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카츠와 오모이데요코쵸, 그리고 고질라
도쿄 솔로 여행 5일 차, 오늘도 캡슐호텔에서 눈을 떴다. 필자가 묵는 곳은 '캡슐호텔 스즈모리야'라는 곳인데, 1박에 3만 원 정도로 저렴하지만 시설도 아늑하고 깨끗해 좋다. 다음에 혼자 도쿄에 다시 오더라도 다시 묵고 싶은 곳. 물론 와이프가 허락을 해준다는 가정 하에...
아무튼, 오늘 여행의 시작은 오후 2시 정도로 상당히 늦다. 컨디션이 아직 그리 좋지 못하고, 내일 일찍부터 2시간 거리의 후지산으로 향해야 하는 만큼 여유를 부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계획도 딱히 없다.
준비하고 나오니 벌써 3시, 일단 밥을 먹어야 하는데 식당도 정해놓질 않은 상황. 무작정 역으로 가던 중 항상 지나쳤던 식당이 눈에 띈다.
'8타케'(찾아보니 하타케라고 읽는단다)라는 곳인데, 자세히 보니 런치 타임이 17시까지로 굉장히 넉넉하다. 오늘의 메뉴(本日の日替り, 혼지쯔노 히가와리)도 에비카츠(새우돈까스)로 나쁘지 않고.
흠... 이렇게 만나는 식당이 또 맛집인 경우가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먹어보자. 찾아보니 구글맵 평점도 4.6점으로 꽤 높다(2025.2.1 기준).
안내를 받아 내부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널찍한 구조인데, 점심식사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임에도 한두 팀 가량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내부는 다소 예스럽지만 주문 방식만큼은 세련됐다. 테이블 위의 QR코드를 찍으면 스마트폰 상으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창이 나오고, 그걸 보고 주문을 하면 된단다.
주문을 하고 다시금 둘러보는 주위. 아늑한 실내와, 멋스러운 조명들을 찍으며 사진 연습을 해 본다.
20여 분 간의 기다림 끝에 등장한 에비카츠 정식. 알고 보니 이곳은 치바현의 '시바카이 농원'에서 직접 기른 작물들을 재료로 운영되는 곳이라고. 그래서인지 입구에 다양한 채소들과 이를 기반으로 만든 상품들도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운 스타일의 식당.
그래서인지 채소들이 상당히 싱싱하다. 자연 그대로의 억센 느낌이 살아있는데, 맛이 하나같이 진해서 정말 건강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에비카츠. 구운 야채들과 함께 제공되는데, 사실 다른 에비카츠 대비 두껍다거나 맛이 특별하진 않지만,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주신 느낌이라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가격은 1550엔으로 다소 높지만, 신선한 야채 기반 가정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인 만큼 여행 중 건강한 한 끼를 먹고 싶다면 들러보시길.
밥을 먹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컴컴해진 하늘. 지금은 신주쿠로 넘어온 상태인데, 일단 이곳에 온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가볼 곳은 바로 일본 특유의 향취가 느껴진다는 추억의 거리, '오모이데요코쵸'. 선술집(이자카야)이 가득한 것으로 유명한데, 필자가 도착한 곳은 아무래도 서쪽 입구인 듯하다. 입구는 좁아 보여도 그 규모가 그리 작지는 않은 모양.
생각보다는 뭐가 없지만, 홍등과 단풍나무 잎(모조품)이 길게 늘어서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비좁은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이 꽤 된다.
아직 저녁을 먹을 생각은 없지만 일단 가격이라도 한 번 보자. 비싸지는 않은 듯한데, 술집의 특성상 술 들어가고 안주 몇 개 시키면 가격이 쑥쑥 올라갈 테니... 딱히 의미가 있나 싶다.
그래도 들여다보면 정겨운 풍경들이 보여 좋다. 일을 마치고 회포를 풀러 온 직장인들, 호기심에 이끌려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삼삼오오 술과 음식, 그리고 담소를 나눈다.
좀 더 탁 트인 공간으로 나왔다. 서쪽 입구에서 들어왔을 때보다 좀 더 분위기가 산다.
보면 볼수록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이래저래 복작복작한 분위기서 술 한 잔 걸치고 싶으신 분들은 만족하실 듯.
크으… 맛있어 보이는 꼬치들이 한가득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저녁을 먹을 때가 됐나 보다. 다음 목적지인 토호시네마 신주쿠 건물만 들렀다가 밥을 먹자.
이미 해가 졌지만 아직 밝디 밝은 신주쿠의 밤. 필자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파칭코 건물인데, 뭐가 됐든 건물에 저렇게 에반게리온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크게 그려져 있는 모습은 일본에서만, 아니 일본이니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도착한 토호시네마 신주쿠. 저 위에 있는 고질라가 보이시는지? 이미 아는 분들은 다 알고 계실 신주쿠의 명물 중 하나다(올 때 또 다른 명물, 3D 고양이 간판도 봤는데 감흥은 크게 없었다).
그런데 7시 정각이 되자 주변의 스피커에서 음악과 함께 고질라가 울면서 연신 연기를 뿜어대기 시작한다. 아마 매 시 정각에 이런 쇼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 이때가 아니었다면 저런 게 있는지도 몰랐겠지 싶다. 여행에서는 타이밍 잘 맞는 것도 복이다.
아무튼, 볼 건 다 봤으니 다음 목적지에 가기 전에 밥을 먹으러 가보자. 물론 뭘 먹을지는 지금부터 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