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수입산 쇠고기 위생조건 위반, 미국의 신용을 떨어뜨린다
한미FTA 개정 협상에서 미국은 추가적인 농축산물 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농업은 레드라인”이라며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협상 대상 제외'가 아니라, 쇠고기 세이프가드 발동요건 완화 등 '재조정'이 필요하다.
12월 1일 한미FTA 2차 공청회 자료를 보자. 한미FTA 발효 이후 5년간 미국의 농축산물 수입물량은 급증했다. 광우병 파동 이후 2008년 6월 수입이 전면 재개된 쇠고기는 2007~2011년 6만6천톤(연평균)에서 2012~2016년 12만6천톤으로 82.7% 증가했다. 돼지고기는 같은 기간 23% 늘었고, 닭고기·분유·치즈 등까지 포함한 미국산 축산물 전체 수입물량은 19.4% 증가했다.
당연히 국내 농가의 피해는 급증했다. 쇠고기 농가는 2011년 15만7천호에서 2016년 8만5천호로 36.1% 줄었다. 같은 기간 돼지고기 농가는 1773호(32.8%), 낙농 농가는 714호(16.1%) 줄었다. 국내 소비량 가운데 국산이 차지하는 ‘자급률’은 한우육은 2012년 48.1%에서 2016년 39.0%로, 돼지고기는 78.2%에서 72.7%로 떨어졌다.
미국의 평가는 어떠할까? 올해 3월 31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2017년 무역장벽보고서>(2017 National Trade Estimate Report on FOREIGN TRADE BARRIERS)는 이렇게 평가한다.
"ㅁ 소고기 및 소고기 관련 제품
2008년 이전 한국은 광우병에 대한 우려로 미국산 소고기와 소고기 제품의 수입을 제한했다. 2008년 미국 소고기와 소고기 제품에 대해 한국 시장을 완전히 재개방하기로 한 양국 간의 협상 이후, 한국의 소고기 수입업자들과 미국의 수출업자들은 한국 소비자들의 신뢰가 향상될 때까지 임시 조치로 한국에 수입되는 미국의 소고기와 소고기 제품이 30개월령 미만의 동물에서 유래된다는 자발적 상업적 이해를 따르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협정은 원만히 운영되고 있다. 2016년 미국은 한국에 10억 달러 이상의 소고기(잡육 포함)를 수출했으며, 한국은 미국 소고기 수출시장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한미FTA 개정협상 본격화를 앞둔 지금, 2007년 9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다시 옮긴다.
농림부는 오늘(6일) 오전 “지난 7월 23일 선적된 미국산 쇠고기를 전날(5일) 검역한 결과, 1상자에서 수입이 금지된 갈비통뼈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담당자는 해당 쇠고기를 도축한 작업장은 ‘승인번호 86K, 카길사’라고 했다. 이 작업장은 카길 소유로 이미 5월 29일에도 갈비뼈가 검출된 곳이다. 지난 4일에 발견된 갈비통뼈의 작업장은 ‘승인번호 969G, 스위프트 앤 컴퍼니’였다.
"이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의 제품에서 갈비통뼈가 발견되는 것은 우리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며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 신용에 타격을 줄 것이다. 식품 안전 문제는 지금 이슈가 아니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인 벤 넬슨 의원의 이야기다. 넬슨 의원은 지난 5일 최근 한국에 수출하는 미국산 쇠고기에서 연이어 갈비통뼈가 발견되는 사태에 대하여 ‘미국의 신용이 위험하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 발언은 쇠고기 수출문제와 관련하여 강경파로 알려진 네브레스카주 출신의 넬슨 의원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눈여겨볼만하다.
이 발언과 함께 눈여겨볼 만한 사안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난 4일자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발언이다. “한국의 시장 재개방 이후 들어온 미국산 쇠고기가 75만박스정도가 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단 6개 정도다. 6개가 크게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 혹시 미국산 쇠고기를 사고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굳이 살 필요가 없다.”
다른 하나를 보자. 미국 소비자제품 안전위원회(CPSC)는 지난 5일 미국과 중국은 오는 10~11일 양일간 미국 워싱턴에서 중국산 제품의 안전성에 관해 미중간에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제는 "미국과 중국이 불합리한 위험에서 소비자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안, 중국산 제품에 대해 미국 안전기준을 어떻게 잘 적용하는 문제 등“이다.
위의 발언들을 종합하여 분석해 보자.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통상문제’로서 이해한다. ‘안전문제’는 국제수역사무국 [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 OIE]에서 정한 기준에 부합하므로 안전하다고 본다. 현재 발효중인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2006년 3월 6일 제정, 농림부 고시 제2006-15호)에 위반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개정절차가 진행중이므로 별문제가 안된다고 본다.
반면 넬슨 미 민주당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건강’이 아닌 ‘미국의 신용’문제로 이해한다. 자신의 지역구인 네브라스카 주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통상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으련만, 그는 ‘식품 안전이 아닌 신용’을 걱정한다. 이와 같은 넬슨 의원 발언의 적절성은 차치하고, 그의 발언에서 ‘미국은 왜 강한가’를 일견 알 수 있다.
넬슨 의원은 지금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자국의 시스템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다. 양국간 합의한 사항에 대하여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현재 시스템은 ‘신용’을 잃는 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서 비롯된 신용 하락이 이후 몰고 올 파장을 걱정한다. 넬슨 의원의 지적은 10~11일 있을 미-중 간의 ‘중국산 제품의 안전성 논의’를 연장선상에서 놓고 볼 때 미국 의회의 구성원으로서 적확한 지적임을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과 중국의 통상마찰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가장 최근의 통상마찰이 불과 하루전일이다. 지난 6일 미국의 유명 완구업체인 마텔은 중국산 완구류에 대한 3번째 리콜을 실시했다. ‘중국산 제품 없이 살기는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중국산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일은 미국 정부와 의회에게는 발등의 불이 되었다. 그 불을 끄기 위해 10~11일 미국 워싱턴에서 미-중 간의 ‘안전성 논의’를 앞두고 있다.
한국에서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번번이 어기고 있는 미국이 ‘소비자 제품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중국과 협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양국의 주장과 그에 대한 치열한 반론이 기대된다. 앞으로 벌어질 논의를 예측해 보자.
미국은 자국민의 안전을 이유로 중국에 안전성 강화를 요구한다. 미국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중국은 ‘자국 제품의 안전성은 국제기준에 부합하여 안전에는 문제가 없으며 최근 발견된 몇몇 사례들은 일부 포장업체 등 품질관리의 문제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중국의 정부나 의회 관계자는 현재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채권규모에 대해 언급하며 이를 대량 매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압박한다.
이같은 예측은 ‘미국산 쇠고기’ 논란에서의 한국이 미국으로, 미국이 중국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불과 4-5일 뒤에 이런 상황이벌어질 것이라고 추측할 때, 미국 정부의 이익에 좀 더 부합하는 것은 버시바우 대사보다는 넬슨 의원의 판단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넬슨의원의 지적처럼 미국의 신용이 위험하다. 국제사회에서 일국의 주장이나 논거는 양국간에만 일회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반대논거로 주장된다. 하여 국제관례가 중요한 것이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위반 사건에서 미국의 태도는 옳지 못했다. 그에 대한 부메랑으로 미국은 중국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가 미약해졌다. 앞으로 있을 미-중 간의 소비자 제품 안전성 합의에서 미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미국민의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간다. 반면에 중국은 한국에서의 갈비통뼈 문제에서의 전례가 큰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다. 참 재미있는 형국이다.