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지금쯤 많은 예비창업자, 창업자들이 어떤 정부지원금사업에 지원했거나, 지원서를 쓰고 있거나, 공고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업계획서를 잘 쓰는 방법들과 이를 멘토링 해주는 글들이 자주 올라오는 상황에서, '지원금을 꼭 받아야 할까'라는 질문부터 짚어보려 한다.
2017년에 한 번 창업지원금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 8기로 선정되어 1년간 자금지원, 창업교육, 멘토링 지원 등을 받았었다. 그땐 정말이지 무식해서 용감했었다.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돈이 필요했고, 돈을 준다 하여 얼떨결에 지원했더니 얼떨결에 합격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었다고 했다. ('초행자의 행운.' 그 합격이 그렇게 어려운 건지 당시에는 몰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후에는 그 지원금을 쓰느라 정신없이 1년이 흘러갔다. 수많은 페이퍼 워크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과 함께 어지러운 1년이었다.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지원금 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주객이 제대로 전도됐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신중하다. 그리고 그 신중한 이유에 대해 (어쩌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경험을 함께 나눠보려 한다.
1. 정말 '자금'만 있으면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지원금을 받아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사업에 '자금'이 선결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자금은 사업에 날개를 달아줄 순 있지만 기본 동력이 되진 못한다. 자금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안 될 사업은, 안 될 팀은 안 될 것이었다. 마치 밑빠진 독에 물 붓는 형국이 되지 않으려면 창업팀의 단단한 그릇을 만드는게 먼저여야 한다고 많이 느꼈다.
단단한 그릇을 가진 팀이 되려면 먼저 창업팀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 즉 '미션'이 확고해야 한다. 팀의 미션이 명확한 경우, 비즈니스 모델이 아무리 바뀌어도 결국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나와 같은 지원금을 받았던 팀들 중 현업에서 활발히 사업을 유지하는 팀은 몇 안되지만 그 팀들에게 발견되는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비즈니스 모델은 바뀌었어도 '타겟'과 '미션'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션이 확실하면 지원금으로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적용시켜보며 효율적인 실패를 할 수 있다. 같은 ‘목적’ 하에 시장을 테스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팀에 본 아이디어를 구현할 경쟁력있는 능력치가 있는지의 여부다. 팀의 능력치가 닿지 않는 어려운 사업 모델을 끌고 간다면 아무리 지원금을 써도 퀄리티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기 어렵다. 개발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개발자에게 외주를 줘 앱이나 웹 개발을 맡겨봤자 그저그런 퀄리티의 플랫폼이 나올뿐이었다. 지원금을 받았을 때 그걸 자신있게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경쟁력있고, 능력치가 있는 사업을 추진해야한다.
그래서 많은 선배 창업자들이 이야기하듯 '자금'을 유치하는게 사업의 시작점이 아니라는데 동의한다. 천천히 경험을 쌓고 공부를 하며 자잘하게 실행을 해보면서 아이템 검증을 하다보면 진짜 자금이 필요해지는 시점이 온다. 우선은 홈페이지를 만들기보다 스토어팜이나 무료 툴을 사용해본다던지, 블로그나 SNS를 이용해 관심 있는 사람들부터 모아본다든지, 클라우드 펀딩을 해본다던지 하는 식을 통해 사업성을 살펴보는 일을 먼저 해보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자칫 팀의 의지도 능력도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업에 덜컥 지원금만 받고 허투루 날려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2. 돈을 어디에 쓸지, 어떻게 쓸지 명확한 계획이 있는가.
내가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에 지원할 때는 '최대 5,000만원'지원의 사업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 팀은 2,300만 원 정도를 지원받았었고, 대부분의 팀이 3,000만 원 안팎으로 결정되었다. 주관사마다 운영방식이 다르지만 우리가 속했던 센터는 팀마다 고루고루 균등하게 분배코자 한 케이스였다. 이런 이유로 사업 말미 만족도 평가 간담회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실수령 지원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낸 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돈을 더 주지 않아서 감사했다. 감사했다! 정말이지 1년간 그 돈을 쓰느라 진이 다 빠졌기 때문이다. 분명 처음에는 적은 금액이라 생각했고, 쓸 계획도 넘쳐났는데, 왜?
