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2022)> 리뷰 - ★★★★★★★★★☆(9/10)
세상에 금지된 사랑을 다루는 영화는 많지만, 그중 대부분이 관객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그저 '발칙하다'는 평 속에 스러진다. 자극적인, 그러니까 '원색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조명하며 입소문을 타다가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스러운 퀄리티로 망작이 돼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인 데다, 금기시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곱지 못한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핸디캡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표현 방법이나 작품성이 좋았다 한들 고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헤어질 결심(2022)> 역시 금지된 사랑,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주제 중 하나인 '불륜'을 다룬 영화다. 가정이 있는 형사가 한 여성 용의자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스토리가 다소 클리셰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차고 넘칠만한 요소들을 꽉꽉 눌러 담아 그 모든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한 아주 영리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아름답고, 재미있고, 먹먹하다. 좋은 수식어를 다 갖다 붙여놓은 느낌이지만 실로 그러하다. 때문에 필자는 아직까지 올해 최고의 작품으로 주저 없이 이 영화를 꼽고 싶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영화관을 나올 때 느꼈던 그 여운과 전율이 몸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만 같다.
자극적이고 논란이 있을 법한 주제를 담백하게 담아내는 박찬욱의 솜씨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그는 이 영화에 형사인 해준(박해일)이 용의자인 서래(탕웨이)를 조사하며 그녀가 남편의 살해범인지 아닌지를 추적해나가는 '추리수사극'이라는 큰 틀을 설정해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점차 서로에 대해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해준과 서래의 끌림을 부주제로 설정해 조금씩 메인 스토리로 키워가며 자극적인 주제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했다(그가 이를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극의 형태 상 '서래가 과연 범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커다란 의문이 계속해서 관객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에만 천착해 <헤어질 결심>을 '불륜 이야기'로만 인식하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영화는 해준과 서래가 어디까지나 형사와 범인이라는 본분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최대한 두 사람의 관계를 담백하게 구성해 외설적인 요소를 최소화함으로써 작품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이 또한 박찬욱 감독의 '클라스'가 아닐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두 주연 배우가 영화 내내 서로 누가 더 존재감이 강한지를 두고 자웅을 겨루고 앉아있으니 영화의 퀄리티도 덩달아 올라갈 밖에.
우선 박해일. 그는 정말이지 입체적이다. 물론 잘생기기도 했지만, 그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감정들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가 '해준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 박해일'보다는 해준 그 자체로 느껴졌다는 점에서 실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야말로 '폭풍 속의 박해일'이랄까. 혼돈스러운 분위기의 극 중에서 그 누구보다 그 위력이 잘 드러나는 배우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만가지 감정들 가운데 괴로움, 경악, 회한 등의 복합적인 감정들을 그만큼 잘 살리는 배우를 본 적이 드문 것 같다. 적어도 최근에는 그랬다. 생각해보면 과거 조연으로 등장했던 <살인의 추억(2003)>에서도 그 강렬하고 불쾌한 연기가 뇌리에 남았었던 것이 기억나는데, 주연 자리에서 그 뛰어놀 환경을 만들어주니 정말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노는 느낌이다(물론 그 정도 되면 이미 혼자서도 극 자체를 쥐고 흔드는 힘을 갖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필자에게 탕웨이는 <색, 계(2007)>로 이름을 알린 '육체파 배우'였다. 아직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첫인상, 그리고 사람의 편견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그렇게 머릿속에 굳어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그간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한 <만추(2011)>와 <지구 최후의 밤(2019)>을 봤음에도 그랬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계기로 필자의 머릿속에 남아있던 그녀에 대한 이미지가 깨끗하게 사라진 느낌이다.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위험하지만 사람을 홀리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캐릭터, 서래를 너무나도 잘 연기했다. 굳이 <색, 계>를 보지 않더라도 그녀가 그 영화에서 어느 정도의 매력을 갖춘 캐릭터였는지가 충분히 그려질 정도로 말이다. 심지어 어색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음에도 그런 매력이 당최 죽지를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가 언어를 초월해서 자신이 가진 무기를 정말 잘 활용하는 연기자라는 평가를 받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또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자라온 거친 캐릭터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 해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순수한 캐릭터의 두 가지 모습을 넘나들며 가각의 역할을 이질적이지 않게 잘 수행했다는 점도 고무적이었다. 그녀는 정말, 생각 이상으로 좋은 배우다.
이 영화는 굉장히 스타일리시하기도 하다. 보는 맛도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실로 무시무시하다는 생각도 든다. 넓은 암실에서 온갖 화려한 카메라 워크와 깔끔하게 정제된 색감으로 점철된 스크린을 보고 있노라면 참,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고 멋지게 직조됐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본 편이 아니라 그가 최근 들어 그런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적어도 이런 스타일리시함이 현시점에서 트렌디함과 동시에 영화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더해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만큼 그가 결코 한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계속해서 진화하는 유형의 감독이라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관객 입장에서 앞으로 그의 작품에 더욱 큰 기대감을 가져도 될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이전 작들과 비교해서 보기에도 아주 재미있는 포인트가 아닐지.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결국 그 누구도 '헤어질 결심' 따윈 하지 못한 채 극은 마무리된다. 화목했던 가정을 포기하면서도 끝이 뻔히 보이는 사랑을 손에 쥐고 놓질 못한 해준, 그리고 스스로의 목숨을 버려가며 그런 해준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기를 선택한 서래. 이뤄질 수도, 떠날 수도 없기에 차라리 스스로를 파멸시킬지언정 그들의 사랑을 지킨 것이다. 결말이 다소 과거 <동방불패(1992)>의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되긴 했지만, 이 정도면 나름 깔끔하게 마무리된 편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10점을 줬으나 결국 별 하나를 뺀 건 오로지 결말의 유사성에서 우러나는 아쉬움 하나 때문이다.
이 영화에 남는 또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면 이 영화의 국내 관객수가 200만을 채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만듦새를 생각했을 때 이 작품은 정말 잔인하리만치 차갑게 대중들에게 외면당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아마 올해 한국 영화계의 비극 중 하나일 것이다). 불륜이라는 주제, 그리고 '헤어짐'이라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이 이런 흥행 저조를 불러왔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이 영화는 보는 이들에게 불륜을 '아찔한 일탈' 정도로 느끼게 만드는 치정극 따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여지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그 증거로 해준과 서래 두 사람 모두 결말에서 모든 것을 잃는 벌을 받는다).
<헤어질 결심>은 관객들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이뤄지지 않았음에 아쉬움을 선사하는 한 편, '그래, 이런 관계는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어'라는 모종의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선사하며 결코 정도(正道)를 벗어나지는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적어도 도리는 지켰다는 것이다. 물론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 등을 휩쓸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유독 국내에서의 평가가 박했던 만큼 한국에서도 언젠가 더 고평가를 받게 되는 날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여하튼 아쉬움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이제 하나의 의문을 던지며 본 리뷰를 마무리하고 싶다.
이 사랑이 과연 두 사람에게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하나 분명한 건 이런 사랑은 두 사람 모두에게 흉터처럼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너무 아프지만,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때문에 혹여 필자에게 이런 운명 같은 사랑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필사적으로 거절하고 싶다. 감히 사랑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각오 따윈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