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별 거'였다.
나는 범생이었다. 딱히 재능 있는 분야는 없었지만 골고루 공부는 잘했으니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반이라기에 친구 따라 쓴 입사지원서는 '턱'하니 붙어 취업에 성공했다. 첫 직장은 공기업계였고 크게 흠잡을 곳이 없었다. 연봉도 안정성도 훌륭했고 나를 괴롭히는 사수도 없었다.
그러나 너무 빠르게, 쉽게 안착한 탓이었을까.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회의감은 눈덩이처럼 거대하게 불어나갔다. 그래. 내년엔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거고, 내후년엔 더 더 잘할 수 있을 거다. 그래서 그 다음은..?
나는 결국 10년 후 내 옆자리에 앉은 부장님처럼 될 거였고, 일이 잘 풀린다면 20년 후에는 팀장님처럼 될 거였다. 팀장. 성과는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부진에 대해서는 임원에게 매일 같이 호되게 깨지는 사람. 능력과는 상관없이 사내의 온갖 정치질에 좌천이 되기도 하고 다시 승진이 되기도 하는 양팔이 회사에 묶인 신세.
열심히 살아내면 내 최종 도착지는 저 자리인가. 20대 후반, 미래가 정해졌다는 생각은 안정감이 아니라 저릿한 당혹감과 허무함을 선사했다.
그러니까 어떤 ***같은 같은 상사 때문이라던가 업무량에 비해 한없이 낮은 연봉 등의 이유로 퇴사한 것이 아니었다.
일신상의 이유.
"성장에 대한 비전 없이 미래가 벌써 정해지는 게 싫어요. 인트라넷에 올라오는 인사 공지 따라 어느 날은 기획팀, 어느 날은 총무팀, 또 어느 날은 감사팀으로 이동하겠죠. 전문 능력은 길러지지 않고, 눈치만 기르다 평생 늙어 죽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에겐 참으로 철없는 소리고 시답잖은 이유였을 것이다. 시골 계신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등짝 스매싱을 백번은 더 갈겼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배가 불러서 그렇다, 오만하다. 아직 어려서 세상을 모른다. 결국 후회하게 되어있다.' 등등의 얘기들로 미련한 중생을 구호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당신의 조언이 조금도 통하지 않을 만큼, 아무 망설임 없이 사표를 낼 수 있을 만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팔딱이는 열망과 확신이 있었다. 성장과 성취에 대한 갈망이었다. 좀 더 삶과 일에 대한 모험을, 탐색을 해봐야 했다. 아직 더 도전하고 부딪혀봐야 할 에너지가 많이 남아있었고 안착하기엔 일렀다.
설렘과 기대를 가득 안고 퇴사 후 크게 두 가지 일을 했다.
1. 직원이 10명 남짓한 작은 회사에 들어가서 내가 하고 싶던 종류의 프로젝트 기획에 참여했다.
2. 그 회사에서 만난 2명의 동료와 손 잡고 나와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결론적으론, 두 가지 경험 모두 장밋빛은 아니었다.
20대 후반, 한창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 나이. 언론이나 SNS에서 비치는 평화롭고 전문적인 모습에 반해 들어갔던 회사는 책임지지 않는 대표, 아무런 시스템 없이 비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업무, 미친 야근량과 낮은 페이, 공공연히 일어나는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행위들까지 나날이 욕을 더해갔다. 믿을 수가 없을 만큼 엉망진창이다. 성장은 커녕 화병만 키울 판이었다. 나는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짐을 싸서 나왔다.
그렇다면, 그곳을 나와 2명의 동료와 함께 시작한 스타트업 창업은 어떻게 됐을까? 길게 생각해볼 것도 없다. 무참히 망했다.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고 수익은 먼 미래의 일이었으며, 각자 생활고에 시달렸다. 어리숙한 아이디어와 뜬구름 기획으로 시작한 서비스가 잘 될 방법은 없었다.
나를 보호해줄 소속과 일정한 수입 없이 생활고와 불안을 견디며 모험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용기와 끈기 그리고 계획이 필요한 일이었다. 친구들이 번듯하게 자리 잡아 나갈 때 나의 실패와 대비되어 조급해지고, 어른들께 반백수인 내 상황을 설명할 때면 한 없이 초라해졌다.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속이 텅텅 빈 빈수레였단 말인가.'를 매일 느끼며 구석구석 부족함을 체감해야 했고 한동안 눈물과 폭식으로 얼룩진 처절한 슬럼프를 보내야 하기도 했다.
퇴사는 매우 '별 거'였다. 그러나 반전은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사업을, 내 기획을 돌아가게 하려고 밤새 고민하고 연구하던 시간들, 해외 사례를 찾고 논문을 검색하고 멘토들에게 상담을 받으며 에너지를 쏟아내던 시간들은 완벽한 몰입의 순간이었다. 직장상사에게 덜 깨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이뤄내고 싶어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몰입의 순간이야말로 내가 찾고 갈구하던 '일'에서의 성장이었기에 넉넉지 않은 자금사정과 초라해지는 순간들을 나름의 방법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내 가치관의 우선순위는 경험을 통해 명확해져 갔다.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도, 퇴사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 없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방패 삼아 재주와 가치를 키우는 데는 게을렀던 시간들에 후회할 뿐이다. 더 일찍 더 많이 '실패' 해봤어야 했다. 삶의 지향에 대한 고민, 진정한 의미의 자기 계발, 성장과 성취를 위한 시발점은 정확히 퇴사부터였으니, 나는 100번이라도 더 퇴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