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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혁 Jun 24. 2022

평범하기 위한 평범하지 않은 노력

미국 중학교에서의 첫 등교를 마친 날이다. 학교 건물을 빠져나오자 영화에서만 보던 노란색 스쿨버스 30대 정도가 주차장에 줄지어 서있었다. 정갈하게 놓인 빌라 한 채 만한 버스들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는데, 이 풍경이 당연하다는 듯 학생들은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들은 자신이 맡은 임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요원 같았다.


수백 명의 학생이 귀가 임무를 수행하던 그때 나는 그들 사이에서 헤맸다. 등교할 때는 집 앞으로 오는 버스를 타기만 하면 되지만 하교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들은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버스 기사님들께 물어봐야 할까 고민하다 너무 많은 버스에 마음을 접었다. 다행히 아직 기사님들이 도착하지 못해 주차된 버스 앞에서 아이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아침에 같은 버스를 탔던 친구가 보이지는 않을까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재빠르게 둘러봤다. 주차장을 빼곡하게 채운 얼굴의 색채는 다양했다. 내 피부색이 지나치게 평범하게 느껴졌고,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뽐내기 위해 자신의 색을 마음껏 자랑했다. 형형색색의 피부색에 약간의 두통이 일었던 그때 문득 한 백인 아이의 얼굴이 낯익어 보였다. 낯선 곳에서 만난 덜 낯선 얼굴. 무스를 잔뜩 발라서 뾰족했던 머리에는 윤기가 가득했고 나를 힐끔 쳐다보던 그 시선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를 따라 버스에 탔고 덕분에 나는 집으로 귀환을 완수할 수 있었다.


등하교 같은 사소한 일을 큰 과제로 삼는 건 천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전교생 중 나 하나뿐이었다. 모두 물 흐르듯이 움직였지만 나는 행동과 말 하나에 신경을 곤두 세워야만 했다. 조금 풀어질 때면 모든 게 부자연스러웠던 나는 그 순간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고 미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색한 사람임이 들통나고는 했다. 나는 평범하지 못했다.


체육시간이었다. 갑자기 조 별로 준비한 발표를 시작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국 동네에 있는 커다란 실내체육광장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던 체육 교실은 항상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는데 그날따라 유독 쌀쌀하게 느껴졌다. 극도로 긴장한 탓에 피가 빠른 속도로 돌았고 손에는 땀이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나는 발표 주제가 '미국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질병들'이라는 사실과 3명이 한 조를 이룬다는 사실, 그리고  조 별로 돌아가면서 조사 자료를 발표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표 당일 처음으로 알았다. 3명씩 앞으로 나와 준비한 파워포인트를 자신 있게 읽기 시작했다. 영화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커다란 스크린 위에 각자 준비해온 발표 자료가 올라왔다. 선생님을 포함한 모두의 시선은 그곳으로 몰렸다.


열성을 다해 발표하는 학생에게 모두의 관심이 쏠린 그때 나는 나를 제외한 2명이서 발표할 그룹이 곧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온 몸이 굳어졌고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내 목 어딘가를 강하게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나 없이 프로젝트를 준비했을 두 명의 친구들에게 참을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한 조의 발표가 끝나고 체육 선생님은 다음 조를 불렀다. 키가 큰 여자 아이 그리고 짧은 금발과 푸른색의 눈동자를 가진 백인 남자아이 둘이서 교실 앞으로 나갔다. 유일하게 세 명이 아닌 단 두 명뿐인 조였다. 내가 속한 조의 순서였다.


스크린에 빔 프로젝트의 빛이 진하게 가닿게 하기 위해 교실의 불을 완전히 꺼놓은 상태였지만, 초록색 창문 너머로 오후의 강한 햇빛이 들어오는 바람에 교실은 녹색으로 진하게 물들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녹색 어둠에 파묻혔다. 캄캄함이 주는 얕은 위안에 나를 맡기고 싶었지만 그런 내가 얕궂다는 듯 빔 프로젝트는 강한 빛을 쏘아댔다. 곧 스크린 위에 단 두 명이서 준비한 자료가 비쳤다. 제목과 조 원을 소개하는 슬라이드의 첫 번째 장에는 총 세 개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내 영문 이름이 무방비하게 노출됐다. 두 명의 백인 친구들은 소개를 시작으로 발표했다.


내 한국 이름이 영어식 발음으로 어색하게 읽혔던 그때 나는 공식적인 외부인이 되었다. 그런 한국식 이름을 가진 사람은 교실에 나 밖에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굳이 나를 앞으로 부르지 않았음은 나에 대한 작은 배려였음을 나는 눈치챘다. 서로를 알고는 있지만 알지 못하는 시늉을 피워야 했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에게 섞이지 못하는 외부인이었다.


의도된 눈 맞춤인지는 모르겠지만 발표 중간에 나는 백인 남자아이와 시선이 몇 번이고 겹쳤다. 그는 나의 눈을 힐끗 쳐다보며 어쩌면 내가 읽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자료를 계속해서 읽었다. 그의 시선은 내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냐고,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조용히 앉아만 있으라고 말하던 그 시선은 나는 결코 그들에게 가닿을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가 옳았다. 발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으로 고마움을 전달하는 것, '땡큐'라는 조용한 외침 밖에 없던 나는 확연한 외부인이었다. 그날 나는 평범한 학생이 되기 위해 결코 평범하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외부인으로서 그들과 섞이기 위해 애써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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