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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돌 Feb 13. 2019

개발자가 부러웠던 기획자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건가.

창업 전선에 뛰어든 후 가장 많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이다. 창업은 확실히 자아실현 과정 이전에 자아탐구 영역이다. 일생에 이처럼 나 자신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엔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을 받던 중 멘토와 '내가 잘하는 것'들을 나열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2줄 이상 적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자신감 결여가 아니었다. 정말로 내 '무기'를 찾지 못한 느낌이었다. 나는 뭘 잘할까. 나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특정한 전문기술이 없는 나에게 그것은 늘 답답한 구멍 같은 지점이었다. 개발을 할 줄 몰랐고 디자인 능력도 없었으며 대단한 마케팅 능력을 발견한 것도 아니었다. 제너럴리스트라는 말이 빈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특별한 기술 없는 기획자.


여느 때처럼 그런 고민들 속에서 나는 왜 공대를 안 갔을까, 개발을 배우지 않았을까, 왜 이걸 못할까, 저걸 못할까 구시렁대고 있었다. 내가 기획한 것을 당장 앱으로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가 무능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wix(무료 홈페이지 제작 서비스)로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며 어디까지 내가 생각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내 구시렁댐을 듣고 있던 공돌이 남편이 이런 얘길 해줬다.


"00야, 기획이 먼저야! 난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구체화하고 이끌어가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해. 오히려 네 생각을 구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아. 하지만 그 기술자들은 뭘 만들지에 대한 '생각', 그러니까 기획력이 없어서 답답해할 걸. 그 사람들은 반대로 좋은 기획력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어. 네가 가진 아이디어들과 기획력을 낮게 평가해선 안돼."


(실제보단 매-우 정갈하게 썼지만, 이런 류의 얘기였다. 남편은 사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잘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별생각 없이 내뱉는 말 중 진짜 현자 같은 말을 해줄 때가 있다.)


그 말이 가슴에 남아있는 채로 이런저런 글을 읽다 보니 실제로 실력 있는 개발자들이 연봉이나 회사 네임밸류보다는 의미 있는 일,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간다는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난 그 의미 있는 일을 만들고 판을 벌이려는 사람이지.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기획자가 되자. 부족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을 가진 자여, 팀 멤버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올초 교육영상을 만드는 일을 라이트 하게 기획한 후 일을 시작하기 전 영상 관련 카페에 글을 올렸다.


"스타트업 초기 멤버로 영상 제작자를 구할 계획입니다. 당장의 월급 없이 지분율을 나누고 수익 발생 시 셰어 하는 형태의 팀 멤버가 필요합니다. 낯선 분을 모셔야 하는 상황이라 무척 막막해 조언을 구합니다.

1. 영상 제작자의 어떤 부분을 중시하며 멤버로 영업하는 게 가장 중요할까요. -포트폴리오? 편집력? 가치관? (저는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커리어의 어떤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요?)

2. 또, 영상 제작자분이 팀에 합류를 고려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어떤 부분이 될까요. -지분율?스타트업의 비전? 대표의 인성? 기획 자체에 대한 관심?일에 대한 책임도?"


기획한 일을 시작한다면 영상제작은 꼭 필요한 일이었고,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 팀 멤버를 구해서 만들 수 있을지 아님 외주를 줘야 할지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올린 글이었다. 또 영상 제작자와 일을 해본 경험이 너무 얕고 짧아, 한 톨만큼의 조언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해 올린 글이었다. 매우 추상적이고 어설픈 질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자 답을 주셨다.

 


조언 주신 내용 중 일부이다. 고마운 분들이 적극적으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고 실질적인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몇몇 분은 개인 쪽지로 관심을 표하며 더 깊은 얘기를 나눠보자 하기도 했다.


많은 분과 대화를 나누며 '당장 월급 없이 팀 멤버가 되어줄 사람이 있을까?' 했던 나의 걱정 가득했던 태도는 이렇게 바뀌었다.

"기획이 좋으면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 좋은 기획으로 끝내주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게 준비하자. "


그랬다. 정말로 나는 엉뚱한 고민을 먼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획이 먼저다. 그걸 검증하고 최종 결론을 내는 것은 나 혼자 해야 했고 더 다양한 방법으로 테스트해봐야 했다. 이후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외주를 주든, 팀 멤버를 구하든 하는 것은 나중일이었다.


현재는 더 단단한 서비스 기획을 위해 준비과정에 들어갔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만들어 시장조사와 고객 검증을 하고 있다.


팀 멤버는 최대한 천천히 신중히 구할 생각이다. LEAN 하게 가자. 가벼워야 한다.



일단 좀 배워두기로!


일련의 고민 과정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특정 기술을 가진 핵심 멤버가 있어야만 서비스가 구현 가능하다면, 사업은 너무 불안해질 것이다. 실제로 팀의 와해와 결합/재결합 과정에서 고생하는 팀들을 꽤 봐 왔던  터였다.


게다가 몇 주 전에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영상 제작자분과 계약서 작성까지 이야기를 진행하다 끝내 방향성이 다르다고 판단해 결국 팀 구성을 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도 추후 팀원을 구하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려면 나에게 어느 정도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결과적으로는 뭐든 배울 수 있는 데까지는 배워두기로 결심했다.


현재 코딩과 영상편집을 배우고 있다.


코딩은 어렸을 때 다음 카페 '장미 가족의 태그교실'(추억이여..)에서 포토샵과 웹디자인(html, css) 하는 것을 취미로 즐겼던 터라 생각보단 어렵지 않게 재밌게 공부하고 있다. 그땐 재미로 뚝딱뚝딱 홈페이지도 만들고 했었는데, 이제 와서 왜 이렇게 어려워하고 멀게 느꼈던걸까.

15년 전 추억 소환

그리고 영상제작. 요즘 대세인 유튜브에 얼마나 많은 아마추어들이 영상을 올리고 콘텐츠를 만들고 있던가! 영화나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미를 뿜으려는 것 아니니 기본만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이다.

(물론 툴 이용능력은 높아지는데 감각이나 센스는 길러지지 않는 것 같다고 절망하는 날도 많다..)

프리미어 프로 체험판이 끝난 후 시험판 툴들을 사용해보는 중.


서비스 기획이 정리된 후 프로토타입은 어설프게나마 혼자서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계속 명심해야 할 점은 정말 전문적이고 완성도 높은 앱, 영상, 디자인 같은 것들이 사업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외관이 어설퍼도 고객의 니즈를 관통하는 서비스는 잘 되곤 한다.




누구도 부러워할 시간이 없다. 내가 가진 티끌 같은 능력들을 끌어모아, 배우고 성장해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화려한 기술보단 정확한 고객 니즈와 솔루션을 찾는 게 핵심이다. 정부지원사업 기간이 다가오며 한껏 마음 조급했던 나를 릴-렉스시키며 다짐성 결론을 안고 글을 쓴다.


천천히, 확실히, 가볍게, 자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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