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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유부남, 나 홀로 도쿄 일주일 #10

작지만 꽉 찬 재즈 클럽, '재즈 스팟 인트로'

by 김트루
'육즙교자 단다단 신주쿠산쵸마에점'(肉汁餃子のダンダダン 新宿三丁目店). 교자(일본식 만두)를 먹고 싶었던 찰나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곳이었다.

신주쿠를 이곳저곳 훑다 보니 어느덧 9시가 가까워졌다. 다음 행선지인 재즈클럽으로 가기 전에 배를 채워야 하는 데... 뭐가 좋을까 싶던 찰나 눈에 띈 한 교자(일본식 만두) 가게.



교자와 맥주는 문화입니다.



야심한 밤, 굶주린 사나이의 가슴을 제대로 후벼 파는 명문(名文). 저걸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나. 들어가지 않으면 남자 실격이다(은근히 팔랑귀인 편).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시킨 맥주. 일본에서는 신기하게도 점심과 저녁을 먹을 때 항상 맥주를 곁들여야 한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생긴다(공감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 믿는다).


십여 분 지나니 교자가 나온다. 전분물을 바닥에 깔아 바삭바삭한 층이 생기게 하는 교자를 기대했지만 이곳은 다른 방식인 듯하다. 우측 작은 접시에는 고추기름과 식초를 함께 덜었다.


기대와 달리 맛은 평범한 축인데, 그래도 육즙이 없진 않고 소스를 찍어 먹으니 또 괜찮다. 허기가 최고의 반찬이라는 말, 정말 공감한다.


교자만으로는 좀 부족해 추가로 시킨 닭날개 만두(테바사키 교자). 때깔은 교자보다 훨씬 낫다.


말 그대로 닭날개 속에 만두를 채워놓았는데, 일반 교자만큼이나 육즙도 있고 닭껍질도 바삭해 먹는 재미가 한층 좋다. 맘 같아선 이걸 더 시키고 싶지만, 추가 메뉴가 나오는 데에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 관계로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가격은 생맥 한잔, 일반 교자 6알, 닭날개 교자 2개 합해 총 1590엔.


이후 신주쿠역에서 10분 거리의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駅) 역으로 왔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지만, 12시까지 재즈 공연을 하면서도 입장료가 저렴한 클럽이 있다기에 구태여 찾은 곳이다(아직 1시간 반 정도 즐길 시간이 있다!).


도쿄 유명 재즈클럽 중 하나라는 '재즈스팟 인트로'의 입구. 간판이 딱히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를 유심히 찾아야 보인다. 이미 늦은 시간이지만 공연은 한창 진행 중. 처음 들어가는, 그것도 혼자 오게 된 재즈클럽이다 보니 괜스레 긴장이 된다...


입장료 1500엔을 내고 좁디좁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앉은 뒤 찍은 한 컷. 어쩌다 보니 스테이지 바로 앞의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자리에서는 맥주 등 음료 한 개를 공짜로 주문할 수 있다. 필자는 무난하게 맥주 한 병.


이곳의 실내 구조는 긴 직사각형 모양의 좁은 공간의 한쪽 끝에는 바가, 다른 한쪽에는 악기들이 자리 잡은 형태인데, 워낙 좁다 보니 자연스레 모든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합석을 하는 형태가 된다. 짐을 놓을 공간도 부족해서 벽에 붙은 선반에 올려놓지 않고서는 사람이 지나다닐 통로가 없어질 정도.


필자가 얼마나 연주자와 가까운지 보시라. 제자리에서 카메라의 줌을 당기지 않고도 이 정도의 근접샷을 찍을 수 있을 정도였다면 설명이 되실는지.


이해가 어려우실 법 하니 증거 사진 하나 더. 왼쪽 아래에 보이는 갈색 의자 등받이가 필자가 앉아있는 의자다. 이 정도로 가까웠다(맨 왼쪽의 색소포니스트와 필자 간의 거리는 50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근데 그래서인지 연주가 시작되자 스테이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압이 보통이 아니다. 물론 가깝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스피커나 이어폰을 통해서가 아닌 어쿠스틱 악기들의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다 보니 온몸이 저릿저릿한 느낌마저 든다.


거기에 다들 실력이 대단해 몸이 절로 리듬을 타게 된다. 사진 왼쪽의 여성 색소포니스트는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도 상당한 실력이라 의외였고, 가운데의 흑인 색소포니스트는 솔로 연주 때마다 (좋은 의미에서) 미친 듯한 폭주로 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크... 이게 '진짜 재즈'로구나...



