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생활 일기
마침내, 아로니아를 수확했다.
봄부터 나의 기대와 사랑을 받던 아로니아다.
보통 8월 첫 주에 수확을 한다고 해서 기다려왔는데, 무더운 날씨에 열매가 드문드문 마르고 쪼글쪼글 해지길래 마음이 급해졌다. 빛을 비췄을 때에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에 가까운 열매가 잘 익은 것이라고 하는데 제법 거무스름해졌으니 됐다.
순지르기를 할 겸 깨끗한 가위로 가지를 자르기도 하고, 열매가 매달린 줄기만 살짝 떼어내기도 하였다. 열매의 일부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간간히 작은 새들이 날아오는데 이 떫은 열매도 새들은 좋아할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몫으로 남겨보았다.
줄기가 매달린 채로 보관을 하면 보다 싱싱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여 줄기채로 손질하여 깨끗이 세척하였다. 아로니아로 무얼 만들어볼까? 쨈을 만들자. 식빵에 발라주면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열매가 떫기 때문에 다른 재료를 첨가하는 게 좋다.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던 바나나 몇 개와 레몬즙을 넣어 믹서기에 넣고 힘차게 갈아준다. 냄비에 넣은 뒤 동량의 설탕을 부어 뒤적여 주고 불을 켠다. 지금부터 나는 냄비의 수호신. 재료가 타 눌어붙지 않도록 섬세하게 불 조절을 하며 저어준다. 이 순간만큼은 절대 한 눈을 팔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정성을 들이면 들이는 만큼 적당한 농도의 맛있는 쨈이 만들어진다.
보랏빛 아로니아 쨈을 좋아하는 각진 유리병에 담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 이틀 지나면 꺼내봐야지.
나의 기쁨, 나의 아로니아. 맛있어져라
이 맛에 여기 살지!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 밖을 볼 때, 두 아이가 마당에서 뛰어놀 때, 잡초 뽑으러 나간 오후에 드리워지는 분홍빛 하늘을 볼 때, 그 분홍 빛 하늘 아래에서 바비큐를 즐길 때.
순간순간이 즐거운 이곳
양평에서의 삶은 확실히 행복하다.
아침에는 해가 뜨고 덥더니 낮에는 뇌우가 내리치다 이내 맑아졌다. 날씨가 제 멋대로여도 8월의 하늘은 예쁘다.
매일 보는 하늘을, 처음 본 사람처럼 나는 또 사진을 찍는다.
장을 보러 가는 날.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있고, 우리 마을 길은 인도가 드물어 위험하기 때문에 차를 타고 간다.
왕복 10분 거리의 짧은 여정이지만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마을 풍경에 늘, 멍ㅡ 해지고 만다. (불멍 아니고 시골멍이라는게 있어요)
여름의 색이 가득한 마을은 정말로 싱그럽다. 얌전한 지붕의 집과 작은 버스정류장, 낡은 가게, 큰 나무가 모여 그림이 된다.
이 곳만의 한적함이 주는 안정감에 코로나도 잊혀지는 순간이 있다.
오랜만에 수영장을 펼쳤다. 신나게 놀라고 큰 것으로 샀더니 물 받는데 한참이다. 수도세와 전기세, 준비 과정과 정리의 수고스러움을 생각하면 두 번은 못 할 일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즐거워하는 아이 모습이 생각나 또 꺼내게 된다.
그렇게 한참을 놀고 모기도 물리고 땀 뻘뻘 흘려가며 바비큐도 했다, (여름, 야외 바비큐는 안 하기로 했다)
우리의 여름은 이렇게 송글송글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