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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돌 Jan 17. 2019

꿈, 없어도 괜찮았지만 있으니 좋긴 하군요.

30대에 다시 묻고 답한 것들

참 불편하고도 케케묵은 질문이었다.


"꿈이 뭔가요?"


어릴 적엔 간호사, 피아니스트, 변호사, 외교관 등 그럴듯한 직업군을 나열하며 잘도 꿈이라 우겼었는데, 크면서는 내가 꿈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아채버려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무엇인가에 푹 빠지는 열정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하긴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직업인이 되고 나서는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내가 번 돈으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모님도, 동료들도, 친구들도 주어진 현재에 충실하면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 속에서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을 느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늘 '별난 인간'이라 부르는 나란 인간은 그 부족함 없는 안락함 속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뭔가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확신이 되었을 때 퇴사했고 아무래도 저 불편한 주제에 대해 답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길을 나섰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퇴사와 퇴사를 거쳐 창업을 하고 거하게 말아드신 현재까지.


나는 꿈을 발견했을까.



실패가 남긴 것들


사업자를 폐지하고선 4개월가량의 슬럼프에 빠졌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사실 나는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실패'라고 부를만한 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당연했다. 마음 써서 도전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우연처럼 발을 넣은 사업에 나는 어느새 열정을 갖고 몰입하고 있었고 그 일이 실패하자 생각보다 큰 폭풍우가 찾아왔던 거다.


실패는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세상은 너무나 넓고 똑똑한 사람은 도처에 널렸으며 나의 능력은 참으로 깨알 같다는 깨달음이 앞뒤통수를 가격했다. 겸손해짐을 넘어서 자존감은 쭈글쭈글해졌고 난 앞으로 뭘 해도 안될 놈이라는 염세도 찾아왔다.


한동안 구직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취업을 고려했다. 몇 년간 가난하게 보낸 나날에서 답답함을 느껴왔던 터라 매월 꽂히는 월급의 유혹이 굉장했다. 그런데 끝내 어디에도 이력서를 제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서서히 내가 왜 섣불리 취업으로 전선을 옮길 수 없었는지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얼마나 경험하고 배운 것이 없는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는지에 대한 성찰만이 가득했는데 현실에 대한 깨달음이 멎자 이제 '내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이상에 대한 그림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발가벗겨진 자아를 통해 진짜 욕망이 보였다. '내 생각을 실현시키고 성취하고 싶어!'


예전에는 그냥 소소하게 공부방을 열어 먹고 살 정도만 벌어도 행복하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혹은 업무가 전문화된 직장에 들어가면 만족할지도 모른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남편 따라 투자나 재테크 공부를 해보기도 했지만 재미가 없었고, 또 유튜브가 그렇게 돈을 많이 번다하니 채널을 개설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었지만 그 또한 아니었다. 다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워라밸을 원한다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수단을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던 거다. 내가 정말 원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설정해놓지 않고 어떤 '상황'에 몸을 맡겼다면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그 어디에서도 만족하지 못했을 거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고려해봤던 수많은 선택지에 가차 없이 X자를 그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가야 할 길을 생각했다. 성장하면서 성취할 수 있는 일. 내 아이디어와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일. 내가 아는 한 창업밖에는 없었다.



다시 쓰는 꿈


"사업, 다시 해서 15년 안에 300억짜리 회사로 키워보겠어. "


어느 날, 동태눈 같던 흐리멍덩하고 힘없는 자태를 정리하고 남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오태식이! 돌아왔구나!"


남편은 무척 반겨주었다. 길을 잃고 정처 없이 방황하며 엉망으로 먹고 자던 나를 묵묵히 토닥여준 힘센 멘탈의 남편은 내가 사업을 하는 것을 가장 응원해주는 지원군이었다.


