 정제된 느낌이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느낌이랄까. 타이카 와이티티의 장기인 실없는 스몰 토크 개그를 비롯해 토르와 그의 무기인 스톰 브레이커의 사랑싸움(?), 시도 때도 없이 울어재끼며 실소를 유발케 만드는 커다란 염소 두 마리 등등... 이렇게 피식피식, 큭큭댈 포인트가 많다는 것은 이 영화의 분명한 장점이자 강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날뜀이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 개그도 적당히 쳐야 임팩트가 있고 빵빵 터지는 법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개그로 점철되어 있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 조금씩 '뭔 놈의 주절거림이 이리 길지?' 싶은 순간이 너무나도 빨리 찾아온다. 주제의식과는 무관하게 겉돌 뿐인 개그가 반복되다 보니, 안 그래도 가벼워진 토르의 캐릭터와 함께 영화의 무게감도 한 없이 가벼워져 버리고 마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물론 그 가벼움이 <토르 - 라그나로크>부터 토르에게 새로운 캐릭터적인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만, 왜 이번에는 전작처럼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지 못했을까.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전작 <토르 - 라그나로크>에서 '번개의 신'으로 각성한 토르가 등장하는 장면에 미국의 전설적인 밴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명곡인 'Immigrant song'을 삽입해 재미를 본 타이카 와이티티. 그는 이번에도 (본인이 아주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올드락 넘버들을 여럿 차용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려 했다. 그중 대표곡은 역시 또 다른 전설, 건즈 앤 로지즈(Gun's And Roses)의 불세출의 명곡 'Sweet Child O'mine'(스윗 차일드 오 마인)이었다.
한데 이번 영화에서 그 좋은 노래가 다소 뜬금없게 들렸던 것은 단지 필자만의 착각일까. 그냥 좋은 노래가 나와서 듣기 좋았다 뿐이지, 그걸 이용하는 방식은 전작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 느낌이었다.
사실 'Sweet Child O'mine'이 명곡인 것도 맞고, 애초에 사랑 노래인 만큼 부제가 '러브 앤 썬더'인 이 영화의 주제와도 어느 정도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곡임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 전반적으로 토르와 제인 두 사람의 사이가 애틋하게 느껴지게끔 스토리적인 '빌드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질 않았다는 점이다. 초반에 토르가 스타로드와 문답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사랑은 오로지 제인뿐이었다며 다소 뜬금없는 사랑 고백을 하거나, 중간에 토르와 제인 두 사람이 감정을 교환하는 씬도 나온다마는, 그것만으로 관객들에게 두 사람이 예전처럼 애틋한 관계를 회복했다 설득하기엔 분명 턱 없이 부족했다.
여기에 앞서 이야기했듯, 개그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영화가 전체적으로 가벼워져 나름 진중한 주제에 속하는 '사랑'을 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릇이 되어버린 것 역시 여기서 큰 문제로 작용한다. 때문에 <토르 - 러브 앤 썬더>에서 토르와 제인, 두 사람의 사랑 서사는 작품성 면에서는 가장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토르 1편과 2편만 못한 수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뇌피셜이긴 하지만, 어쩌면 타이카 와이티티는 애초에 영화를 만들고 그에 맞는 음악을 고른 것이 아닌, 'Sweet Child O'Mine'이라는 노래를 중심으로 이번 영화를 구성한 것은 아니었을까. 애석하게도 그 주제의식에 너무 휘둘린 나머지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이라고 하면 그제야 이 영화가 이렇게 조악하게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명분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애초에 이 노래가 토르라는 히어로와, 그리고 이 영화의 장르와 이토록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굳이 삽입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에 반가운 분도 계셨겠지만, 애석하게도 이 영화에서 '마이티 토르'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했던 존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비약이 없진 않지만 의외로 제인이 히어로가 되는 과정 자체는 크게 문제없이 받아들여지는 편이다. 과거 토르가 제인과 사귀던 당시 자신의 망치인 묠니르에게 제인을 지키라 명령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편에서 헬라에게 박살 났던 묠니르가 다시 붙어 제인의 것이 되며 그녀가 '마이티 토르'로 각성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나름 납득이 가기 때문에. 하지만 문제는 제인의 각성 그 자체의 개연성 부족이 아닌 각성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결정적으로 토르와 제인의 러브라인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이유, 즉 이 영화가 정체성을 제대로 잡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제인의 각성에 있기 때문이다.