훌륭한 연주자들이 스피커가 아닌 악기를 통해 직접 들려주는 생음악에, 관객 모두가 눈치 보지 않고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그런 장르. 그리고 단점이라 생각했던 좁은 공간 역시 오히려 음악의 밀도를 높여 관객이 더 가깝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그동안 멀게만 느껴지던 재즈가 한층 가깝게 다가온 듯한 순간.


한 곡이 끝나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 교대한 색소포니스트와 피아니스트가 어떤 곡을 연주할지 정하고 있다. 공연은 십여분 정도 한 곡이 이어지고, 해당 순서가 끝나면 드럼, 트럼펫, 색소폰,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등 파트별로 대기 중이었던 연주자들이 호명되며 팀을 이뤄 즉흥적으로 노래를 정해서 연주를 시작하는 형식이다.


이날 가장 많이 피아노에 앉으셨던 피아니스트분. 평범한 복장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실력이시다.

이쯤해서 필자가 오늘 재즈클럽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면 어떨까 싶다.


궁금하진 않으시겠지만 필자는 취미로 기타를 치고 있다. 올해로 벌써 20년째인데, 부끄럽게도 연습이 게을렀던 탓에 그에 걸맞은 실력은 갖추지 못했다. 그나마 좋아하는 노래 몇 개 정돈 칠 수 있고, 여태껏 계속 해오긴 했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인데, 남의 노래를 따라 하는 것을 넘어 '나만의 것'을 하는 데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은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도 그러긴 쉽지 않을 듯하고.


비주얼부터 범상치 않은 흑인 드러머. 아니나 다를까 스틱을 잡자마자 특유의 그루브를 분출한다. 한 곡만 하고 떠나 아쉬웠던 분.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년 전부터 품게 된 재즈에 대한 동경 역시 이런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뼈대가 되는 하나의 음악에 연주자들 간에 자유롭게 묻고 답하며 살을 붙이는 형태의 연주가 계속되는 만큼 이를 재해석하고, 그에 맞는 ’나만의 것‘을 내놓는 능력 없이는 차마 손댈 수 없는 장르가 재즈이기 때문이다. 필자에겐 너무나도 높은 벽일 수밖에.


모자를 쓰고 다시 등장한 베이시스트 형님도 절륜한 손놀림(?)을 자랑하신다. 현과 현 사이를 날아다니는 저 손가락들을 보시라.

하지만 언젠가는 재즈라는 장르에 발을 담그고는 싶고, 그러려면 모종의 영감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지금 이 곳에 와 있는 이유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이곳 일본에서 스타트를 끊기로 한 이유는 유튜버 '마르코 홀로'님이 도쿄 재즈클럽을 돌며 기타 연주를 하는 영상에서 강한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 밴드 문화가 활성화돼 있는 데다 좋은 재즈클럽이 많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고).


이야기가 좀 길었지만, 아무튼 필자도 즐겁고 연주자들도 즐거워 좋은 오늘이다. 공연을 제대로 즐기는 연주자들의 미소만큼 관객에게 기쁨과 편안함을 주는 요소가 또 있을까. 나이와 외모, 국적 등을 막론하고 사람에게 이 정도로 순수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는 점에서 새삼 음악의 위대함을 실감하게 된다. 덕분에 사진도 잘 나오고.


그렇게 열심히 즐기다 어느덧 막차를 타야 할 시간. 일요일인 오늘은 영업이 12시까지라 마지막 한 곡 정도를 더 즐길 수 있긴 하지만, 숙소가 50여 분 거리에 있는 만큼 지금 차를 타지 않으면 안 된다. 내일 후지산 일정도 있고 하니.


지금 시간은 11시 40분. 필자가 밖으로 나오자 피아니스트 분도 뒤따라 나오셨다. 이분들은 프로이실까, 아니면 평소 생업으로 다른 일을 하고 계실까. 몹시 궁금하다.

재즈 스팟 인트로.


내 인생 첫 재즈 공연을 이곳에서 맛볼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앞으로도 종종 재즈 공연을 즐기겠지만, 이들보다 더 잘하는 연주자들을 만나더라도, 더 좋은 환경의 공연장에 가더라도 이 특유의 분위기와 바이브가 필자를 다시금 이곳으로 이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직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그래서 살면서 꼭 한 번쯤은 다시 오고 싶은 그런 곳이 이렇게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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