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작사 Sep 24. 2020

집 구하다가, '혹할뻔한' 부동산사장님의 심리마케팅

 아마 모두들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해서 '좋은 집구하기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기준을 유튜를 통해서 얻은 지식이든, 부동산앱을 통해서 얻은 지식이든 말이다.

 " 집은 반드시 남향이어야 하고, 인덕션이 아니라 가스레인지여야 하고, 방 평수는 ...."


 좋은 방을 구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흔히들 노련한 부동산 사장님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특히 20대 초중반에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 사회초년생 입장에서 타지에 와서 집을 구할때, 특히 만반의 준비를 한다.


 하지만 막상 집을 구 하기위해 부동산 사무소에 방문하게 되면 삼촌 혹은 이모뻘 되는 부동산 사장님들의 심리 페이스에 점점 말려든다. 처음 준비했던 체크리스트는 머릿 속에서 진작 사라져버린지 오래요, 원래 목표했던 집보다 한참 못 미치는 집을 계약하거나 훨씬 웃돈을 얹혀 계약을 하게 된다.




 집은 분명 고관여 상품 (=많은 고민을 거치는 성격의 상품)이기에 우리는 신중에 신중을 가해서 준비를 하지만, 실전에서의 우리는 너무 터무니없는 선택을 하고만다. 특히 집 구하기는 구매자와 중개인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이 클 수 밖에 없는 판이다. 특히 타지에서 온 사람은 집 시세를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정보력에 취약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정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심리전을 무장하게 된다. 그러나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상대방의 전략을 알지 못하면 반드시 필패하게 된다. 


 최근에 이사를 갈 일이 생겼다. 난 '정보 비대칭성'을 극복하고자 발품을 남들에 비해 많이 파는 편이였고, 덕분에 여러 중개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  ebs 다큐 자본주의 2편 ("소비는 심리다")를 봐서 그런지, 뇌과학 서적을 한창 읽고서였던지... 집을 구하는 내내 집 외에도 부동산 사장님들의 마케팅 전략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메모장에 집에 대한 정보를 기재하는 동시에, 이분들이 어떤 전략을 펼치는 지도 메모를 해보았다. 어떤 것은 정말이지 '배울점이 많은' 마케팅 전략도 있었지만, 일부는 눈쌀이 찌푸려지는 것도 있었다.




래서 이 글에서는  "우리가 항상 준비해가는 '집구하기 체크리스트'가 어떤 과정에서 무너지는지", "부동산 사장님들의 심리 전략은 무엇인지" 다루려고 한다.  

(개인 경험에 주관한 글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집 구하면서 메모한 내용들... 우편함 사이즈도 일일이 체크하는 걸 보니 조금은 변태같기도 하다






01] '집 구하기 체크리스트'가 무너지는 과정


  앞서 말했듯이, 유튜브나 주변 지인을 통해 열심히 나만의 집구하기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예를 들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이면, 이런이런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 기준은 부동산 사장님의 집 보여주는 순서에 의해 쉽게 망가진다.


 이번에 집구할때나 예전에 집구할때나 친구집 구하는 것 같이 따라나설 때나... 부동산 사장님들이 집 보여주시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매물을 3개 봤다 치고, 그것을 대적인 기준에 따라 "좋은 집(1위) / 적당한 집(2위) / 나쁜 집(3위)"으로 나눈다고 가정했을 때)


 "나쁜 집(3위)" → "좋은 집(1위)" → "적당한 집(2위)"




그리고 각 집들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01)  <나쁜 집>의 역할 : 우리의 "집구하기 체크리스트" 기준을 깨버리는 역할.

- 소비자가 부동산 앱, 지인 등을 통해 쌓아 놓은 "높은" 기준 (대개 처음에는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기대치는 높을 수밖에 없다)을 깨뜨리는 역할

- 소비자 입장에서 나름 고심해서 준비한 체크리스트로는 '원하는 집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자기가 갖고 있던 기준이 사라져버리게 된다.

- 이때 다른 기준이나 plan b가 없다면 부동산 사장님의 심리전에 말려들고 만다


02)  <좋은 집>의 역할 : 말 그대로, 좋은 집. 이걸 주로 구매하게 된다.

