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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새벽 May 28. 2020

공유자전거 따릉이 예찬론

어디든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것이 주는 힘




요즘은 힙스터들 사이에서 등산이 대세라는 말이 있더라. 에슬레저룩이 유행하고, 이너뷰티에 대한 밀레니얼들의 욕구가 치솟으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 식물을 키우고, 채식을 하기 시작하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거나 환경을 보호하는 브랜드를 좀 더 선호하게 되는 일들. 자연스럽게 자연을 좀 더 좋아하게 된 밀레니얼들, 자연스럽다는 말이 이보다 더 찰떡일 수 있을까. 사랑스럽게도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워졌다.


사실 자전거와 나는 오래전부터 한몸 ^_<


어릴 때 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아무도 믿지 않는 체구를 가지고 있지만, 정말 그랬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육상선수였고, 피구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1인자였으며, 툭하면 호수공원에서 자전거를 탔다. 중학교 때는 농구단을 하면서 검도관을 꽤 오래 다녔고, 아직도 검 쓰는 방법을 안다. 스무살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헬스장에 갈 정도로 헬창이었다. 정말 아무도 믿지 않지만.


갑자기 운동을 싫어하게 된 건 정말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었다. 삶이 너무 벅차고 힘들어서 주말에 몸져 누워있기 시작하면서도 그랬고. 또 그 시절 운동을 한다고 하면 따라 붙는 시선과 말들이 너무 싫었다. 나는 체구가 작은 편이고 근육질도 아니기에. '누가 봐도' 운동을 잘 할 것 같지 않았기에. 그리고 '여성'의 몸을 가졌기에. 운동을 하지만 다이어트는 하지 않아요, 라고 여러번 내 말을 꾸며줘야했다. 그땐 그게 너무 화가 났다.


그렇게 멀어졌던 운동을 다시 시작한 건 재작년쯤부터다. 그냥 그리웠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고, 온 몸에 열이 나는 것, 삐그덕 거리는 온 몸의 소음, 한때는 좋아했던 그런 것들이 그리워졌다. 처음엔 그냥 운동을 하면 되는 줄 알고 헬스장을 다녔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단지 건강만을 위해 운동을 하고 싶지 않아서 춤을 배웠다. 그러다 가끔 등산을 했고, 친구들과 탁구를 쳤다.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 적당히 지루해진 내 삶에서 내게 그것만큼 성취감을 주는 게 없었다. 인생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적어도 내 몸 하나는 가능해진 거니까. 그게 너무 짜릿했다. 겨울이 오면서 그 의지가 조금 시들해졌지만, 봄을 지나 초여름 직전을 맞이하면서 다시 불타오른 운동의 감각. 하늘이 나를 불렀다.


5월-6월이란, 정말 즐겨야 하는 축복 받은 기간...


사실 우연히 사는 곳의 위치가 정말 좋았던 것의 힘이 컸다. 5분 거리에 공원과 천이 있었고, 10분 거리에는 한강이 있었다. 심지어 집 앞에 따릉이 대여소가 생겼다. 사실상 이건 내 선택이 아니라, 타야만 했다....



처음 따릉이에 가입하던 날, 동네 친구들을 불렀다. 금요일부터 쉬기 시작했던 토요일 오후였고, 늦잠 자고 일어나서 할 일이 없어 지루한 참에, 밖 날씨가 너무 좋았다. 어딜 돌아다니기엔 코로나가 위험했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사람과 접촉이 적은 야외활동 뿐이었다. 얘들아. 내가 오늘, 지금, 당장, 따릉이가 타고 싶은데, 올래? 순순히 따라나선 친구들과 함께 한강을 달렸다. n년만에 타보는 자전거에 오늘 다리 하나 잃는 거 아니냐며 호들갑 떨었지만 몸이 기억하는 라이딩에 한시간 반을 내리 탔다. 그날은 하늘이 참 예뻤다.


따릉이는 LCD형과 QR형이 있는데, 일단 LCD형은 위 오른쪽 사진과 같이 얼마나 달렸고 몇칼로리를 썼는지 나와 보기에 재밌다. 그 외에는 무조건적으로 QR형이 나은데, 일단 뉴따릉이 라고 불릴 정도로 더 최신 자전거고 (사실 큰 차이는 없다). 모든 대여소에서 반납할 수 있고, (LCD형은 QR대여소에는 반납이 안된다) 대여와 반납의 과정이 훨씬 쉽다.


그렇게 따릉이와의 지독한 인연이 시작됐다.


그 이후로 낮이든 밤이든 비가 오든 말든 지독하게 따릉이를 탔다. 자전거를 탈 때는 몇가지 매너가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도보로 다닐 때는 사람이 먼저이기에 따릉이가 먼저 조심할 것, 횡단보도는 내려서 건널 것, 작은 공원의 도보 길은 자전거로 타고 다니지 않을 것 등이 있다. 아무래도 안전이 최고니까, 주의해서 타는 것이 좋다. 또 우리 어른들. 음주 후 라이딩은 불법이다. 걸리면 3만원인가의 과태료를 내게 되니 주의할 것 ㅎㅎ...