1편과 2편에서 제인은 어디까지나 토르의 여자 친구, 즉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써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강력한 힘을 갖춘 '동료'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아니, 때로는 토르가 갖지 못한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며 '토르의 여자 친구' 보다는 동료로서의 역할 비중이 훨씬 높게 책정돼 있다. 제인이 암에 걸린 시한부 환자이며, 묠니르의 힘을 빌어 버티고 있다는 설정이 조금이나마 그녀의 가련함을 부각하긴 하지만, 그 시도가 무색할 정도로 이 영화는 그녀의 약함이 아닌 강함에 지나치게 과한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쉽게 말해 여자 친구로서의 제인과, 히어로로서의 마이티 토르가 충돌하며 '사랑'이라는 이 영화의 중심 주제가 완전히 묻혀버린 것이다.
시대가 변한 만큼 여성을 단순히 보호받고, 사랑받아야만 할 존재로 생각하지 말라는 의견을 제시하실 분도 분명 있겠으나, '사랑'이 중심 주제가 됐어야 할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녀가 토르의 여자 친구가 아닌, 그저 또 하나의 '히어로'라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위의 두 가지에 가려진 것은 비단 중심 주제만은 아니다. 무려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할리우드의 거물이 악역 '고르'로 분전했지만 그 역시 이 영화의 부족한 연출의 피해자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방만한 신으로 인해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고, 그에 대한 복수심으로 오로지 신들을 도륙 내는 데 혈안이 돼버린 '갓 킬러(신 학살자)', 고르는 메인 악역으로서 손색없는 동기, 그리고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 악역이었다. 적어도 영화의 초중반부까지는 말이다.
그림자를 타고 어디든 순간 이동하며 신들을 벨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무기, '네크로소드'를 통해 지금껏 그 어떤 악역들보다 강력하고 신출귀몰한 악역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 고르는 영화의 중반부를 넘어가며 단순 '아동 납치범'으로 전락하고야 만다. 토르와 그 주변 히어로들을 직접 공격해서 죽이면 될 텐데, 뜬금없이 아스가르드의 아이들을 납치하더니 토르와 불필요한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더 이상 두 사람의 싸움의 무게감이 사라지고 영화에 남아있던 마지막 '김'이 싹 가셔 버리고야 만다. 남은 건 그저 맛없는 설탕물이 돼버린 김 빠진 탄산음료뿐.
조연, 혹은 악역으로 할리우드 유명 배우를 기용하고 그 이름값에 기대어 다른 데에는 신경 쓰지 않는 마블의 고질적인 악습은 어째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모양새다.
이렇듯 가뜩이나 이리저리 망가지고 박살이 난 만큼 마무리라도 잘 짓는 것이 중요했건만, 이 영화는 결말에서 기어이 망작에의 쐐기를 박아버리고야 만다. 언제부터인가 멍청해지기를 반복하며 이제는 완벽하게 '힘만 센 동네 바보 형'이 되어버린 토르가 나름 심오한 주제인 '사랑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어쭙잖다 못해 같잖은 장면을 연출하는 대형 사고를 치고야 만 것이다. 그것도 정말 예측이 뻔히 되는 타이밍에, 뻔한 방식으로 말이다. 필자 역시 '제발 그 말만은 꺼내지 말아 줘...' 하며 지켜봤지만 역시나. 오글거리는 장면에 약한 필자는 그대로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야 말았다.