- 아까봤던 집보다 훨씬 낫고, 발품을 더 팔면 이것보다 더 좋은 집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준다.


03)  <적당한 집>의 역할 : 이제 더이상 발품을 팔아도 아까 보여준 '좋은 집'만한 곳은 없다!!

- 부동산 사장님들 역시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봉사단체가 아니다. 그분들에게 있어도 시간이 중요하다. 그래서 한 사람을 위해서 한없이 시간을 내줄 수 없기에, <적당한 집>은 "<좋은 집>이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임을 알려준다





대개 이런 순서다.


그리고 아마 어떤 분은 눈치채셨는 지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의 사고방식은 한 가지가 크게 변화했다. 바로 비교 기준이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내가 봤던 '집들 간의 비교'로 변화하게 된다


체크리스트는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렇다면 '체크리스트'가 무너지고 '집들간의 비교'가 시작되면서, 부동산 사장님들이 우리의 의사결정에 어떻게 침투하는지를 살펴보겠다.







02] '중수'의 심리 마케팅

- 당하고 나면 기분 나쁘지만, 당하기 쉬운 전략 : 불안감을 활용해라


  만약 부동산 사장님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1명(부동산사장님=공인중개사)이 아닌 2명 (공인중개사 + 보조원)이 온다면 이런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그 두 사람들끼리 하는 사적인 이야기가 다른 '집 계약 건 이야기'라면, 이 전략일 확률을 더 높아진다. (내 경우는 전부 그랬던 것 같다)


 이것은 '주변 집들이 빨리 계약 되었다'는 사실을 알림으로써, 소비자가 불안함에 빠져서 의사결정을 성급하게 내리게 만든다. 여기서의 핵심은 절대로 집구하러 온 사람에게 그것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집구하러 오는 사람에게 대놓고 '집이 빨리 계약되니까, 빨리 계약하셔야 한다'면, 집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안 하면서, 보조원과의 대화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소비자 입장에서 스스로 '아 집이 빨리 계약되고 있구나, 빠르게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라고 생각한게 된다.


 이 경우는 판매인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 생각했기에 '의심'을 할 확률이 낮고 상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이것이 EBS 다큐프라임 <2부 소비는 심리다>에서도  나온 '광고와 브랜딩'의 차이이기도 하다.

<광고>는 지속적으로 자신을 알린다 / 출처 : 직접 만듦
<브랜딩>은 상대가 날 찾아오게 만든다  / 출처 : 직접 만듦


 그러나 이런 '불안' 마케팅을 소비자가 눈치채게 된다면, 그 부동산 사장님에 대한 신뢰도와 호감도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실제 많은 소비자들이 이런 마케팅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03] '고수'의 심리 마케팅

- 부동산 사장님에 대한 신뢰도와 호감도가 높아지는 마케팅 : "거래 이전에 관계를 챙기기"



01. "쉬잇, 너만 알고 있어!"

 

 밤 늦은 시간에 부동산 사장님과 방을 보고 있을 때의 일이였다.  이번에 동행한 사장님은 50대에 친근한 옆집 아저씨의 인상이었다. 30대 말 쯤에 직장에 나오셔서 부동산을 시작하셨고, 지금은 부동산 관련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시고 계신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아냐고? 집을 구하러 가면서 정말 아저씨랑 '집 이야기' 외에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며 갔기 때문이다. (진실인지 여부와 떠나서)

 

 처음 내가 가진 조건을 제시했을 때도, 매물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는 다른 중개사와 다르게 답하셨다. "손님의 조건이면 제가 지금 알고 있는 매물이 하나 뿐인데, 그거 하나라도 보러 가는게 괜찮겠어요?" 부동산 사장님의 솔직한 답변에, 아주 약간의 호감이 쌓인 채 나는 괜찮다며 보러 가자고 했다. (결국 이 사장님도 3개의 매물을 보여주시긴 했다 ㅎㅎ)


 집을 보러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장님과 이런 저런 인생 이야기를 하며 다녔는데, 확실히 이전에 '불안함'을 사용했던 공인중개사와 달리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었다. 이때의 호감지수가 대충 70점은 된 것 같았다. 그 정도면 내가 만나 부동산 사장님들 가운데 높은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은 거의 90점에 가까운 필살기를 보여주셨으니...


