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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Oct 21. 2020

상견례

그렇게 눈물과 알코올로 얼룩진 상견례가 끝났다.



미적거리는 엄마 아빠와 다르게 아침부터 나 혼자 분주했다.


“엄마 이 원피스 어때?”라고 묻자 “편하게 입고가.”라는 무미건조한 대답이 날아왔다.


“아빠. 이제 슬슬 옷 입고 나가자.”


“…”


아빠는 대답 없이 TV 만 보고 계셨다.

아빠는 9살 많은 재승과 만난다고 한 뒤부터 부쩍 말이 없으셨다.


엄마 아빠와 약속 장소인 한정식집으로 향하는 동안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먼저 도착한 우리는 안내받은 방 안으로 들어갔고, 상견례 베테랑 느낌을 풍기는 직원의 자리배정에 따라 앉았다.

테이블에는 원앙 한 쌍이 놓여있었다.


곧 재승과 그의 부모님이 들어섰고, 마주 앉은 우리는 짧게 자기소개를 하고 마주 앉아있었다.

직원분이 중간중간 음식을 내올 때마다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도록 농담 섞인 말을 건네며 무거운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재승의 아버지는 술을 굉장히 좋아하시고,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으셨다. 그에 반해 우리 아빠는 젊었을 때 잘 드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소주 한 병만 마셔도 피곤해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럼에도 그때 주량이 지금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드시는 자칭 '애주가'셨다. 서로 주량 테스트를 하듯 두 아버지의 술잔은 주거니 받거니 쉬지 않고 이어졌다.

평소에 아빠가 술을 마실 때면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를 하는 나의 주특기가 튀어나오려 했다.

차마 재승의 부모님 앞에서‘그만 마셔 아빠’라고 빽 소리를 지를 수 없던 나는 아빠에게 눈빛으로 사인을 보내며 이글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재승의 어머니가 말했다.


“온설아. 아버지가 좋은 날이라 술 한잔하시는데 뭘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니. 호호호.”


“…”


나는 옆에 앉은 엄마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아빠 좀 말려봐’라고 신호를 보냈다.

엄마는 어제부터 속이 좋지 않으셔서 음식을 잘 드시지 못했고,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앉아 계셨다.


재승의 부모님은 예쁘게 잘 키운 딸을 시집보내려니 섭섭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그 뒤로 굉장히 당황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 아빠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당신 왜 울고 그래.”라며 휴지를 건네던 엄마도 눈물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내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우리 셋은 순식간에 휴지 한 장씩을 들고 눈물을 닦고 있었다. 애써 무안해진 상황을 수습해보려 재승의 아버지는 “아이고 이렇게 마음들이 약해서 어쩌나.”라며 고생하는 일 없게 잘하라고 애꿎은 재승에게 화살을 돌렸다.


결혼 준비는 재승과 나, 둘이 원하는 대로 하고, 어른들은 개입하지 않겠다는 게 그날 상견례의 주된 내용이었다.

흐트러짐 없는 재승의 아버지와 다르게 우리 아빠는 첫 만남에서부터 잔뜩 술에 취하셨고,

재승 부모님의 걱정 섞인 배웅을 받으며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너네 아빠 왜 저런다니…” 라며 한숨 섞인 한마디를 뱉으시며

"네가 이해해.” 라며 나를 토닥였다.


“애는 속을 모르겠던데, 부모님들이 서글서글하니 괜찮으시네.

아빠가 많이 섭섭해해. 연락도 자주 하고 잘 좀 해.”




그렇게 눈물과 알코올로 얼룩진 상견례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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