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가게 사장님들의 네이밍센스는 무언가 굉장한게 있는게 틀림없다
말랑한 과육이 입에서 톡 터질 때, 녹는다 녹아
여름이다. 늦여름. 작년 이맘때 쯤에는 절약을 한답시고 복숭아 한번 안 먹었던(뼈에 사무친) 기억이 있다. 말랑한 복숭아를 선호하는데. 주위에 다 딱딱이들 뿐이 없어서 공감을 못해준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항상 완판을 하는 과일가게를 지나가고 있는 내 눈에 포착된 이름. '반딱복숭아'
반딱복숭아? 처음엔 반짝복숭아를 잘못 보았나 했다. 샤인 머스캣이고, 샤인 토마토고 반짝 빛나는 형용사를 붙인 달달한 과일들이 재작년쯤부터 유행을 탔던 것 같은데. 이제 복숭아마저 당도가 아주 높은 것들이 나오나보다 했다. 그런데 다시 자세히 보니 반딱이 맞았다. 반딱반딱. 잠깐 멈춰서서 저게 뭘까 생각했다. 반만 딱딱한 복숭아인가? 과일가게 아저씨가 씨익 웃었다. 그거 맛있어요. 복숭아도 조금 있으면 끝나~
홀린듯 5개 만원 짜리 반딱복숭아를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가벼운 아침저녁으로 먹기 좋은 삼 천원 짜리 바나나도 함께 가방에 우겨 넣고. 지하철 한 번, 버스 한 번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 말랑말랑하게 느껴졌다.
내일 먹을까? 아니야 지금 먹자 궁금해!
전날 친구와 시켜 먹었던 찜닭과 밥을 볶고, 계란 두 개 까지 얹었더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후식으로 먹어야지 했던 생각과는 다르게 뭘 더이상 먹을 수 없는 상태로 변신. 결국 낮 시간에 먹지 못하고 오후 수업을 나갔다. 집에 오니 10시 반. 무언갈 먹기에는 늦었고, 안 먹고 자기엔 배고파서 잠이 안 올 것 같았다. 에잇. 기분이다 복숭아 하나 꺼내 먹고 자자.
털이 나지 않는 천도복숭아를 제외하고 대체로 복숭아는 겉에 까실까실한 털이 나 있다. 예전에 부모님이 이상한 웰빙(?)에 꽂혀서 털도 제거 안한 복숭아를 잘라서 먹으라고 강요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도무지 복숭아 껍질까지는 못 먹겠더라. 솜털처럼 난 복숭아의 털을 수세미로 문질러 제거하면서 그땐 그랬지라며 옛 기억에 취하기도 잠깐. 사각사각 손끝에서 잘려나가는 겉껍질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먼저 복숭아의 윗 부분을 씹었다. 반딱이라며! 딱복보다는 미세하게 부드럽지만 그렇다고 말랑한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나. 사기당한걸까? 하고 시무룩하게 포크만 빨고 있다가 이번엔 복숭아의 밑 부분을 씹었다. 오, 여기는 완전 말복인데. 하루를 더 묵히면 더 말랑해 질 것 같은데 말야. 달도 뜨지 않은 완연한 밤, 방에서 복숭아 냄새가 여릿하게 풍겼다. 아삭아삭. 몇 번을 씹고 나니까 빈 접시만 남아 있었다.
이틀 째 된 복숭아가 그렇게 맛있더라.
복숭아는 기대와 다르게 혀가 녹듯이 달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린 향기, 여린 맛, 여린 강도. 모든 것이 여린 과일이었다. 덜 여문 어린 아이의 뼈처럼. 태어난지 삼 개월 미만 된 메추리처럼. 여린 맛을 입에 품었다. 이틀 정도 지난 후 냉장고에 넣었던 복숭아를 꺼내 먹었더니 처음에 먹었던 것 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시간을 더 보내면 더 말랑해질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과하게 달지 않은 기분 좋음이 혀끝을 휘감았다.
여름 밤이었다. 그것도 늦여름. 얼마전까지는 매일이 비와 더위의 콜라보였는데 입추 근처로 다가와서는 그 더위가 한 풀 꺾인 느낌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몸을 휘감았고, 한낮에도 미적지근하지만 약간의 냉한 기운이 감돌았다. 복숭아가 나오지 않을 때 쯤 계절이 바뀔텐데. 서늘한 가을이 되기 전에 아삭한 아오리사과도 먹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