 상황은 이랬다. 텅빈 방에서 나와 사장님 단둘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이것저것 재며 방을 보고 있었고 한결 편안한 사장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셨다. 부동산 사장님은 내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해주시더니...


 갑자기 내게 아주 살짝 한 걸음 다가오셨다.

 그리고 주변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 옆을 살짝 살펴보는 고개짓을 하시더니,

 아까보다 낮은 목소리로


 "그런데... 이쪽 지역은 보증금 회수하기가 어려울 수 있어요"

 하며 썰을 풀던게 아니던가..


 집을 보러 온 사람에게 그리고 중개 거래인 입장에서도 마이너스가 되는 정보를 선뜻 보여줌과 동시에, 이분의 목소리는 거의 일급 정보를 몰래 전달하는 비밀 요원의 속삭임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 본인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정보도 알려주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나중에 내가 집에 무슨 일이 생겨도 잘 챙겨주시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단 둘 밖에 없는 장소에 목소리를 낮추는 것도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상함에도 불구하고, (설령 그게 전략이라고 하더라도) 이분에 대한 신뢰성과 친근감은 그간 만나본 공인 중개사들 중 최고치를 찍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간 발품을 팔았던 집들을 비교하면서, 거의 비슷한 조건 가운데에서 '왠지 모르게' 그 중개사님의 집이 더 호감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고관여이며 기능적 특성이 중요한 상품에서도, 판매자의 호감도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었다.




02. 우산, 그리고 자동차


 이번에는 3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중개사님과 집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었다. 집을 보러 가는데 비가 갑자기 한 두방울씩 내리기 시작하다가, 이내 조금씩 거세졌다. 나는 중개사님에게 내 윗옷을 우산삼아서 쓰고 가자고 말을 했다. 하지만 공인 중개사님은 이내 괜찮다며 잠깐 나보고 상가 안쪽에서 기다리고 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알고봤더니 옆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오신 것이었다. 나때문에 집을 보러가다가 비를 맞고 우산을 사게 된 것이다. 괜시리 미안한 감정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미안함을 지워내기 위해서, 나는 무언가로 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채의식까지 함께 생겼다. (저녁 때가 가까워져서 길거리 간식을 권했지만 사양하셨다)


 이번 케이스는 공인중개사님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구매에도 영향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케이스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을 때, 종업원이 와서 밑반찬들을 이미 셋팅하는 순간, 우리는 그 식당을 함부로 나가기가 어려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집을 계약하기 전까지, 공인중개사는 사실상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공인 중개사에게 약간의 미안한 마음(혹은 눈치)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소비자가 집을 계약하지 않는다면, 중개사 입장에서는 무료로 봉사한 것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여기에 공인 중개사가 집을 보여주기 위해 "자동차"를 태워주거나, 위의 사례처럼 "우산"을 샀다면...

미안한 감정은 더 커질 수 밖에 없고, 무의식적으로 소비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로 이 케이스는 아직 거래에 서투른 어린 나이의 대학생들에게서 많이 목격할 수 있있었다. 2월달쯤 많은 신입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공인중개사와 집을 보러 다닌다. 집을 더 보러 다니는 부모님의 주장에, 오히려 신입생이 "이만하면 됐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을... 대학가 근처에 살다보면 여러번 들을 수 있었다.  )


사람 간의 관계는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대략 3-4년전 쯤, 공인중개사님을 통해 집계약을 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발품을 팔아서 좋은 집을 얻을 수 있었는데, 나랑 동행한 공인중개사님이 참 친근감이 들었다. 계약을 완료하고도 몇달이 지나서도 무슨 어려움이 없냐며 연락을 주신것도 기억이 난다. 그런 고마움 때문에 학교 근처의 수많은 부동산 사무실 가운데에서도 그 사무실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거래를 떠나서 관계를 쌓는 사람에게서는 '광고'가 아닌 '브랜딩'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전략들을 모든 부동산 사장님이 이것을 의도하고 계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당시에 EBS 다큐와 뇌과학 서적에 심취한 나의 편향된 관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아서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해서 처음 본인이 만든 '집 구하기 체크리스트',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갔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왜 지금 MBTI 열풍이 부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