- 내가 생각한 것만큼 자유롭게 돈을 쓸 수 없다.
사업마다 다르긴 해도, 엄밀히 세금으로 지원받는 금액이기 때문에 절차가 매우 깐깐하다. 창업팀에게 영속될 기자재는 살 수 없다던가 프리랜서와는 거래할 수 없다던가 하는 자잘한 조건들이 존재한다. 한 창업팀은 제품 제조에 필요한 기기를 사지 못한다는 것을 합격 이후 알게 되어 지원금을 거진 쓰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우리도 기존에 같이 일하던 웹디자이너가 있었지만, 프리랜서에게 원천징수 형식으로 용역비 집행이 불가함을 알게 되어 웹디자이너가 사업자를 내준 이후에야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용역비를 집행할 수 있었다. 인건비 집행이 가능한지 기계장치를 살 수 있는지 등 쓰려는 금액에 대해 미리 잘 알아봐야 한다.
지원금 지침들은 자금이 어둠의 경로로 잘못 사용될 것을 막기 위한 당연한 항목들이다. 하지만 창업팀은 알고 있어야 한다. 정부지원금이 일반 vc투자와는 다름을. 사용하는 건마다 담당자와 조율하고 허락을 구하고 리젝 당하고 다시 조율하고 또 수많은 증빙서류들을 붙여야 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사용된다.
- 실제로 돈을 써보면 안다. 내 예산 계획이 애초부터 잘못되었음을.
무엇보다도 더 큰 근본적 문제는 돈을 왜?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지원금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팀은 당시 이미 웹페이지 개발을 완료한 상태였고, 이를 '홍보'할 자금이 필요한 단계였다.(그렇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홍보만 하면 사람들이 유입되고 제품이 팔리고 돈을 벌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막상 마케팅을 시작해보니 돈은 들어가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우리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이나 네이버에 광고만 하면 이용자가 유입될 거라 생각한 무지함이 첫 번째 원흉이었다. 뒤이어 그 광고 툴들을 사용해보면서 알게 된 엄청난 진실은 우리가 팔려는 비즈니스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케팅을 할 줄 모르는 것을 넘어 심.지.어 마케팅을 할 단계가 아니었던 거다. 팔려는 콘텐츠에 문제가 있는데 그걸 광고해봤자 효과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비즈니스 모델을 재조정하는 피보팅만 반년 이상을 해야 했다. 돈을 쓸 단계가 아님을 돈을 쓰면서야 알았다.
그랬다. 준비가 안 된, 돈을 어떻게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는 팀에게는 지원금이 무조건 보약이 아니었다. 자칫 '대충' 생각해 '어쩌다' 붙은 지원사업에 코껴서 이 사업이 잘 안될 사업임을 눈치챈 이후에도 발 빼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기 십상이다. 충분히 시장조사를 하고 정확히 자금이 어디 필요한 지 알 때, 적절한 지원사업에 지원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3. 지원금을 받은 후 생기는 조건과 약속들.
'선정자는 협약종료일로부터 최소 1년 이상 창업기업을 유지해야 한다. '
'기창업자는 법인등록을 완료해야 하고, (예비)사회적기업 인증 신청을 완료해야 한다.'
'선정자는 지침 및 기준*을 준수하여야 하며, 사업 완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지침 및 기준은 선정자를 대상으로 별도 안내
지원 사업마다 내용은 달라도, 약속들이 생긴다. 지원서에 기재되어있는 것도 있고, 세부 지침은 선정 이후 책자로 배포되기도 한다.
우리는 기창업자로서 사업 종료 시에는 법인 전환이 완료되었어야 했고, (예비)사회적기업 인증 신청을 했었어야 했다. 이것의 무게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법인 전환을 했더니 매출이 없어 법인세는 0원인데, 법인세 신고 수수료가 40만 원이 나온다. 사업을 접기로 한 이후에도 1년간 기업을 유지해야 해서 법인세 신고 수수료가 계속 들어갔다. 그뿐인가. (예비) 사회적 기업 인증 신청을 할 때에는 반드시 신청 전 3달간 '고용' 인원이 있어야 해 억지 고용인원을 만들어냈고 성과가 없는 와중 쓰기에도 불편한 요상스러운 논리로 페이퍼를 만들어 인증 신청을 완료해야 했다.