가장 타기 좋은 장소는 아무래도 한강공원이더라. 일단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있고 거의 직선길이라 쉬운 코스에 속한다. 무엇보다 한쪽에는 한강, 다른 한쪽에는 무성한 나무나 잔디들을 즐길 수 있어서 시각적 만족이 엄청 크다. 한강은 낮에도 라이딩 하기 정말 좋지만, 밤에는 대교들에 켜진 불빛이 아름다웠다.


집에서 나와 홍대에서 쇼핑하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을줄


한강 라이딩도 좋지만, 자전거는 훌륭한 이동수단이다. 예를 들어 생필품 등이 떨어져 쇼핑을 갈 일이 있을 때, 평소 같으면 배송을 시키거나 택시를 탔다면, 따릉이를 만나고는 내 인생이 달라졌다(?) 일단 동네 백화점이든 다이소든 마트든 전부 다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이 엄청 컸다. 잠깐 근처에 일시 잠금을 하고 세워두고, 쇼핑한 것들을 따릉이의 작은 바구니에 담아 오면, 그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었다.


실제로 따릉이를 출퇴근 용도로 사용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나는 출퇴근을 일산으로 해서 따릉이를 타고 자유로를 달리진 못했지만... 보통 자전거를 잘 안 타본 친구들의 오해는 자전거가 엄청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데, 오르막길만 아니라면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특히 자전거도로에서 달린다면 더더욱 쉽게 나간다. 또 사실 공유자전거여서 따릉이의 상태가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였다. 고장 신고도 있고, 관리가 꽤 잘되는 듯 하다.


이정도면 자전거를 찬양하는 것인지, 따릉이를 찬양하는 것인지 헷갈릴 수 있지만... 따릉이를 찬양하는 것이 맞다. 일단 공유자전거의 힘은, 스스로 자전거를 관리하는 일이 아예 없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이사를 갈 때마다 애물단지였던 자전거의 기억. 크기도 커서 보관하기도 힘들고, 툭하면 바퀴에 바람이 빠지거나 누군가 훔쳐가거나. 먼지가 쌓이고 녹슬어버린 자전거. 공유자전거인 따릉이는 그 귀찮고 힘든 관리를 아예 하지 않아도 되어 부담이 없었다. 또 대여소가 엄청 많다보니, 자전거를 주차해놓고 놀다가, 주차된 내 자전거를 다시 찾으러 그곳으로 가야하는 번거로움 없이 그저 가장 가까운 대여소에서 따릉이를 빌리면 되는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다.


따릉이가 있는 대여소를 찾아 삼만리


장점만 있는건 아니지. 가장 큰 단점은 대여소에 따릉이가 없을 수 있다는 점. 따릉이 정기권을 결제하고 내가 얻은 건 건강보다도 따릉이 유무에 대한 집착이었다. 매일 눈 앞에서 마지막 따릉이를 뺏기고 나면, 따릉이를 얻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될걸...? 여기도 0... 저기도 0... 그러다보면 어렵게 구한 따릉이를 반납하기 싫어져서 하루 종일 타고 다니게 된다.....


정기권과 일회권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무조건 정기권이 나은 듯 싶다.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는 타지 못하겠지만, 정기권에 제로페이를 사용하면 30% 이상 할인되어 가격이 매우 싸서 부담이 없다. 사실 돈이 중요하진 않았지만 타다보니까 아낀 택시값과 대중교통비가 꽤 되더라. 그만큼 쇼핑하는 일이 늘어났지만 뭐 아무튼 출퇴근 등의 이동수단으로서의 따릉이는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더라. 내가 고른 30일 정기권의 가격은 제로페이로 5천원 정도. 그 외에는 6개월과 1년의 정기권도 있다. 첫 시도라 소심하게 30일을 골라봤는데, 매우 만족하며 다음에는 1년을 끊지 않을까 하는 생각.


친구들 사이에서 너는 걸어다니는 바이럴 마케팅이다 라는 소리를 꽤 듣는데, 그렇게 며칠 따릉이를 찬양했더니 벌써 주변에서 따릉이를 타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아. 더 늘어나서 나랑 같이 한강에 따릉이 타고 놀러 가면 좋겠는데. (싶어서 유난떠는 글까지도 쓰게 됐다.)


가장 큰 이유는 따릉이를 타고 볼 수 있는 하늘이 너무 예뻐서.


따릉이를 타면서 좋았던 점을 구구절절하게 말했지만, 오롯이 내 힘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크지 않을까? 동네가 넓어진다는 건, 내 삶의 시야도 넓어지는 기분이다. 몰랐던 서점에서 취향의 책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힘. 계절 꽃들을 구경할 수 있게 된 일들. 얼굴에 맞는 바람들과 광합성이 주는 안정감. 그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계절이니만큼, 최대한으로 누려보려고.


사실 반쯤은 집착하고 있는 것이 맞다. 그도 그럴게, 간편하고 쉬운, 운동이면서 놀이인 이 공유자전거 서비스는 내 지루한 인생의 재밌는 놀이거리가 되어버렸는걸. 이 공유자전거가 주는 짜릿함에 이미 취해버린 나는, 꽤 오랫동안 이 집착을 즐기게 될 것 같다.







2020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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