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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Sep 23. 2020

그의 집 방문

어느새 밖은 깜깜해져 있었고, 지금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재승의 부모님께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한 날이다. 

그의 부모님은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와서 밥을 먹고 가라고 하셨지만, 나는 부담스럽고 긴장됐다.

집 앞으로 데리러 온 재승과 함께 수산시장에 들러 모둠 회를 샀고, 가는 길에 과일바구니도 사서 그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주방에서 나온 어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급하게 다시 돌아가서 식사 준비를 하셨다. 어머니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도와 드려야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주방으로 향했지만, 손님이니 거실에 가서 앉아있으라며 어머니는 내 등을 떠밀었다.

재승이 미리 귀띔해두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져서, 음식을 올려 둘 공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때맞춰 키가 훤칠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아버지가 현관으로 들어섰고, 아버지의 손에는 빨간 장미가 한가득 들려있었다. 어렸을 때 살던 집 마당에 가득 피어있던 장미와 똑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활짝 웃어 보이며 우리 아기 주려고 들고 왔다며 내게 꽃을 안겨 주었다. 재승은 포장도 없이 어디서 이런 걸 다 꺾어왔냐며 투덜거렸고, 그의 아버지는 친구분 이름을 대며 너 여자 친구 인사 온다니까 꺾어가라고 해서 가져왔다며 웃어 보였다. 이런 꽃다발은 처음 받아본 데다가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기분이 좋아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재승 어머니의 요리 솜씨도 일품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꽃게탕부터 소고기 볶음, 멸치볶음 등 밑반찬 하나하나 맛이 훌륭해서 밥 한 공기를 후딱 비웠다.

자취하면서 집밥이 그리울 때가 많았는데 너무나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따뜻하게 반겨주시는 그의 부모님의 모습에 전날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은 본인의 아들이 회사 다니다 뒤늦게 공부한다며 신림동 고시원에 들어가서 시험 준비하고, 

합격한 뒤로 일하느라 바빠서 남들보다 결혼이 늦어진 것이, 

나를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더 붙잡아두면 내가 불편할 것 같다며 둘이 나가서 

데이트하라고 배려해주셨다.


생각보다 순탄한 그의 부모님과의 첫 만남이 끝났고, 차에 올라타자 긴장이 풀렸다. 


어느새 밖은 깜깜해져 있었고, 지금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재승의 아버지가 준 장미꽃은 뒷좌석에 두었는데 어쩐지 축 처져 있었다. 

들고 내리려는데 재승은 나무에서 꺾어온 장미라 금방 시들 것 같다며 

자기가 처리할 테니 그냥 두고 내리라 했다. 피곤한 나는 알겠다 하고 차에서 내렸다.


사진이라도 남겨둘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조금 들었지만 금방 잊어버린 채 까무룩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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