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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Nov 30. 2020

소풍 왔다 생각하면 어때요?

재미있는 소풍이 될 수도 있고, 아니라면 되돌아 나오면 되니까요.



며칠을 내리 춥더니 오늘은 살짝 풀렸는지 바람도 불지 않고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점심을 먹고 나면 가볍게 산책 하곤 했는데, 날씨가 추워진 뒤로는

바로 회사로 들어와 앉아있었던 요즘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리 꼭대기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렸었는데

지금은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대신하고 있다.


그렇게도 밟지 않으려고 애쓰던 은행 열매들도 더는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는 노란 은행잎들이 자리 잡고 있다.


새삼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깜짝 놀란다.


발에 치이는 나뭇잎들을 보고 있자니 예쁘기도 하지만 어쩐지 처연한 마음이 든다.


매년 이맘때쯤의 내 기분은 고추냉이를 머금은 것 마냥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가

울적해지기도 했다가, 또 설레기도 한다.


아마도 곧 떠나보내야 하는 올해가 괜스레 아쉽기도 하고,

곧 다가올 내년이 기대되기 때문이겠지.


미련 많은 성격인 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게 시간이든 공간이든 

무언가를 떠나보내고 받아들이기까지 보통의 사람들보다 조금 느리다.


항상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한 현실에 안주하려는 욕구에

쓸데없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건 아닌지.


언젠가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가 있었다.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되지 않던 시기.

그때는 빨리 이 시기가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고, 당시의 현실이 너무 싫었었다.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무는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에 소풍 와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번 소풍은 재미없고 힘든 소풍이라고,

다음 소풍은 지금보다 재미있고, 풍요로울 거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었다.


지금 조금 힘든 누군가 또는 행복한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지금 소풍을 와있고, 그 속에서 산책하면서 마음의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힘들다면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오면 되고,

행복하다면 충분히 만끽하고 천천히 걸어 나오면 되지 않을까?


익숙한 길에서 조금 다른 길로 발을 디딘다 해서 길이 없진 않고,

조금 헤맨다 해서 늦어질 수는 있겠지만 또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으니까.


새로운 길로 가다 보면 더 재미있는 소풍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되돌아 나오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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