명언제조기라도 되려는 듯 오글거리는 대사로 사랑의 위대함을 전파하는, 그것도 영화 내내 진지함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던 '동네 바보형'의 말에 설득력이 실릴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토르'라는 캐릭터에게 맞는 방식의 결말이 전혀 아닐뿐더러 너무나도 무성의하기까지 했던, 명실상부 '최악의 결말'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스파이더 맨, 닥터 스트레인지에 이어 이번의 토르까지. 믿고 있던 기대주들이 하나 둘 흥행성적과는 무관하게 기대 이하의 퀄리티를 가진 작품으로 만들어지며 마블의 추락이 생각보다 앞당겨지고 있는 모양새다. 아니, 이제는 멸망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마블이 야심 차게 내놓은 <완다 비전>, <쉬 헐크>, <미즈 마블> 등의 드라마 시리즈에 대한 여론도 생각 이상으로 미지근한 데다, 디즈니 플러스 플랫폼 자체도 2022년 상반기 기준 전 세계에서 8.8%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45.2%를 차지하고 있는 넷플릭스에 철저히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Parrot Analytics 자료 기준).
거기에 이번 영화를 비롯해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이터널스> 등 외부의 감독들을 기용해 그들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영화에 반영할 수 있게끔 자유를 주는 형식의 해결책마저도 사실상 연이은 실패를 거두고 있는 만큼, 이제는 마블이 지금이라도 있는 선에서 내실을 다져야 할 때가 온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의 세계관 확장은 멈추고, 새로운 영웅들을 등장시키느라 찬밥 취급했던 기존의 히어로들을 중심으로 차기 '어벤저스'가 될 빅 이벤트를 공들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너무 큰, 혹은 뜬금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지금의 전략 혹은 고집은 내려놓고, 그들이 예전에 정말 잘했던 그 성공 공식을 다시 되짚어가며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 그러니까 지금 디즈니는 물론 동서양 문화계를 좀먹고 있는 PC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과거의 '마블'과는 달리 지금의 '디즈니'가 만드는 MCU 작품들에서는 그동안 남성 혹은 백인 캐릭터들이 누린 영광이 부당했다며 기존의 캐릭터(토르, 헐크 등)들을 바보로 만들거나, 그들의 역할을 큰 맥락적인 고려 없이 여성과 흑인 캐릭터들에게 고스란히 빼앗아 넘겨주고 있지 않던가. (여전히 동양인과 히스패닉은 주류에 편승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어디 그뿐인가. '다양성의 존중' 혹은 '모든 종류의 차별에의 반대'라는 허울 좋은 문구를 앞세운 위선자들에 의해 죄 없는 다수에게 소수의 취향이 은근슬쩍 주입되고 있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영화에 꼭 한 번씩은 동성애적인 요소들이 등장하는 현재의 상황이 '소수에 의한 다수에의 차별'이 아니고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아직 성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아직 분별력이 부족한 어린 청소년들이 주된 타깃인 마블과 디즈니 영화에서 이런 일이 매번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경악스럽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반대를 표하거나, 심지어 언급하는 것 자체마저 차별이라 낙인찍은 채 그들 개인의 취향을 억지로 일반화시키거나, 더 나아가 성역화하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 단지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구호 하나만을 앞세워서 말이다.
하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PC 요소를 첨가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들에서 '그들'이 그렇게나 중요시하는 '다양성'을 저해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을 과연 '그들'이 알고 있을지,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아, 어쩌면 애초에 이런 부분을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글의 말미에서 주절거림이 유독 길게 느껴지셨다면 죄송하다. '애정이 있어서 이런다'는 말로 설명하기에도 좀 길긴 했다(본문에서도 주절거림이 길었다고 언급해놓고 이런 것도 참...). 이제는 주인이 바뀌어 예전의 맛을 내지 못하는 식당에 대고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내 입만 아프고 나만 이상한 인간 취급받을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제는 마블을 그저 '추억의 맛집' 정도로 기억 속에 묻을 준비를 해나갈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 슬플 뿐이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이 집, 생각보다 빨리 망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