월마다 보고서를 제출해 내야 하고, 중간보고 때는 ppt를 만들어 발표도 해야 한다. 형식적인 절차지만 꽤 마음의 짐이고 시간이 드는 일들이다. 단 돈 10,000이라도 지출 항목이라면 영수증, 내역서, 실물 사진 등을 붙여 스캔해 메일로 보낸 후, 다시 지원금 관리 사이트에 공급가액/부가세/총액/항목/비고를 적어 증빙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지원사업마다 지침은 다르지만 덜하진 않을 거다.)
지원금이 꼭 필요했던 창업팀에게는 감사해하며 충분히 감당할 수고스러움이지만, '어라? 이 아이템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지원하기에는 꽤 벅찬 후속 절차가 기다리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이런 이유로 창업팀 중에는 일부러 정부지원금을 피하기도 한다. 아직 안착하지 않을 아이템이라면 당장 월 몇 십만 원의 매출을 내는데 주력해보거나, 유관한 분야의 외주를 받아 실력을 쌓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사업에 따라 지원사업이 사업 시작의 one and only의 유일한 대안이 아닌 것이다.
4. 주관사도 매우 중요하다. 사업설명회는 필수.
우리는 사회적기업육성사업에 지원하기로 한 후, 주관사 2~3곳의 사업설명회에 참여했었다. 한 곳은 해당 사업을 주관한 지 역사가 가장 오래됐고, 만족도가 높다고 전해 들었으며 경쟁률도 강하고 선배 기업가도 많은 곳이었다. 또 다른 곳은 전해지는 이야기도 많지 않고 경쟁률이 덜할 것 같은 곳이었다. 원래는 분위기를 보고 경쟁이 덜 할 것 같은 후자에 지원할 예정이었으나 놀랍게도 설명회를 듣고 마음이 싹 바뀌었다. 경쟁률이 세기로 소문난 센터의 담당자 pt를 듣자, 이 지원 사업을 오래 주관해봤음이 단번에 티가 났다. 체계적이다. 일목요연한 설명과 함께 사례를 들어 지원자들이 궁금해할 점을 구석구석 시원하게 긁어주었고, 그래서인지 참석한 질문자들의 수준도 높았다. 우리는 약속한 듯 반짝이는 눈을 마주치며 '여기다. 못 먹어도 go. 여기 지원하자.'라고 속삭였다.
주관사는 단순히 돈만 전달받아 전달해주는 곳이 아니다.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멘토링 해줄 선배 기업가를 섭외해오고, 네트워킹 파티를 열고 모든 것에서 주관사의 손길이 들어간다. 담당자들이 경험이 많아야 창업팀의 니즈를 제대로 수렴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업설명회를 들어보고,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우리 팀이 그랬던 것처럼 '아! 여기다!' 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정부지원사업에 지원하는 팀들은 대부분 창업경험이 없는 막 시작하는 팀들이다. 그래서 매우 부족한 사업계획서임에도, 비즈니스 모델이 터무니없음을 알면서도 뽑아준다. 해결하려는 미션이나 팀 구성, 경쟁력 등등 여러 가지에서 가능성을 봐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지원하고 누구나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구구절절 상황들을 예로 들며 꼭 지원금을 받아야 할까 의문을 제기하고 지원금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창업팀에 따라, 지원금을 받는 것보다 받지 않는 것이 더 lean 하게 가볍게 사업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템에 아직 확신이 없다면, 이루고자 하는 미션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면 위에서 설명했듯 돈 들이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테스트해보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무료 툴들을 이용하고, SNS로 이용자를 모으고 클라우드 펀딩을 해보고 커뮤니티에서 작게 서비스를 팔아보고 등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이내 그 아이템이 별로였음을 깨닫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때 빨리 발 떼고 다른 것을 시도해볼 시간을 벌 수 있다. 당시 우리팀은 그러지 못했지만.
지원사업에 합격하는 것이 사업의 시작도 성공의 보장도 아니다. 적어도 1년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을 일이니 모두 신중하게 지원해서 좋은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
*저는 이번에 지원금에 도전할 예정입니다. 이전의 경험을 거울 삼아 더 많은 준비를 했거든요. 이번에는 보약처럼 잘 써서 실패를 하더라도 더 많이 배우고 효과적인 실패를 하길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