목표는, 스타트업을 몇 번 실패하건 계속 도전해서 15년 안에는 큰 가치를 가진 회사로 키워보겠다는 것. 이 목표는 지금의 나를 가장 흥분시키고 공부하게 만들었다. 트렌드를 쫒아 어쨌거나 성공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저 목표를 이룰 만큼 나를 단련시키면서 더 많이 배우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고 가족들에게 집도 차도 사줘야지. 그리고는 장학재단을 설립해야지.' 하는 몽글몽글한 상상도 시작했다. 20살 때부터 장학재단을 세우고 싶다는 말을 툭툭 내뱉듯이 하곤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을 다닐 때까지 지역 장학금을 받으며 자라서, 엄마는 늘 받은 것을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첫 월급의 일부로 나를 후원해준 재단에 장학금 기부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실 예전에는 생각만 했지 로또를 맞지 않는 이상 절대 안될거라 생각한 저 멀리의 '몽상'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진짜 '꿈'이 되어있다. 작은 규모지만 실현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장학재단을 만들면 노년부터 눈 감는 순간까지 너무 행복할 것 같다는 환희가 몸속에 차오른다. 진짜 꿈이 생긴 거다.


다이어리 한 구석에 적어둔 것.
-목표: 15년 안에 300억 가치로 회사를 키우기.
-꿈 : 가족들에게 집과 차를 사주고, 장학재단을 만들기. 선한 영향력을 펼치기.



목표가 생긴 후 변한 것


저 멀리 깃발을 하나 땅! 꽂아놓자, 일상의 많은 것들이 변했다.


1. 실패가 두렵지 않다. 실행력이 늘었다. 예전엔 실행 전에 생각만 많았다. 두려움도 많고 완벽하게 하고 싶은 욕심도 많아 아예 시작도 못하는 일들만 가득했다. 지금은 내가 하는 모든 과정이 저 깃발을 향한 것이라 생각하니 일단 마구 시작하게 된다.


2. 데일리 리포트를 쓰기 시작했다. 신영준 박사의 글이나 이야기들을 자주 읽기만 했지 실천을 시작해본 적이 없었는데, 뚜렷한 목표가 세워지자 자동적으로 하게된다. 매일 내 행적을 기록하며 해야할 것을 적고 핸드폰 보는 시간을 줄여나간다.


3. 긴 이동시간에 대한 불만이 줄었다. 인천으로 이사한 후 서울로 왕래할 때 늘 녹초가 되어 힘들다고 투덜대곤 했는데 지금은 이동시간이 즐겁고 빨리 간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지하철은 책을 가장 높은 집중력으로 읽을 수 있는 환상의 공간이다.


4. 돈을 아끼는 데에 적극적이어졌다. 사 먹기보단 해 먹고 배달시킬 것도 한번 더 참는다. 화장품이나 '예쁜 쓰레기'들을 사지 않는다. 돈을 아낄 이유가 단단해졌다.


내가 의욕을 되찾자 남편도 더 열심히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래를 얘기한다. 거실에는 TV를 없애기로 했고 큰 책장을 놓을 참이다.


딴 짓을 자주 하는 메인컴퓨터와 분리해 전용 공부 책상을 만들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공간으로.




꿈, 없어도 괜찮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감사함을 느끼며 사는 좋은 모델들이 주변에 많다.


그러나 꿈, 찾으면 좋다. 입시, 취업, 결혼, 내집장만, 출산까지 눈 앞에 놓인 퀘스트를 깨어나가느라, 생존하느라 바쁘지만, 목표와 꿈이 생기면 그 모든 과정에서 동기부여가 되고 일상의 허무하던 시간도 의미로 채워진다. 가슴이 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모든 것에 주도적이어진다. 아마 우리는 평생 꿈을 찾으며 살아야하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적성을 찾아보거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권도균 대표는 '스타트업 경영수업'에서 회사야 말로 창업을 위한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돈도 주고 경험도 주는 곳. 마음만 먹으면 시키지 않은 일도 관심을 갖고 조사하고 경험하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꼭 창업을 위한 것이 아니어도 회사는 다음스텝을 준비하기 좋은 안정적인 장소다.


그래서 언젠가 혼자 공부하고 경험하고 추진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면, 또 좋은 일을 하는 회사를 만난다면 지체 없이 직장을 다닐 예정이다. 성장을 위해. 목표는 변하지 않은 채로.


꿈은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든 꿈이 이뤄지진 않는 법이다. 그러나 꿈과 목표를 구체화하고 가까이할수록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보다는 나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언젠가 모험이 끝난 뒤 비록 꿈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더 나아진 '나'로 꿈은 유효했다고 웃으며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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